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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Apr 24. 2019

세 번째 가나에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초심을 되새기며 앞으로 앞으로

너무도 무더웠던 2016년 2월, 그리고 같은 해 10월

평생 한 번 가기도 어려운 가나를 두 번 다녀왔다. (지난 브런치 참고)


그리고 2019년 4월

세 번째 가나 Ghana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쯤이면 문득 생각이 든다.

가나랑은 무슨 인연일까?


중동이나 유럽을 경유해서 비행시간만 대략 20시간, 경유시간 포함하면 보통 30시간은 걸리는 머나먼 서아프리카의 나라.


세 번째 가나를 갈 때에는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기대도, 걱정도, 설렘도


하지만 삶이라는 게 참 생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머리에서부터 목까지 줄줄 흐르는, 체감온도 38도의 무더위 한가운데서


잊고 지냈던 옛 꿈과 재회하며 든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때는 2006년, 미국 오리건 어디엔가 고등학교 졸업식.

4학년을 통틀어 전교생이 200명, 고3(12학년)이 6-70여 명이 전부인 작은 사립학교였던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여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쓴 학생이 무대 위로 올라오면

학생의 어린 시절 사진이 커다란 스크린에 뜨며 학생과 학부모들에겐 웃음을 선사하고,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미리 써낸 미래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는 졸업식을 치렀다.


두 번의 전학으로 1년밖에 다니지 않은 고등학교라 별 감회는 없었지만, 내 차례가 되자 발표된 동양에서 온 여학생의 당찬 포부에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내 이름을 따서 지은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싶다고 썼다.


2006년은 미국이 한창 아프간 전쟁 중일 때로, 당시 나는 ‘종군기자’라는 직업도 알지 못했지만 그저 그 현장으로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처참한 현실과 삶과 죽음 그 경계의 모든 일들을 경험하고 싶다는, 다소 생뚱맞으면서도 허세에 사로잡힌 (?) 생각을 밝혀 남자애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을 가며 국제학과에 진학했지만, 10년이 넘게 지난 그 후로 그 둘 중 어느 쪽의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나 아이들은 공부할 때 눈이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모른다.


2019년에 와서 때아닌 고등학교 시절 감상에 젖게 된 건 가나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해서인 것 같았다.


3년 전 갔던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나를 알아보고 기억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좁은 교실이 터질세라 방학인데도 아이들이 모여 읽기 수업을 놀이하듯 하고 있었다. (교사는 따로 없고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다)


조금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수업이라 별거 없다. 스펠링 배틀, 셈이나 산수, 동요 부르며 손뼉 치고 뛰어노는 데 가사가 공부다. 하긴 집에 가면 할 일도 딱히 없다. 엄마 아빠가 놀아주겠나. 물 긷고 오거나 장작을 때거나, 친구들이랑 공터에 모여서 여자애들은 쎄쎄쎄, 남자애들은 비닐봉지로 만든 공을 차고 논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그랬을 거 같다. 컴퓨터도 없고, 티비도 없고. 이 아이들에게는 학교 가면 컬러풀한 책들이 있고, 매일 등하교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며 재미있는 놀이가 있는 수업시간이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취감과 자신감은 쑥쑥 자란다.


아마 너무도 즐겁게, 열심히, 기특하게 수업을 받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내가 왜 여기 와있는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어 졌는지가 떠올랐고, 나도 한때는 무엇인가를 열망하고 꿈꿨다는 게 기억났다.


그래 나는 왜 언제부터인가 그냥 회사에 들어가 이런저런 맡겨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걸까?


그게 썩 나쁘지 않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가끔 그 일이 잘어울린다, 잘한다 소리를 들어도, 나는 도대체 회사에서, 팀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돌아 돌아왔음에도, 시간이 지나 나에게는 일이 손에 익어버렸고 안정감 대신 회의감에, 자신감 대신 무기력함에 찌들어 있었다.


일 년여간 그 답답한 안갯속을 헤맨 기분이었는데 가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오랜만에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참으로 오랜만에 든 것이다. 내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이 아이들에게 교복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나 정부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제공하나 교복과 학용품을 사지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고,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된다.


내가 열심히 살고 싶은 만큼 살지 못할 거라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당당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돈을 많이 벌려면 이직을 해서 기부를 하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을 많이 벌고, 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를 택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문제 투성이,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어수선한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나아가 사회 구석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존재하는 것


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꿈이 있어야 힘든 것도 견딜 수 있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데

잠시 그게 없어서 외롭고 방황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명쾌한 답변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 물음표 하나가 떠오른 것만으로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이라는 예감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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