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열 번째 아프리카 출장기를 뒤늦게 쓴다.
2018년 4월,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잠비아Zambia로 향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로 유명하고, 우간다나 케냐는 이름이라도 친숙한데, 잠비아는 생소했다.
거긴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아동이 잠비아 아동인 것을 제외하면, 크게 특징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말로 오랜만에 존경할만한 사람, 친구를 만났고 편지도 몇 번 써보지 않은 후원 아동을 직접 만나며 밀려오는 뭉클함에 감격한 기억도 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 아동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올해 열네 살 나오미.
나오미에게는 동생 오비와 에디나가 있다.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나오미는 소녀가장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드라마다. 주인공은 외롭지만 씩씩한 '달려라 하니' 같은 캐릭터에, 언니/누나를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는 착한 동생들.
기억에 남는 순간은, 나오미와의 인터뷰 중.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힘든 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꼭 물어보게 되는 질문이다.
혹자는 아이의 아픈 현실을 왜 꼬집느냐 묻고, 나는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말을 건다. '무엇을' 묻느냐 보다는 '어떻게' 묻느냐를 더 신경 쓰게 된다.
"힘들 때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아이의 대답에 가슴이 찡한다. 사람에게 외로움만큼 힘든 것이 또 있을까.
어디선가 읽었는데, 오늘 고생하고 내일 쉬는 것과 오늘은 쉬는데 내일 힘들어야 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전자를 택한다고 했다. 지금 잠깐 아프고 고생해도 그 후에 좋은 걸 가질 수 있으니까. 사람은 이토록 미래에 대한 희망에 기대어 사는 존재다. 나오미에게는, 오늘 외롭고 힘들어도 기대할 내일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잠비아에서 만난 티타Tita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나보다는 세네 살이 많은 언니 같은 친구였다. 촬영을 같이 한다는 건 잠자는 시간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이동하고, 기다리고, 통역하고, 계획을 짜며 함께하는 일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잠비아에서는 월드비전이 'stop child hunger (굶는 아동을 줄입시다)' 같은 캠페인을 추진하면, 진행되다가 흐지부지 되는 일도 많아. 그런데 유엔이 같은 이니셔티브를 밀면, 전국에서 정말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게 돼. 그래서 난 유엔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내 이름을 건 재단을 만들고 장학사업을 하는 게 꿈이야."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 그녀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이유였다.
일상을 살아가는 일, 감사하는 일, 어쩌면 모두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열네 살 나오미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난 십여 년 살아본 경험으로 인생이 고달프다 느낄 수 있겠지만,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이 남아있고 지난날들이 힘들었다고 해서 앞으로 꼭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남들보다 힘든 일을 조금 더 일찍 겪은 것뿐이고, 그만큼 더 나중엔 힘든 일도 거뜬히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지구 반대편에서 어느 날 처음 만난 아이 나오미와 이야기하며,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봐준 친구의 생각이 났다. 많이 힘들지?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돌아가신 거야? 장례는 잘 치렀어? 엄마는 괜찮으셔? 반 친구 누구도 아무도 감히 그런 걸 묻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먼저 나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물어봐줘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오미는 아마도, '힘들 때 얘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힘들다고 말한거다.
우리가 힘들 때 옆에 누군가에게 얘기할 사람이 있다면,
가끔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이 아이들을 만나러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넜듯, 결국 사람과 사람은 길이 있어야 만날 수 있으니까.
'힘들겠다,' '힘내' 라는 말보다, 가끔 '뭐가 힘든지' 먼저 얘기하기 어려울 때도 많으니까. 그런 말이, 그 사람과 나를 이어주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런 '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