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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Feb 26. 2018

케냐: 아픈 경험들이 더 오래간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자


2018년 1월, 한국에 희대의 강추위가 강타했을 때 나는 매일 낮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헤매고 있었다.


역대급으로 위기감을 느꼈던 출장이었고 그 시간들을 지나고, 버티고, 뒤돌아보니 하나 남는 것은

힘든 시간은 확실히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시작도 안했는데 지친다


10개월 만의 출장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출국하던 날, 인천공항에는 눈보라가 심하게 치면서 방콕행 비행기가 2시간 반 가량 지연되었고

방콕에서 케냐Kenya로 우리를 데려다 줄 비행기는 1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결국 출발해 버렸다.*


가장 빨리 나이로비Nairobi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케냐항공에서 제공하는 카타르 항공권을 이용해 카타르 수도 도하Doha를 들어갔다가 가는 것.


가끔 공항이란 곳은 인생의 학교인가 싶다.


멀쩡하게 해외에서 여행 잘 다니다가도 공항 앞에 와서야 여권을 놓고 온 게 생각나서 숙소로 돌아간다거나

출국 때 보딩 시간이 늦어 뛰다가 기내 수화물을 까먹고 한국에 돌아와서 찾은 적도 있다.


어쩔 수 없지만 최선의 방법이기에 뜬금없이 카타르를 갔다가 (원래 아름다운 곳인데 늘 이렇게 지나간다) 어렵게 케냐에 도착은 성공했지만... 케냐 안에서도 또 들어가는지라 국내선을 타려고 보니 이젠 짐이 하나가 안 왔다.


인천 > 방콕 3,655km
방콕 > 도하 5,258km
도하 > 나이로비 3,353km
나이로비 > 말린디 560km... 헥헥...



위기의 땅 케냐와 위기가 닥친 나


그렇게 첫날부터 꼬인 일정들은 도착해서도 모든 것이 뒤로 조금씩 밀리며 꼬여만 갔다. 하루에 12시간씩 무더위에 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숙소는 호텔급으로 좋았지만,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자 중요한 결정들이 번복되며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모두가 힘들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빈번히 있는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몸까지 아팠다. 입술이 터지고 감기가 왔다가 허리디스크가 도졌다. 잠을 거의 못 잤고 숙소에서 현장 사무실 간 거리가 차로 2시간이라 매일 왕복 4시간 이상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낮에는 땡볕에서 종일 무리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말하자면 first world problem**이다. 배고픈데 참고, 아픈데 치료를 못 받고 참고, 배우고 싶은데 학교에 못 가고 참는 아이들 앞에서 공감될 얘기는 아니다.



동아프리카의 기근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힘든 만큼 보람 있을 거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면 굳이 왜 내가 하나...'라고 주문을 외워 보지만 99%는 포기하고 싶었다. 엉성하게 마지못해 하는 것이 더 싫었다. 결국 궁극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1%의 '그래도...'였다. 그 한 가지 이유를 찾는 게 힘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진 않았지만 그 역할을 반드시 해내야 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열병 같은 3주를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힘들었던 날들을 뒤돌아보니

최선을 다하면 아쉬움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영웅의 인생에는 항상 역경이 있다. 지나고 보면, 힘든 경험들이 더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삶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자부심을 가지는 근원이 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인데 반드시 완주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또 한 발자국 떼어야 하는 이유는 그 한 발자국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또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이정표가 되어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 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

-알프레드 테니슨



평창 동계올림픽 최대의 유행어로

내일의 나보다 더 어린 나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young me

가야돼!



전진해야 한다. 오늘 하루도.




*[코드셰어(공동운항)하는 비행기의 경우 지연이 되면 그다음 연결편 비행기가 기다리도록 요청할 수 있다. 단 항공사가 다르면 적용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진국민들만 고충이라 부르는, 생사를 가름 짓지는 않는 (상대적으로) 힘든 일들. 요컨대 인터넷이 지하철에서는 너무 느리다거나, 물이 하루 안 나와서 못 씻었다거나 오늘 점심 메뉴를 뭘 먹을지 정하기가 너무 어렵다거나... 누군가에는 상상 이상의 사치인 그런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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