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흔 살, 임신

Entj 결혼생활

by 연우

퇴사를 한 후,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마음 한편에 고이 묻어두었던 소망 하나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36살부터 지독히 갖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꿈, 바로 임신이다.


누군가는 임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으면, 진작에 회사를 그만두고라도 시도해 보지 왜 마흔이 된 이 시점에서 시도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럼 난 사람에겐 다 자기만의 때가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36살 때부터 난 매년 일을 지속하는 것과 아이 갖는 것 중에 무엇이 내 삶에 중요한지 항상 되묻곤 했다.


36살 때는 55% : 45% 정도로 일을 지속하길 원했고,

37살 때는 53% : 47%

38살 때는 51% : 49%

39살 때는 49% : 51%로 처음으로 회사 생활을 지속하는 것보다 아이를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6개월 정도 더 심사숙고한 뒤 난 최종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왜냐면, 난 일이든 뭐든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아픈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늘 말해왔고,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사망 선고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마흔 살이 되고 나니, 회사를 다니는 것 말고도 다른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창 일에 매진해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내 주변에도 외국계 기업에서 최연소 팀장 타이틀을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후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하고 6년간 아이를 키우고 이제야 복직을 한 친구도 있고.

물론, 그 친구들은 내게 끝도 없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거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푸념을 종종 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런 삶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안다.




36살, 37살, 38살을 지날 때는 내가 출산을 하지 않아서, 내가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회사에서 알아챌까 전전긍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승진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이었고, 임신 계획을 들키는 순간 승진은 물 건너간다고 생각했고, 중요 프로젝트에 껴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나고 보니, 임신 계획을 들키지 않았어도 승진은 못했고, 사실 중요 프로젝트한다고 돈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것에 집착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다 지나 봐야 안다. 다시 돌아간대도 내가 과감하게 매주 연차를 써가며 시험관을 하는 등 임신에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숙제(정말 꼭 해내고 싶은!)만이 남았다.


3개월간 몸을 만들자.

좋은 것만 먹자.

하지만 '임신'이라는 것에 매몰되지는 말자.


남편과 둘이 놀아도 재밌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정주부 팔자는 아닌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