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안될걸요. 지금처럼 이라면
MBC가 칼을 갈고 만든듯한 '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입니다.
한 명만 있어도 반칙에 가까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을 둘이나 동시에 썼으니,
화제가 되지 않는 것도 이상하겠네요.
손석희 교수는 첫 질문부터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볼카츠 브랜드의 점주들이 시위하는 비디오를 보여준 후에, 가맹점포수가 줄고 있다는 데이터를 거론하며 이렇게 물어봅니다.
"매장 수가 왜 줄어들었다고 보십니까?"
무서운 질문입니다. 시각적으로 '시위하는 모습'과 '줄어드는 점포 수'를 제시했다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문장들이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떠다니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백종원 대표의 답변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전개하다가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더 이상 신규점포를 개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답변으로 백종원 대표는 프레임 전환을 시도합니다.
손석희 교수는 분명 '가맹점포 수의 감소'를 물었지만,
백종원 대표는 '가맹점포 증가율'로 순간적으로 전환하여 답변한 것입니다.
절댓값의 감소를 물었는데,
증가율의 감소로 답합니다.
글로 써놓으면 당연히 잘못되었구먼, 하고 생각하시겠지만
인간의 대화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놀랍게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혹은 눈치를 챘다 해도 이미 대화의 맥락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버려
이를 문제 삼기 위해서는 그 맥을 끊어버려야 하는데,
...... 쉬운 일이 아니죠.
화자가 순차적으로 바뀌고, 말을 하는 동안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는
'그러한 것'과 '그럴싸한 것'이 구분되기 어렵습니다.
혹여 이런 태도를 간파할 것 같은 상대라면 이 수사적 기술을 두어 번만 더 쓰면 될 일입니다.
이러한 답변태도에 지적할 수 있는 환경은 국회 청문회장 정도를 제외하고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손석희 교수는 이 프레이밍 시도를 완벽하게 부숴버립니다.
"백종원 대표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가맹점주들은 매출 하락을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요"
상대의 프레임 전환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대중이 알고자 하는 지점으로 정확하게 데려다 놓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저 진행자가 손석희 교수이기 때문일까요?
우리 이벤트 환경에 빗대어서 생각해 볼까요?
행사 진행을 하면서 무대에 선 사람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꽤 많습니다.
- 컨퍼런스의 연사에게 강연내용에 덧붙인 질문을 할 수도
- 피칭에 참가한 스타트업 대표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질문과 답변을 듣고
속이 후련했던 적이 있나요?
있다 해도 자주는 아니었을 겁니다.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의 대화에서 질의응답 시간은 왜 맥을 못 추게 되는 걸까요?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1. 우리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강연, 심지어는 피칭 이벤트에서조차 질문하는 사람이 재질문하는 것을 겸연쩍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질문자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저 사람들도 궁금한 거 다 꾹 참고 있는데, 자기 혼자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마이크를 잡고 안 놓는 거야?(정작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인은 질문을 잘하지 않습니다만......)
기획팀과 주최자는 '질문은 한 사람당 하나씩,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질문하게 할 것'을 기획시점에 넣고 싶어 합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행사에서 '다른 분들도 질문을 하셔야 하니까'라는 진행자의 멘트를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담론의 숙성보다는 발언권의 평등을 더 높은 우선순위에 두었던 우리의 관성이 그대로 문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2. 질문자와 답변자를 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행사에서의 질의응답은 말 그대로 라이브 상황입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대단한 사람도 마이크를 잡은 상황에서 편안하게, 주술구조 다 맞춰가면서, 적확한 어휘를 써서, 요점만 콕콕, 글 쓰듯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 음~~ 같은 허사도 잔뜩 들어가고, '아 그런데 참' 하면서 추가정보를 뒤늦게 넣기도 합니다.
우리는 챗지피티가 아니라 인간이니까요.
질문과 답변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높은 밀도를 가지게 됩니다.
첫 질문과 답변에서는 이야기했던 내용의 확인과 확장을,
두 번째 질문과 답변에서는 색다른 관점을 통해 사안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는 시각을
세 번째 질문과 답변에서는 두 세계관이 통합되거나, 한쪽에 흡수되며 담론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우리 이벤트 환경에서는 대부분 첫 번째 질문만을 허용하면서
화자가 이야기했던 내용을 재확인하거나, 다른 사례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단 한 번의 질문과 답변으로 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분들은 질문과 답변이 하도 길어서 책으로 내는 수준이었잖아요?
3. 무대 위의 화자보다, 객석에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강연을 한다면 40분 강의에 10분 질의응답,
피칭을 한다면 10분 피칭에 5분 질의응답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저는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강의만 듣고 끝나도 상관이 없겠습니다만(김창옥 교수님의 강의가 그렇겠죠!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강의니까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우라면 강의보다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부를 혁신하겠다는 스타트업 피칭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고요.
일방적인 소통은 질문을 위한 전제로서 최소한만 제공되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좀 더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하나의 사실을 학습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EPIC Stage
"우리는 스타트업 이벤트를 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