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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Oct 19. 2022

당신의 초고가 쓰레기 같은 이유

나를 레벨업하는 SNS 페르소나 글쓰기 (12)

당신의 초고는 쓰레기야

아니,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헤밍웨이의 말에 따르면요. 헤밍웨이가 그랬대요.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그리고 《잘 쓰려고 하지 마라》란 책을 보면, 참고로 이 책은 퓰리처상이니 무슨무슨 상이니 받은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창작론을 정리한 책인데요, 그런 대작가들도 초고는 마음에 안 든대.


그러니까 초고가 못 쓴 것처럼 느껴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내 의견을 말하자면 굳이 쓰레기라고까지 깎아내릴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냥 좀 못난 거지 쓰레기는 아니잖아?


당신의 글이 언제 제일 멋있어 보이는지 맞혀볼까요? 바로 머릿속에 있을 때지. 그냥 머리로 아, 이렇게 시작하고, 이런 표현 쓰고, 이렇게 풀어가면 좋겠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할 땐 꽤 괜찮은 글이 나올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린 막연한 건 이상적으로 추측하는 경향이 있거든.


왜 길 가다가 저 앞에 뒤태가 멋진 사람이 걸어가면 괜히 잘생기고 예쁜 얼굴을 상상하지 않나요? 코로나 시국에 마기꾼이란 말이 왜 생겼겠어요? 마스크 써서 눈만 달랑 보이니까 코랑 입이랑 턱은 당연히 잘생기고 예쁠 것 같다고 추측하거든. 그래서 마스크 벗으면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 맘대로 상상해놓고 지 맘대로 실망하는 거지. 근데 난 마기꾼이란 말조차 들은 적 없다.


하여튼 우리가 쓴 글도 그래요. 머릿속에 있을 땐 진짜 대단해. 내 글빨이 엄청나게 느껴져. 생각하다 보면 막 소름 끼치고 그럴 때 있잖아, 솔직히? 하지만 실제로 글로 뽑아내면 어떤가요? 일단 글로 뽑아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 머릿속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생각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아요, 그죠? 그래도 어찌저찌 써서 일단 초고를 완성했어. 그러면 머릿속에 있던 막연한 이상과 구체적 현실의 괴리가 느껴지죠. 누구나 그래. 말했잖아, 사람이 다 그렇다고.


자 그걸 또 퇴고를 해. 조오올라 열심히 해. 그러면 좀 나아진 거 같아도 여전히 완벽하진 않아요. 아직 부족해. 근데 더 퇴고하려면 진이 빠져서 못하겠어.


당신만 그런 거 아니에요, 남들도 다 그래요. 그래서 난 퇴고를 열심히 안 하지. 어차피 골백 번을 퇴고해도 부족한 부분이 보일 거거든. 단, 번역할 땐 꼼꼼히 퇴고합니다. 남의 글을 내가 망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내 글은 뭐 대충 의미만 전달되면 됐다고 생각해요.


좌우간 당신의 글이 못 쓴 거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에요. 특히 평소에 글 좀 읽는다 하는 사람한테서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죠. 왜냐하면 이미 좋은 글을 많이 읽어서 기준이 저기 구름 너머 까마득한 하늘 어딘가에 걸려 있거든. 그러니까 뭘 써도 성에 안 차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간단해요. 그냥 기준을 낮춰요. 100점 만점에 5~60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자신의 글을 편하게 보게 돼요.


내 얘기를 하자면 한동안 절필, 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것까진 없지만 한동안 글을 안 쓴 시기가 있었어요. 내 글이 너무 못나 보여서. 이걸 어따 써 싶어서. 내 글 꼬라지 보면 짜증이 나는 거야. 종이에 썼다면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만큼.


반대로 내 인생에서 글 쓰는 게 가장 재미있었던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바야흐로 1990년대 인터넷도 아니고 피시통신으로 전국의 덕후들이 연결됐던 시대에 하이텔 게임 게시판에 글 쓸 때였어요. 피시통신은 텍스트 기반이었어요. 이미지 못 올려. 그냥 글만 쓰는 거야. 근데 지금처럼 컴퓨터가 멀티태스킹이 되지도 않았어. 프로그램 하나 실행시키면 그거 종료할 때까진 다른 프로그램 못 열어요. 마우스도 없어. 화살표키가 최선이야.


그러니까 하이텔 게시판에 글 쓰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쓰는 게 제일 편했어요. 요즘 같으면 웹서핑하다가 메모장 열고 글 써서 붙여넣기 해도 되지만 그땐 따로 글 쓰려면 일단 하이텔 접속 프로그램 종료하고 문서 작성 프로그램 열어서 글 쓰고 텍스트 파일로 저장한 다음 다시 접속 프로그램 열고 그 파일 불러와서 붙여넣어야 했거든. 얼마나 귀찮아.


그래서 웬만큼 긴 글 아니면 그냥 피시통신 접속한 상태에서 썼어요. 근데 말했듯이 지금처럼 막 커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니고 여러 가지 편의 기능이 부족했어요. 그리고 전화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접속 시간 만큼 전화료가 붙어. 되도록 빨리 써야 해. 그래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쭉 쓰고 한번 쓱 읽고 바로 게시판에 올렸어요.


그때 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렇게 대충 쓰고 퇴고도 대충 하고 글 올렸을 때 글 쓰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 쓰는 재미를 알았어요. 내가 글 쓰면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도 좋고 그렇게 게시판에서, 댓글 기능도 없어서 누군가의 글에 피드백을 주려면 따로 글을 써야 할 정도로 불편했던 구시대적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는 게 인생의 낙 중 하나였어요.


그러다 글 쓰는 재미를 잃은 건 나이가 들어서 퇴고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면서부터예요. 그 사이 눈이 높아져서 어떻게든 완벽한 글, 이상적인 글을 쓰고 싶단 욕심이 생긴 거지. 근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그러니까 글쓰기에 흥미를 잃고 몇 년간 글을 거의 안 썼어요.


그러다 요 몇 년 사이에 다시 그때처럼 재미가 붙었습니다. 말했듯이 그냥 60점만 하자는 자세로 글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했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뭐라도 써서 브런치에 올렸죠. 그러면 퇴고를 열심히 할 수가 없어. 맨날 자기 전에 급하게 쓰거든. 피곤해서 빨리 쓰고 잘 생각 밖에 없는데 퇴고는 무슨, 그냥 한번 쓱 읽고 올리는 거지. 그렇게 70여 일간 매일 글을 썼더니 글 쓰는 게 만만해진 거야. 예전엔 내 초고가 쓰레기라 생각했는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100점이 아닐 뿐 쓸만 해.




그러니까 당신의 글이 너무 못 쓴 거 같아서 괴롭고 글 쓰는 게 형벌처럼 느껴진다면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해보세요. 규칙 같은 거 없어. 그냥 매일 뭐라도 써서 SNS에 올리면 돼. 그럼 퇴고에 대한 강박이 없어지고 완벽하지 않은 글을 공개해도 큰 탈이 안 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너무 못 써서 더 못 쓰겠단 생각은 싹 사라질 거예요.


그리고 글솜씨를 키우고 싶다? 그러면 또 방법이 있지. 내가 저 하이텔 시절에 문장력이 엄청 발전했거든요. 그걸 어떻게 아냐면 왜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이라면 알 거야, 학교에 꼭 모둠 일기 과제 내주는 선생님들 있었잖아. 대여섯 명이 한 조가 돼서 매일 한 명씩 돌아가며 일기를 쓰고 돌려보는 거지. 그때 한번은 내 글이 재미있다고 반 전체가 돌려보고 아주 난리가 났어.


그 비결이 뭐냐고? 하이텔에서 남의 글을 열심히 모방했어요. 베껴쓰는 게 아니라 스타일을 따라했지. 그때 게임 게시판에 글 잘 쓰는 사람들 몇 명이 있었어요. 잘 쓴 글의 기준은 그냥 내가 읽었을 때 재미있단 거예요. 무슨 객관적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래서 그렇게 재미있게 글 쓰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법 같은 걸 따라 했어요. 그땐 어린애니까 그런 거 창피하다는 생각도 안 했어. 그냥 무턱대고 따라 하니까 나도 그들 만큼은 아니라도 그들에 가깝게 필력이 성장했어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잘 쓴 글을 모방하세요. 잘 쓴 글 좀 추천해 달라고? 어우, 귀찮아, 직접 찾아. 아니,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당신한테 재미있는 글을 찾으세요. 책도 좋고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올라온 글도 좋아요. 그런 글을 꾸준히 읽고 그 스타일을 흉내내보세요. 필사도 좋아요, 감을 기르기에. 그리고 재미있는 글에서 어떤 독특한 표현법이 눈에 띄면 그걸 따라해 보는 것도 좋아요. 그런 게 창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피카소가 그랬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원래 쪼렙일 때는 다 고렙들 따라 하는 거야.


아니 뭐 딴사람 글을 통째로 베껴다 내 글 입네 올리면 표절이고 문제가 되겠지만 스타일 좀 따라 하는 건 누가 굳이 걸고 넘어질 리도 없지만 설령 그런 시비에 걸리더라도 오마주라고 우길 수 있잖아요. 어차피 스타일에 무슨 특허가 걸린 것도 아니잖아요? 가령 나 대작가 김고명의 글이 당신의 취향이다 하면, 아니, 왜 웃어, 그런 사람 있을 수도 있잖아, 여하튼 그러면 한번 따라 해보는 거예요. 나처럼 독자에게 격의 없이 말하는 투로 쓰고 ‘대작가’ 같은 허풍이 들어간 표현도 쓰고 ‘졸라’ 같은 적당히 상스러운 표현도 쓰고 맨날 내 글을 졸라 읽고 기왕이면 내 책 사서 주변에 나눠주면 더 좋겠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요즘 잘 안 팔려. 절박해.


여하튼 그렇게 베껴 써보세요. 그러면 늘어요. 당장 확 늘진 않아도 조금씩 글쓰기 잔근육이 붙어요. 그러다 남의 스타일을 모방만 하는 아류가 될까 무섭다고요? 아니야, 그렇게 베끼다보면 베끼는 것도 지겨워지는 때가 와. 그러면서 서서히 자기 스타일이 확립되는 거지.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신만의 필체를 확립하는 거지. 스승한테 고마워? 그럼 말했지, 그 사람 책 사서 매출이나 좀 올려줘. 아니면 팔로워라도 좀 늘려주던가. 사실 제일 좋은 건 댓글로든 메일로든 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고 고맙다고 알려주는 거예요.


아니 나한텐 그런 댓글 달지 마. 책사라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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