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짜릿한 죄책감이 필요하다

by 김콤마

금요일 밤에 어디 나갔다 올 때면 빈손으로 들어오기가 어렵다. 자꾸만 피자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어느 날에는 집에 와서 차를 세워놓고 동네 피자 가게에 갔는데, 피자를 받은 기억만 있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두 발이 공중에 둥둥 뜬 느낌이었다는 것 밖에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만 하게 되는 것. 누구나 한두 개쯤 있을 텐데 내겐 금요일 밤의 피자 파티가 그렇다. 이름만 파티지, 실상은 피자 사다가 TV 앞에서 먹는 게 전부다. 남들은 불금에 치맥이겠지만 나는 치킨보다 피자다. 치킨은 튀김 특유의 느글거림과 목구멍에 차곡차곡 쌓이는 닭 냄새 때문에 끽해야 반마리가 한계다. 하지만 기름이 촉촉히 밴 피자는 컨디션만 받쳐주면 앉은 자리에서 라지 한 판을 해치울 수 있다. 음료는 물이면 충분하다. 그 외에는 감미료 때문에 입맛을 버린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혓바닥은 가장 중립적이고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꼭 TV를 보면서 먹어야 한다. 그냥 먹으면 급하게 꿀떡꿀떡 넘겨서 배가 금방 차기 때문에 많이 못 먹는다. TV에 정신이 팔려야 적정한 흡입 속도를 유지해 앞에 들어간 피자가 위장에서 어느 정도 소화될 시간을 벌 수 있고, 그만큼 많이 먹을 수 있다.


그 좋은 것 식사 시간에 애들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되냐고 물을 육아인은 없겠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애들이랑 먹으면 맛이 반감된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이 말 저 말에 대답해주기 바빠서, 무엇보다 “아우, 좀 먹어, 왜 안 먹어!”라고 닦달하느라 맛을 느낄 여유가 없어진다. 그때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살려고 먹는 거다.


더욱이 우리 애들은 나와 피자 취향이 맞지 않다. 둘째는 도우 끝부분만 먹고, 첫째는 피자스쿨에 가면 크림 파스타를 토핑으로 올린 까르보네피자라고 있는데, 그것만 피자로 친다. 첫째 때문에 내리 3주 동안 까르보네피자만 먹고는 내가, 유럽을 여행할 때 맨날 피자를 먹고도 멀쩡했던 내가 생애 처음으로 피자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야, 그냥 파스타를 먹어, 그걸 왜 피자에 올려 먹니?


내가 즐겨 먹는 피자는 피자알볼로의 단호박피자다. 다 먹고 나서 손가락을 보면 기름이 거의 묻어 있지 않을 만큼 도우가 담백하고, 단호박 무스 위에 베이컨과 아몬드를 올려 짭짤함과 고소함을 더했다.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시큼한 머스터드 소스를 뿌려서 단호박 맛을 다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지도 않는다. 오죽 많이 먹었으면 ‘퍼스트 클래스’라고 VIP 등급이라서 주문할 때마다 무료로 치즈 토핑이 추가된다.


물론 밤에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 그렇잖아도 건강검진 때마다 간에 기름 꼈다고 뱃살을 빼라는데, 야밤에 탄수화물 덩어리를 먹는 건 위장에 폭탄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맛있는 폭탄이다. 입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맛의 수류탄이 터지며 죄책감을 박살낸다.


그렇게 늦은 밤에 너댓 조각을 먹고 누우면 속이 더부룩하다. 일어나도 속이 쓰리다. 하지만 잠이 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설렌다. 아직 나에게는 아침에 먹을 피자 3~4조각이 남아 있으니까!


매일 아이들과 투닥거리다 보면 설렐 일이 없다. 그러면 사는 게 지겨워지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안 낼 짜증을 내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기왕에 죄책감을 느낄 거면 짜릿한 일로 느끼는 게 낫다. 그래서 우리에겐 길티 플레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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