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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마담 Aug 20. 2022

상여자 특) 프로포즈 먼저 함 #2

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런 사람을 내가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위험한지 모를 리 없건만 피드 속 그는 외형이며 분위기 등 너무 많은 부분에서 ‘내 스타일’이었다. 쭉 피드를 내리며 보니 내가 그의 게시글에 하트를 누른 양이 제법 되었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을 보아 아마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예의 표시만 해댔던 게 분명하겠지만.

     

아무튼 지금껏 파악해본 여러 사실을 종합해 봤을 때 그와 나는 대략 2015년부터 친구 사이었던 듯했지만, 사실 오늘까지도 나는 그를 전혀 몰랐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오백여 명이나 되니,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칠 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그의 피드를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본 것이 처음이었다. 게시글은 많지 않았다. 아마 나처럼 열과 성을 다해 인스타그램을 하는 편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 관심 두지 않았으니 몰랐을 만도 하지.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은 그날, 그 메시지를 이어 나눈 대화들로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서른여섯이라는 것, 수영선수였고 현재는 지도자로서 여전히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수 출신이라니, 당연히 수영도 엄청나게 잘할 것 아닌가? 나도 수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사 년이 넘었으니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강사의 유려한 시범을 볼 때마다 번번이 흠칫 놀라곤 했으므로, 수영을 잘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에게 흥미가 일 수밖에 없었다.

     

- 13 아기가 무슨 뜻인가요?

     

감수성이 가장 극에 달했던 학창 시절에, 센티멘탈한 것들에 아주 몰두하였을 때, 나는 작가 이상에 푹 빠져있었다. 오감도.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 약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모호한 시를 해석하기 어렵고, 그땐 더더욱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그의 짙은 어둠과 깊은 감성을 좇았다. 그때부터 지금껏 사용해온, ‘제13의 아해’를 따서 지은 13으로 시작되는 아이디는 그 때문인데, 그것에 대해 물은 사람은 내 기억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상을 좋아한다는 내 답에 그는 내가 출간한 것을 보았다며, 작가냐는 말과 함께 일과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지를 물었다. 그것은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한편 나에 대한 관심이라 느껴져 기분이 꽤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나누는 대화답지 않게 그와 나누는 대화는 어색함이 없었다. 근래 만났던 몇몇 사람들과 대비하면 더욱 그랬다. 그저 재미가 없던 경우도 있었고,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대화를 이어 붙이려 머리로 주제를 짜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람과의 대화는 재미있었고 굳이 골똘히 생각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동남아 여행을 더 즐겨보고 싶어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그는 프리 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을 추천했고, 그가 좋아한다는 격투기에 대한 답으로 나는 이십 대 초반에 프라이드의 진정한 팬이었음을, 그 후로 오랜 기간 내 이상형의 자리를 차지했던 건 캐빈 랜들맨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피곤도 잊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새벽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어떻게 처음에 알게 된 사이인지, 어떻게 그를 몰랐을 수 있었는지, 이 사람은 정말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지. 그런 문제는 이제 슬슬 뒷전으로 밀리고 있었다. 중요한 건 무료했던 일상이 조금은 변화할 여지가 보인다는 점과 아직은 내게 ‘사람’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 그뿐이었다.   

   

잠이 들어도 무방한, 피로가 조금씩 몰려오는 야심한 때에 간간이 그는 연락해오곤 했다. 대화 주제는 조금 더 다양해졌고, 둘 사이의 몇몇 비슷한 취향을 찾기도 했는데, 대학생이던 시절 푹 빠져있던 언더 힙합이 가장 놀라운 공통 취향이었다. 마스터플랜이나 소울컴퍼니, 무브먼트 . 과거에 아주 좋아했지만 이제는 잊힌 줄만 알았던 취향들. 소울맨 앤 마이노스, 그 앨범 진짜 명반이죠, 이루펀트 엄청 좋아했어요. 아 칼날은 지금 뭐하나. 화나는 뭐한대요? 신나게 지난 취향을 서로 늘어놓다가 흠칫했다. 어쩌면 생각한 것보다 더 나와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몰랐으므로, 나는 어스름하게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연락이 없는 날엔 그의 피드를 들여다보거나, 한 장뿐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거나, 둘이 나누었던 대화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곤 했다. 막상 읽어보면 사사로운 대화들 뿐이었는데도 나는 그 대화를 읽는 걸 즐겼다. 오랜만이었다. 그런 감정은. 얼마 전 강렬한 만남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것은 과거 금사빠 대장으로 날렸던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있었다.

      

친구들도 나와 같이 나이가 들어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6대 4 정도의 비율로,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미혼과 비혼 친구들의 수도 상당했지만 누군가가 애인이 생기면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무례할진 모르지만, 친구들의 남자 친구에게 ‘예랑’이라는 기겁할 만한 호칭을 붙여놓곤 천연덕스럽게 놀리는 것이 우리끼리의 짓궂은 장난이자 하나의 친근한 문화였다. 딱히 결혼 생각을 해 본 적 없는 나였지만, 문화를 공유하는 준거집단의 멤버로서 나 역시 그에게 장난스레 ‘예랑’이란 칭호를 붙여보았다는 건 당연한 일일 터. 절친들에게 그의 SNS 속 사진을 슬쩍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했다. 어찌나 신이 났던지 K마저 나의 설레발에 맞장구를 쳐주며 ‘너의 예랑이, 참 괜찮다.’며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를 응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완전한 삼십 대 중반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은 내 모습이 의식될 땐 스스로가 우습기도, 한심하게도 느껴지기도 하였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불타는 청춘>이나 <돌싱글즈>, <나는 솔로>에서 본 중년의 러브스토리는 얼마나 뜨거웠던가…! 역시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사람의 문제인 거라고, 내가 이상한 건 결코 아니라고 자위하며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아무튼 한번 시작한 대화는 여간해선 잠이 들 때까지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다음에 보면 커피 한잔하자’ 라거나, ‘다음에 보면 원 포인트 레슨 정도는…’이라고 말하면서도 꼭 ‘다음에’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대체 언제, 언제 만난단 말인가. 벌써 전 연인과 헤어진 지 5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나 한물갔어’라고 떠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름 아직 망하진 않았다고 믿을 만할 증거로 소개팅도 두어 개 잡혀있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연륜이 있었다. 이 흐름을 타거나 타지 않는 것을 계기로 내 인연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수많은 평행우주 속 그와 만나는 세계, 안 만나는 세계를 상상하다가 나는 결단을 내렸다. 초조해졌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아니라면 이번 달은 쭉 그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당장 ‘내일’ 그를 만나야 한다. 약속을 잡으려면 어쨌거나 연락을 해야 할 텐데, 그의 스타일로 봤을 때, 오늘은 이미 늦어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뭐하냐’는 메시지를 보내기엔 어쩐지 민망했다. 할 일 없는 사람으로, 혹은 적나라하게 호감을 드러내는, 조급하고 욕망에 가득 찬 모습으로 비치긴 싫었다.

      

연락이 먼저 오게끔 작전을 짜 볼까.  

    

짧은 기간 수많은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이 있었다. 그가 ‘수영’으로 내 호기심을 끌어냈듯이, 그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그의 관심을 끌어야만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특히 종합격투기나 복싱 등의 이야기를 얼마나 길게 나누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격투기야말로 그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꼭 관심을 가질 주제임이 분명했다.   

   

자만추는 절대 거저 얻을 수 없다.      


열아홉부터 년 동안 끊기지 않고 했던 연애 경력은 내게 사랑에 관한 진리를 술술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부여했다.      


인연을 얻고 싶다면 뭐라도 해라.      


유튜브에서 내리 대여섯 개의 복싱 관련 영상을 본 뒤, 그것을 캡처해서 내 스토리에 올려두었다. 아마도 그것을 보 그냥 지나치진 못고 연락을 해올 테지, 하는 심산이었다.   

   

으, 징그러워.     


만일 그가 이 정밀하게 짜인 작전을 알게 된다면? 이 모든 징그러운 스토리의 전말을 알게 된다면? 오소소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 ‘만약에’를 더 생각하고 있을 여력은 안 됐다. 대신 그가 이걸 본다면 분명 무슨 반응이 있지 않을까, 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은 오직 하루뿐이니까. 나는 낚시꾼이었다. 미끼를 던져놓고 물고기가 그걸 물 때까지 기다리는.      



과연.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나는 자동으로 머리맡에 둔 핸드폰부터 찾았다. 얼마 못 잤구나. 아침 일곱시였다. 새벽에야 게시물을 올렸으니 그 사이에 그가 확인을 했을지, 안 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과연 물고기는 미끼를 물었을까. 인스타그램 아이콘 옆의 1이 반짝이고 있었다.     


(글러브 이모티콘)     


오예!!!! 역시 그의 메시지였다.      


- 이러다 복싱 칼럼 쓰시겠어요     


- 수영장 말고 체육관 갈 기세예요     


- 격투기도 좋아하시고 연주님 의외로 와일드하신 게 있네요     


지금이다.      


- 의외가 아니고 실제로는 와일드해요. 추천해주세요 선수. 오늘 쉬면서 보게요.      


- 오늘 일 쉬세요?     


다시 한번,     


- 연차가 많이 남아서, 내일까지 쭉!     


- 그럼 커피 한잔 하실래요? 점심에    

 

예스.      


촘촘히 짜인 내 작전을 절대 알지 못할 상대의 순진무구한 답변을 보며 나는 되뇌었다.


짜식, 나는 대어를 낚는 낚시꾼이야. 상여자라구.


처음 메시지가 오고 딱 보름이 지난 후였다.    

       



홍마담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VI-WRQYPQFToxaq4Nn04A

홍마담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hong_ma_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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