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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마담 Aug 25. 2022

상여자 특) 프로포즈 먼저 함 #3

첫 만남은 우이동이었다. 그가 찾아 보내준 카페는 우이동이라는 동네에 걸맞게 청량한 자연 뷰를 자랑하면서도 감각적이고 ‘힙’한, 딱 요새 유행하는 느낌의 카페로 보였다. ‘숲 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좋아요’, ‘초록초록해서 너무 예쁩니다’ 리뷰를 보아하니 평도 좋았다. 합격. 과연 이 사람, 센스가 나쁜 것 같아 보이진 않더니만.

      

물고기가 미끼를 무느냐, 마느냐를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고 일찍 깬 터라 컨디션이 좋진 않았다. 아침에 무엇을 입을지 옷을 죄다 꺼내 두고 한동안 고민하기도 했던 터라 벌써 체력이 닳아버린 듯했다. 룸미러로 살짝 확인해 본 내 얼굴도 ‘그닥’이었다. 눈도 살짝 충혈된 데다가 피부도 푸석푸석해 보였다. 하루라도 미리 약속을 잡았으면 컨디션 관리도 좀 하고 준비도 했을 텐데. 살짝 아쉬움이 남았지만, 첫 작전에 이만큼 먹혀들어 간 것가.


초보운전에 초행길이라 그런지, 진짜 그를 마주할 생각에 그런지, 잔뜩 긴장된 채로 목적지에 도달해 어찌어찌 평행주차까지 성공했으나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미리 가서 앉아있는 편이 긴장한 티를 덜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차에서 내려 약속한 카페로 다다른 순간, 휴무라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단수로 인해 금일 휴업합니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당황하던 차에 때마침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그였다.

     

“여기 앞인데요. 가고 있어요.”     


고개를 돌리니 저 밑에서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

뭐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모자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보다 살짝 작아 보이는 키에, 집에서 대충 걸치고 나온 듯한 차림새.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데?

          


실망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나는 그에게 가볍게 묵례하며 애써 반갑게 웃어 보였다.

     

“주차장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 주차했어요. 카페 문 닫았던데, 어떡할까요.”

     

난감한 표정으로 핸드폰에 무엇인가를 검색하는 그의 옆에서 어색하게 기다림을 시간을 갖다가, 문득 이십 대부터 내가 수많은 이성에게 점수를 땄던 포인트가 ‘소탈’, ‘털털’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것을 싫어하는 남자는 내가 기억하기론 거의 없었다. 이 불편함에서 벗어날 겸, 좋은 인상도 줄 겸 나는 얼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냥 요 근처 동네 카페 아무 데나 가시죠. 전 괜찮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한 카페는 아주 평범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렴하고 특색 없는, 아마도 이 동네 주민들이 타깃일 만한 편안한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잔씩, 그리고 베이글과 스콘을 주문하고 돌아온 그가 자리에 앉았다.

     

이 사람이 나를 일주일 동안 설레게 했던 바로 그 사람이 맞나. 예상치 못했던 평범한 카페 탓인지, 전혀 꾸밈없는 그의 차림 탓인지, 만나기 전까지 진정이 안 되던 심장박동은 언제부턴지 모르게 잠잠해져 있었다. 뭐, 그 심정은 서로가 마찬가지인지 그도 전혀 긴장한 티 없이 아주 편안하게 베이글을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 이런저런 사사로운, 이를테면 운동, 수영, 가족, 이전 연애들 같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웃어 보인 건 잠깐 연애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연애 경험이 많은 것이 단점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지, 반대로 한껏 티를 내고 싶었던 건지, 자꾸 본인은 연애 경험이 없는 ‘모쏠’이라는 실없는 장난을 치면서 그가 한 마디를 꺼냈다.

      

“저는 모쏠이니 여자 친구는 없었지만, 전 썸녀들이 저더러 하관이 예쁘다고 그랬거든요.”

     

그 말을 던지고 그가 슬쩍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SNS 속 내 스타일의 사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 이 사람 웃는 입매가 예쁘구나, 내가 느낀 첫 ‘심쿵’의 순간이었다. 만일 매력 어필의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성공한 셈이었다.

    



그의 웃음에서 시작된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와 매끄러운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고, 만나기 전 카톡 대화에서처럼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 거리를 좁히는 말들이 있었다. 그의 피드에서 보았던 한라산 등반 사진을 언급하면서 나 역시 한라산을 등반해보았노라 우쭐대자, 그는 정상까지 두 시간 정도 걸렸을 뿐이라며 자신과 내가 절대 같지 않다는 식으로 손을 저었는데, 그 ‘발끈함’은 둘 사이에 폭소를 일으키면서 첫 만남의 어색함을 덜어냈다.

      

어느덧 얼음이 녹아 바닐라 라떼의 맛이 싱거워졌을 때, 첫 만남의 선물로 준비해온 내 책을 건네주기 전에 나는 표지 안쪽에 짤막한 말을 썼다.


한라산 한 시간 오십 분 인증하시면 피자 다섯 판 쏠게요. -연주-

     

“그런데 슬슬 배가 고픈데, 점심은 뭘 먹죠?”

    

꽤 오랫동안 미소가 어려있던 그의 입은 밥을 먹지 않고 나왔다는 내 말에 크게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만난 시각이 열두 시였으니 아침부터 무얼 골라 입을지 고민하던 내게 아침 식사라는 선택지는 전혀 없었다. 카페를 갔다가 분위기가 좋으면 밥을, 아니 사실 술이라도 한잔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나온 터였다. 나와는 다르게 그는 어찌나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나왔던지, 자기는 정말 커피 한잔만 할 생각이었다며 아침으로 카레를 먹고 왔다는 TMI 정보도 서슴지 않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진심으로 식당까지는 미처 생각하진 못한 듯했다.

      

“그럼 옆에 칼국숫집이 맛집인 것 같던데, 거기 갈까요?”

    


?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첫 만남에 칼국숫집을 간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근래 있던 소개팅이나, 아는 오빠의 만남에서도 이런 소탈한 음식집을 간 적은 없었다. 물론 나 따위가 뭐라고 극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대단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첫 만남에 칼국숫집이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코스라 나는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렇다고 이토록 편안-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메뉴를 제안하는 이에게 정색하며 손사래를 칠 수도, 다른 곳은 어떠세요? 분위기 좋은 프랑스 음식점 같은…, 하는 그의 편안한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 가시죠.”

      

의외로 칼국숫집은 정말 맛집으로 인증받은 것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딱 봐도 2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긴 웨이팅에, 슬쩍 검색해 본 바로는 4점 이상의 별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 차례를 기다리면서 옆자리에 앉아 그를 슬쩍 보니 그제야 넓은 어깨를 비롯해 두꺼운 다리며 다부진 몸이 눈에 들어왔다. 오, 운동을 한 건 정말이었구나.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이곳이 얼마나 맛집 일지 기대하는 얘기들, 카페에서 다하지 못해 아쉬웠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다 보니 짧아진 앉은 거리만큼이나 어느새 카페에서보다 마음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도 같았다.


이십 분을 기다려서 먹게 된 칼국수, 아니 정확히 들깨 칼제비는 맛집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도 깊이 공감했는지 후루룩대며 내 앞에서 열심히 면치기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페나 음식점이나 그의 태도나, 모두 내가 기대했던 모습에서 살짝 비껴간 모습이긴 했지만 모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는 잘 통했으며,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많이 웃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마음일지는 가늠되지 않았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걸로 봐선 내게 호감이 없진 않은 것 같으면서도,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시원시원-한 ‘먹방’이나 긴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호방한 태도를 봤을 땐 절대, 절대 내게 반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맞다, 나 서른넷이지, 참. 잠시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들여다보니 고새 아침보다 손톱만큼 더 늙어있었다. 씁쓸한 느낌이 훅 올라왔다. 그래, 한눈에 반하지는 않을 만해.

     

그럼 내 감정은 어떤가. 실물을 보지 않았을 때보다, 소셜미디어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었을 때보다 확실히 떨림은 덜하지만 편하고 재미있었다. 몇 번 매력을 느낀 포인트들이 있기도 했다. 반한 건 아니지만 분명 호감은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모르겠다. 몇 번 더 만나보지, 뭐.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테이블로 향하는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니 왜 차 문이 열렸다고 알람이 오지?”

      

“예?”

     

카페 앞 도로에 내 차와 함께 나란히 앞뒤로 주차해두었는데, 차 키도 여기에 있는데, 핸드폰의 오류가 아닌 이상 차 문이 저절로 열렸을 리는 없었다.

     

“누군가 창문 깨서 도둑질이라도 했을까 봐요?”

     

“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설마. 어플이 이상한 거겠죠.”

    

나라면 당연히 오류로 치부하고 태평하게 넘겼을 텐데, 원래 이렇게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스타일인가.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내게도 유쾌할 리 없었다. 평범한 동네 카페를 간 것도, 카페 이후 일정정해두지 않은 것도, 아무 고민 없이 일 분만에 정한 칼국숫집도, 모두 다 괜찮았지만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내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인제 그만 슬슬 일어나시죠.”

     

까끌까끌하게 한마디를 던진 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도롯가에 서 있는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누가 차 털어갔을까 봐 계속 걱정돼요? 에이, 어차피 차에 가져갈 물건도 없잖아요.”

     

기분을 풀어주려 장난 삼아 얘길 해도 그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줄 몰랐다. 포커페이스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인 듯싶었다.   

   

“아니, 좀 전에 견인차가 요 앞을 지나가더라구요.”

    

아, 어쩌라구요. 견인차는 저도 출퇴근 길에 매일같이 몇 번씩이나 본다구요. 마음의 소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까지 첫 만남에 그런 모습 보이진 말자, 애써 목소리를 삼켰다.

     

“조금 겁보이신가 봐요.”     


대신 장난이 섞였지만, 뼈가 있는 뾰족한 한 마디를 냅다 날렸다.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까진 대략 오십 미터 정도. 왠지 그의 발걸음이 빠르게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아무리 나한테 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지. 그렇다고 해서 첫 만남에 이렇게 개인감정을 티 내다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서운한 감정을 살짝 담아 그를 겁보라 놀리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까진 이제 한 십 미터 정도. 그런데 이상하다. 차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아니었나.”

     

“여기 아니고 좀 더 올라가서일걸요. 아, 오빠 정말 겁보예요.”


더, 조금 더 올라가도 차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착각한 걸까. 슬슬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여기가 아니었나. 아까 거기였나 봐요.”     


원래 가기로 했던, 단수로 휴업했던 카페 앞엔 내 차도, 그의 차도,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어,”     


절제된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의 눈길이 닿는 시선을 따라 바닥을 보니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어머.”     


견인 통지서였다.      




그가 옳았다니.


차 두 대가 보관된 장소로 향하는 택시에 함께 올라타 슬쩍 옆자리에 앉은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젠 슬슬 웃음이 새어 나왔다. 태연한 나와는 다르게 생각이 많아 보이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만히 오늘 하루를 돌이켜 생각해봤다. 미끼를 던진 새벽부터, 미끼를 물었음을 확인하곤 예스를 내지르던 아침, 무엇을 입을지 난리를 치던 것, 잔뜩 긴장한 채 운전한 것, 우연히 카페가 문을 닫은 것, 우연히 칼국숫집에 간 것, 그리고 차가 견인된 것까지. 이 모든 우연이 합쳐진 하루가 왠지 참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앉은 이 사람도 그랬다. 재밌었다. 대화는 즐거웠고, 음식과 커피는 예상외로 맛있었다. 웃는 게 매력적이었고,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남자다움이 있었다.


확실히 설렘 있었다.      


“저는 안 아까운데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그를 보며 나는 이어 말했다.      


“저는 오빠랑 만난 거 생각하면 십만 원 안 아까워요.”     


이번엔 장난 섞인 말이 아니었다. 누가 첫 만남에 이런 경험 해봤겠어. 잊지 못하겠지, 색다른 추억이잖아. 그는 아마 여전히 모르고 있을 테지만 나는 가끔 그 택시 안에서의 장면을 떠올려보곤 한다. 택시 안에서 번 힐끔 그를 쳐다본 것, 몇 번을 몰래 킥킥 웃었던 것을. 불쌍하게 끌려가버린 차 두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도착지가 조금 더 멀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면서. 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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