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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Dec 16. 2023

시어져서 배송된 엄마표 김장김치

'시다', '쉬다'



다들 이번 년도 김장하셨나요?


저희 집은 항상 어머니가 가게에서 하는 김장을 얻어다 먹고는 합니다.

어머니는 저번 주말에 김장을 했습니다. 이번 연도에는 간단하게 120 포기만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추값, 무값, 고춧가루값...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값이 말도 안 되게 늘어 김장을 더 할래도 하기 어렵다고 하시네요.

그래도 120 포기? 혹여 제가 간단하게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지만, 작년과 재작년에도 300 포기를 하신 어머니가 올해는 그 반도 안 되는 김치를 하셨으니 그렇게 느끼실 만도 합니다.


김장을 하시고 월요일 오후, 김치 다섯 박스를 서울로 부쳤답니다.

화요일에 신이 나 퇴근하는 동생에게 통삼겹살을 사 오라고 했어요. 대파도 씻고 양파도 씻고 물에다 국물내서 수육할 준비를 다 해놨는데 주인공인 김치가 안 오네요. 일곱 시까지 기다리기만 하다가 결국 정육점에서 서비스로 주신 떡갈비를 구워 먹었습니다.


화요일 오전에 출발해 도착할 거라는 우리의 기대를 깨고, 김치는 수요일 저녁에야 도착해 버렸습니다. 영상 15도를 오가는 따뜻한 날씨에 하루종일 택배차 안에 있게 된 김치가요.






"우와, 엄마 김치!"


박스를 열자마자 달큼하고 매콤한 생김치 향이 부엌을 채워야 마땅하죠. 막 김치 담갔을 때의 향 아시죠?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도는 생김치의 맛.

그런데 웬걸? 박스 속 김치에서는 시큼 쿰쿰한 냄새가 확 풍겨옵니다.


"어라?"

"언니 냄새 이거 왜 이래?"


불안합니다. 그래도 때깔은 고우니 일단 반포기 잘라 식탁에 내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입에 넣자마자 아이고! 머리를 꿍 울리는 이 새큼함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망했다."


새 김치를 두고 작년 김치를 꺼내오고야 맙니다. 차라리 이게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왜 김치가 다 쉬었어."

"못 먹을 정도는 아니잖아."

"언니가 다 먹어."


저녁을 먹은 후 툴툴거리며 김치를 정리했습니다. 힘없이 박스를 까 안의 내용물을 김치냉장고용 상자에 옮겨 담았습니다. 분명 못 먹을 정도로 상한 건 아닌데 변한 맛 때문에 쉽사리 젓가락이 가지를 않습니다. 이 와중에도 동생이 한 말이 신경 쓰입니다.


'시다'는 뜻은

맛이 식초나 설익은 살구와 같다.

입니다.

'쉬다'라는 뜻은

음식 따위가 상하여 맛이 시금하게 변하다.

이지요.


식탁 위를 고춧가루 범벅으로 만들면서도 쉰 김치는 먹지 못하게 상한 김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신김치라고 하는 게 맞다고 말하니 동생이 지금 그게 중요하냐며 빨리 손이나 움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머리는 도통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합니다. 김치가 시다고 말하게 되면 신맛이 나는 김치와 시어버린 김치는 어떻게 구분하지요? 다섯 상자를 김치 통에 옮겨 담으면서 결론 나지 않는 생각을 동생과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짜증 내던 동생도 금방 제 질문에 흥미를 느끼고 함께 머리를 맞댑니다.


"결론은 김치가 신건 지금 신 맛이 나니까 '시다'라고 현재 형을 쓰고, 김치가 시어버린 건 이미 시었다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김치를 다 옮겨 담고 난 이후 제대로 찾아보니,

이 경우에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 '시다'를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바꾸어주면 된다고 합니다.


시다+지다  -> 시어 + 지다 => 시어지다.

김치가 시어졌다.


이렇게요.



국어 문장은 속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물론 김치냉장고 속 가득 들어앉은 저 김치들은 하나도 속 시원하지 않지만요.






어머니한테 안 그래도 문자가 온 참입니다.


"김치 맛 어떻니?"


맛있게 먹었다고 해야 할까요, 다 시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한참 고민하다가 본의 아니게 어머니의 문자를 씹은 불효녀가 되어버렸습니다. 동생도 고민하다가 안 읽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화를 드려서 답을 하려고 합니다.


솔직이 답일까요, 위안이 답일까요.

여러분이 어머니라면 딸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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