늑대물린여자 19
내 몸이 아픈 건 아픈 것이고 일은 일이다. “내일부터 당장 회사를 나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가겠다, 단지 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회사도 배려해 달라고 이야기하려 했으나 퇴사하겠다는 내 한마디에 돌아온 답은 안된다는 말이었다.
“뭐라는 거야. 안 돼.”
그는 퇴사 요구 자체를 묵살했다. 그냥 참고 다니라고 하고는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대화 자체를 차단해 버린 것이라. 이후 다시 한번 대화를 시도할 때 그는 다른 직원들이 내 업무를 반정도 나누거나 삼사개월간 휴직을 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당시 회사도 코로나로 힘들었고, 그 고난은 직원들에게 과한 노동으로 얹어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장 이번주부터 과노동에 업무가 더 추가되었던 상황이다.
나 때문에 다른 팀원들에게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고? 내 몸이 언제 나아질 줄 알고? 그러느니 내가 나가고 다음 사람을 뽑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허나 회사의 입장은 달랐던 모양이다. 이후로 쏟아지는 말들이 꽤나 과격했다.
“네 몸이 조금 쉰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아? 평생 그런 몸으로 살 거 아니야.”
“루푸스를 이해해 주는 직장이 몇이나 될 것 같아? 그냥 다녀.”
“평생 그 상태로 살아야 할 텐데 익숙해지는 게 낫지.”
“돈 안 벌 거야? 몸도 아픈데 젊을 때 조금이라도 벌어놔야 할 것 아냐.”
대책 없는 희망도 하면 안 되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는 직면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불치병 환자에게 네 몸이 평생 그 모양이라는 말은 열 번쯤 생각해 봐도 너무했다. 과장님은 내가 계속 일하는 쪽이 나의 미래를 위해 낫다는 선해에서 말을 꺼냈리라. 충격요법이 잘 통하지 않아 나약한 MZ세대가 징징거리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작금의 상황은 조금 쉰다고 나아지지 않을 몸이라고 생각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의 조언을 무시한 대가나 다름없었다.
나는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쉬었어야 했다. 응급실에 갔을 때, 불면증이 시작되었을 때, 손가락에 마비가 왔을 때, 조금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은 신호들을 넘기고 또 넘기다가 건강의 탑을 무너트린 상황이었다. 선을 넘었다는 감각은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의 영역이다. 코로나는 젠가를 살짝 민 계기였을 뿐 내 탑은 이미 구멍 투성이로 엉망이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의 말들은 내게 칼이고, 독이었다. 내가 두 달 넘게 앉아서 잠을 청해왔고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옆에서 봐오시지 않았느냐는 되물음에는 작은 설움마저 담겨있었다. 적어도 많이 힘들었겠다는 말을 해줄 줄 알았는데.
과장님은 퇴직하기까지 남은 인수인계 기간 동안 중간중간 퇴직 후 몇 달 안에 다른 병원에 취직하면 가만 안 둘 거라는 등의 반 농담조의 말을 던졌다. 그 말들에 내가 모두 상처받는 사실을 모른다는 듯.
병동의 환자들이 그 소외감을 모두 상쇄시켜 주었다.
환자들은 꾸준히 내게 헤어짐의 아쉬움을 표하였다. 한글을 모르는 환자들이 다른 환자의 도움을 받아 서툴게 쓴 편지들이 어찌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던가. 외출을 나갔다가 왔던 한 환자가 나를 위해 사온 바람개비꽃 모양의 책갈피는 나의 애착 책갈피가 되었다. 마지막 요법 때 잠시 낭송하겠다며 눈물 젖은 얼굴로 편지를 읽어준 환자는 글이 너무 엉망이라 내게 쪽지를 줄 수 없다고 해 핸드폰으로 찍어 저장해 두었다. 잔뜩 고쳐 쓴 쪽지 속의 고뇌 가득한 생각이 따뜻하고 감사해서 가슴이 벅찼다.
내가 어떤 집단에게 이런 진심을 또 돌려받을 수 있을까.
그들의 마음을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다가도 그들의 마음이 너무 커서 차마 자랑할 수가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내가 다 불렛저널에 붙여놓고 감상해야지.
그들에게는 내가 그저 거쳐가는 직원 한 명일 뿐이었을 수도 있고, 나도 내 인생의 일부분에 머문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법 진심을 다해 서로를 대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나에게 헤어짐의 올바른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혹은 올바르지 않은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이 글을 내밀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과장님은 자신이 수련생으로 키워내 직원까지 되었던 사람이 갑자기 퇴직을 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커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아마 진심은 그렇지 않았겠지. 그는 마지막 날 많은 짐을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차까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왔으니까.
그럼에도 그 말에 상처를 받았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픈 까닭은 그가 내게 상처를 주었다는 의미보다 언어가 가진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
언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했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던진 말에도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우리가 말을 조심해야 하고 댓글 하나를 남길 때에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픈 사람은 예민하다. 우리 병동 환자들은 아마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에 헤어짐의 방법을 더 능숙하게 잘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병자라고 그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욕으로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남들에게 공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공감했고, 싸웠고, 화해했다. 대화하고, 만났으며, 울었고, 웃었고, 이제는 헤어졌다. 그들은 생각 외로 내 비언어적 표현에 굉장히 예민했으며 기분을 재빨리 알아맞혔다. 모두 아픈 사람이 예민하기 때문일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