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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Sep 19. 2023

응급실은 언제 가는 걸까?

늑대물린여자 16



응급실은 언제 가야 할까?

숨이 넘어갈 때? 손가락이 잘렸을 때? 두드러기가 났을 때? 머리가 아플 때?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기억하는 응급실은 언제나 뿌연 하얀색과 쓴 소독약,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그곳에 간 기억은 없었다. 늘 누군가 들처업고 달리거나 차를 태워 내 몸을 데려갔던 기억만이 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멀쩡하게 의사소통이 된다면 응급실을 찾아가기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날은 점점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손에 왔던 마비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알아서 풀렸다. 언제나처럼 삐걱거리는 양철로봇 같은 팔로 되돌아온 손은 만능 파스와 함께라면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었다. 한번 손님으로 찾아온 불면증은 흔적처럼 남아 예전의 잘 자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생각은 자기 꼬리를 물고 끝없이 빙글빙글 돌기 마련이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 그 주제가 각인되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흔히들 북극곰 효과라고들 말하지 않나.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라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북극곰을 생각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심리란.


그 무렵의 나는 하루 종일 의사의 말에 갇혀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루푸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이었다. 뒷골이 땅겨 눈이 지끈거릴 지경이 되었는데도 초원의 양 떼처럼 머릿속을 노니는 생각들을 따라가느라 잠에 들지 못했다. 완전히 도망가지도, 마주하지도 못한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벚꽃이 모두 졌다. 올해 벚꽃은 예년보다 늦었다. 이상기후 탓이라고 뉴스에서는 한참을 떠들었다.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 아카시아가 온 사방에 한 번에 피어난 봄산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꽃이 한 번에 피는 건 저승에서 뿐이라던데요?"

"세상이 망할라나 보지."


면담을 끝내고 환자와 창밖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며 대화를 나누던 나는 불현듯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요 며칠 잠을 설쳐서 그렇다. 안 맞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답답해지는 가슴을 누르며 병동을 나섰다.


그날부터였다. 잠자리에 들려 누울 때마다 가슴과 등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누군가 가슴을 꾹 짓눌러 숨이 막히는 듯한 압통이 들었다. 숨이 막혀 누울 수가 없어 비스듬히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운동을 잘못한 건가?’


손마비가 풀린 후, 나는 매일 퇴근 후 기숙사에서 가볍게 무산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면 이런 일은 없겠지. 불면증도 나아지겠지 싶은 마음으로 하고 있는 운동이었다.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던 홈트레이닝이 혹시 잘못된 것일까? 끙끙거리며 크게 숨을 뱉었다. 핸드폰 속 검색창들에서도 젊은 나이의 가슴통증들은 대부분이 근육통인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의심이 풀렸다. 근육통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나아지리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잠을 청했다.


주말이 되었다. 피로가 누적된 채 집으로 돌아온 일요일 새벽,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눈을 떴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단순한 근육통이 아닌 누군가 쥐어짜는 듯한 압통으로 다가왔다. 앉아있는데도 숨이 가빠 일어나 초조하게 방 안을 걸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피로감과 졸음이 지나쳐 눕고 싶은데 누우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앉아있으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떤 자세로 있어도 불편했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동생이 깜짝 놀라 “언니, 뭐 해?!” 하고 물었다. 이렇게 방 안을 걷고 있자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 또 침대에 기대어 앉아 핸드폰 게임을 했다. 물론 한 손으로는 심장 쪽을 누르고 있었다.


아프면 일어나 걷다가 나아지면 앉는 나를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동생은 응급실에라도 가보라고 하였지만, 망설임이 먼저 들었다. 응급실은 진짜 아픈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닌가? 나는 내 발로 걸어서 응급실에 갈 수 있는데. 지금 이렇게 핸드폰 게임이나 뿅뿅거리고 있는데 이게 아픈 사람이 하는 행동이 맞나?


“좀 더 참아보고 밤 돼도 안 나아지면 가볼게.”


괜찮아지겠지.라는 낙관적인 말은 이번에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밤이 되자 점점 더 심해지는 압통에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혔다. 결국 더 참아보겠다는 호기로움을 접은 나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 택시를 잡아타고 응급실을 향했다. 응급실로 향하는 와중에도 이 정도 증상으로 응급실로 가도 되는 걸까? 하는 자기 검열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응급실에서는 가슴의 통증을 중증응급으로 분류하여 바로 중증응급실로 나를 안내했다. 다들 침대로 실려가는 와중 내 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데 왜 나는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게 되는 건지. 돈도 내가 내고 이용하고 거짓말한 것도 없는데 당당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베드를 세워 앉은 나는 엑스레이와 초음파, 심전도, 피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빠르게 진행했다. 끙끙거리고 있자니 강한 진통제가 왔다. 진통제를 한번 맞았음에도 압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몇 시간 후 출근을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진통제는 한번 더 주사되었다. 새벽 4시였다. 계속 침대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던 나는 그때서야 처음 내 담당의를 만났다. 의사는 심장을 진찰하였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류마티스 선생님에게 증상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라는 말만 했다. 


소염진통제 3일 치를 손에 쥐고 병원을 나올 때는 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대로 출근할 기력은 없었다. 회사에 병가를 신청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침대 구석, 벽과 벽사이에 몸을 구겨 넣어 앉은 채로 잠이 들 때 나는 이제 편히 누워서 자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지금 당장의 피로가 더 급했다.


그날 이후로도 누워 자는 것은 내게 요원한 일이었다. 누우려고 시도할 때마다 안된다는 듯 바닥에서 손바닥이 튀어나와 나를 꾹 허공으로 밀치는 기분이 들었다. 앉아있을 때는 상관없는데 눕거나 엎드리려고만 하면 가슴과 등부분이 아팠다. 주치의는 응급실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면 이상 없는 게 맞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죠? 내가 지금 눕지를 못하겠는데. 아픈데. 의사는 내가 너무 예민하고 우울한 사람이라고 했다. 관절통도, 가슴통증도 다 거짓이라는 거다. 루푸스 환자들은 다들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짜증을 냈다. 

네. 그런가 봐요. 루푸스라는 병도 결국 내 통증과는 무관한가 봐요. 난 오히려 예전보다 더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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