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새해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춥네요. 발끝까지 오므라들어서 한참을 침대 속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신년부터 호되게 앓았습니다.
막냇동생이 휴가를 나오면서 옮기고 간 감기를 온 가족이 돌림노래처럼 옮아서 모두 독한 감기를 열병처럼 앓고 있지요. 면역력이 없는 저는 동생을 만난 지 거의 이틀 만에 콜록거리기 시작하다가 해가 넘어가는 1월 1일에는 이불속에서 끙끙 앓고 있었답니다.
올해가 얼마나 좋으려고 이렇게 벌써부터 호되게 액땜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면 매번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어머니는 "액땜했다 쳐~"라 말하고 넘어가셨어요. 그게 옛날에는 저를 더욱 속상하게 했죠.
'나는 위로를 받고 싶은 건데 그걸 좋다 셈 치라고?'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면 저는 액땜이라는 말의 뜻도 잘 알지 못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액땜'은 이런 뜻입니다.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김.
이미 겪은 일은 지나간 일이죠. 액땜했다 치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은 당사자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나쁜 일을 이미 지나간 사건으로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원래는 더 나쁜 일이 벌어졌을 텐데 이미 벌어진 가벼운 사건으로 무마했다고 치자.라는 말은 어른들 나름의 위로라는 걸 이제는 알겠습니다. 크면서 어머니의 말버릇을 닮아 저도 모르게 툭툭 나오게 되는 "액땜했다 셈 치자."라는 말이 스스로 자위하는 말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또렷하게 알 것 같습니다.
모르고 쓰는 단어와 알고 쓰는 단어는 풍미가 다르니, 이제는 더 맛깔나고 풍부하게 쓸 수 있을 듯합니다.
새해입니다.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액땜했다 셈 치시고 앞으로 있을 좋은 날을 기대하며 움츠렸던 어깨를 1cm만 뒤로 펴봅시다. 자연스럽게 가슴이 들리고 턱이 들려 당당한 자세가 나오도록요.
반갑습니다.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