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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Sep 21. 2023

코로나, 걸려버리다.

늑대물린여자 19



엄마는 응급실까지 갔는데도 여상하기만 했던 의사의 반응에 화를 냈다. 늘 참기만 하는 내 모습에 어지간히 분통이 터지셨던 모양인 듯 더 큰 병원, 대학병원을 외쳤다.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 좋잖아."


나는 변화가 싫었다. 변화를 시도했다가 지금보다 안 좋은 결과면 어떡하나.

지금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 지금의 회사도 그럭저럭 괜찮고, 지금의 병원도 제법 괜찮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더 큰걸 바라겠어. 주변 사람들도 다 욕심이라더라. 그런 내 말에 엄마는 더욱 화를 냈다. 


"네가 뭐가 어때서!"


엄마와 2주 넘게 싸운 끝에 항복 깃발을 들었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한 번이라도 좋으니 큰 병원을 좀 가보라는 말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루푸스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에 전화하니 2년 반이 밀려있단다. 다른 대학병원도 초진을 보려면 가장 가까운 예약이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예약도 제일 빠른 교수님이란다.

류마티스 과는 소수과라서 그나마 예약이 잡히는 것이지 신경과 같이 환자가 많은 과는 2년씩 기다려야 예약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루푸스가 희귀병이라는 거 다 뻥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거라도 잡아달라고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달력으로 눈이 갔다. 


기다림 끝에 맞이하게 될 다음 의사에게 나는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또 엄살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날이 더워지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업무가 늘어나기도 했다. 코로나 국면이 지나면서 예전처럼 업무를 되돌리면서도 여느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 또한 인원을 늘리지는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환자 수가 줄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환자 수가 줄었으나 병동 수는 늘었기에 절대적인 업무량은 늘었음에도. 힘들다고 일을 줄여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 맞선임인 주임님은 더 많은 일을 맡고 있기 때문이었다.


앉아서 자는 날이 길어지면서 온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엉덩이와 허리, 어깨, 목……. 앉아서 눕지 못하니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피곤하니 예민해지고 환자들에게 쏟아야 하는 관심이 점점 줄었다. 


“대충 해.”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 과장님은 나름의 선의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 해결책이 직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 대충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조언이었다. 요령이 좋지 않아 대충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발목을 잡고, 그 일들을 쳐내다 늦게 퇴근해 지치는 날들이 지난해졌다.






밖은 코로나가 거의 갈무리되었다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쓴 사람들보다 많아졌다. 병원은 사정이 달랐다. 한 명만 걸려도 기하급수적으로 환자가 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썼다. 

매주 자가키트 검사를 하고, cpr 검사도 했다. 가끔은 바깥과 이곳 사이에 괴리감이 들기도 했지만 경각심을 놓지는 않았다. 나 하나만 걸리면 문제가 안되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옮겼을 때의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


5월 중순이었다. 묶여있던 제도가 느슨해지면서 병원에도 코로나가 스멀스멀 침투하기 시작했다. 직원들 사이에 퍼진 코로나는 끊임없는 수건 돌리기처럼 한 명이 걸리면 다른 사람이 이어 걸리기를 반복했다. 

병가로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대신하느라 직장 전체에 피로감이 만연했다.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와중, 목이 간질거렸다. 불안감이 들었으나 내가 건강에 예민한 감도 있었기에 자가키트를 두 번 돌렸다. 모두 음성이 떴을 때는 내심 안심했다. 집에 갈 때쯤에는 증상이 더 심해져서 목이 잠기는 느낌이 들었다. 

피로가 누적되어서 감기가 걸린 걸까. 집에 가자마자 독한 감기약을 털어 넣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이 되자 열이 올라 병원을 찾았으나 또 음성이 나왔다. 

의사는 코비드는 아니고 이른 여름 감기인 것 같다면서 약을 지어주었다. 아이고,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벽에 기대어 누웠다.

열이 오르니 몸 이곳저곳이 쑤시는데도 눕지 못하는 것이 불편해 앓는 소리를 내니 동생이 집안의 이불을 잔뜩 끌어와 새 둥지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주었다. 반쯤 눕는 자세로 앉으니 훨씬 편안해진 자세에 서로 마주 보며 실실 웃었다. 내 동생 최고 하면서.


일요일 오후, 점점 심해지는 증상에 혹시 몰라 한번 더 시도한 자가키트에는 어제 의사의 말을 배신하고 선명하게 두줄이 떴다.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른 몸은 평소 아프던 관절 마디마디를 공격했다. 손가락과 팔꿈치, 허리 할 것 없이 심장 뛰는 소리가 관절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코로나에 걸린 많은 주위 사람들은 “그냥 감기야.”라고 말했지만 너무 아팠다. 5일이 내도록 계속 아파 골골 앓기 바빴다. 더운 동시에 추웠다. 선풍기 바람이 시려 틀지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리기를 반복하다가 전화가 왔다. 


“당장 요법은 내가 할 테니 서류 작업은 다녀와서 네가 해.”


어 이거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분명 예전 회의 때 주임님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코로나로 업무 공백 발생 시에는 직원들이 공백기의 업무를 나누어서 하기로 정리하지 않았나. 

왜 이제 와서 말이 바뀌지? 

열이 끓는 중에도 입이 벙긋거렸다. 놀다가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걸린 건데 일주일치 연차를 쓰고, 아프고 나서 돌아가면 일주일치 일을 더 하라고? 

그에 대해 말하자 "그럼 어떡하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배 째라는 투의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 아프니 서러운 일이 배는 크게 다가왔다.

이놈의 코로나 빨리 좀 지나가라. 더 서러운 일 안 생기게. 

예전이라면 '어? 방금 좀 무례했어~' 하고 넘어갈 일이 아픈 상태에서 들으니 차곡차곡 개켜서 굳이 내 마음속 옷장에 넣어두게 되었다. 

덜 마른빨래를 옷장에 넣어두면 냄새가 배어 옆 옷들에까지 냄새가 옮을 텐데도 어찌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숨기기 급급한 나머지 내린 선택이었다.


그날, 이불속에서 눈이 퉁퉁 부은 채 다 뜨지도 못하고 받았던 그 전화는 그래서 참 오래 가슴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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