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라의 어린이는 나쁜 어린이야

by 김콤마

내 마음 대로 꼽은, 어린이가 듣지 말아야 할 동요, 대망의 1위는! (경쾌한 북소리) 바로, 새 나라의 어린이!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니야, 일찍 일어나지 마. 푹 자. 혼자 아침 챙겨 먹고 혼자 놀 수 있으면 일찍 일어나도 돼. 근데 아니잖아. 일어나서 밥 달라 하고 놀아 달라 할 거잖아. 그럴 거면 그냥 늦게 까지 자. 아침 걸러도 되니까 한 12시까지 일어날 생각도 하지 마! 아니, 잠이 안 오긴 왜 안 와! 니네 엄마는 니네 낳기 전에 진짜 그렇게 잤어! 그런 건 또 왜 엄마를 안 닮았냐고!


우리 애들은 아침 7시만 되면 눈이 번쩍 뜨인다. 전날 아무리 늦게 자도 8시면 일어난다. 그때부터 거실로 나가고 싶다고 성화다.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라고 혀를 차기엔 아내에게 면목이 없다. 아내는 정말 주말에 12시가 뭐야, 오후 2~3시까지도 잘 수 있는 사람이다. 애들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일어나서 게임 두어 시간 하고 아침 먹고 조조 영화까지 한 편 때리고 와도 자고 있었다. 아니, 조조 영화 보기 전에 게임을 그만큼 할 정도면 나는 몇 시에 일어났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주말엔 5시면 누가 기상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눈이 떠졌다. 그러니까 애들이 아침잠이 없는 건 다 내 탓이다.


그래서 일찍 재운다. 그래야 아침에 일어나서 피곤하다고 징징대지도 않거니와 밤에 우리 부부의 자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되도록 밤 9시 전에 애들을 침실에 몰아넣고 책 한 권씩 골라 오라고 해서 읽어준다. 간혹 글밥이 많은 책이면 한두 문장씩 건너뛰면서 읽는 시간을 단축한다. 하지만 애들도 나름 꾀가 있어서 책 읽을 때는 장난감 갖고 놀다가 다 읽고 나면 얼른 또 한 권 가져와서 읽어 달라고 매달린다. 재우려는 자와 자지 않으려는 자의 실랑이가 매일 반복된다. 그래도 대체로 9시 반 전에는 불을 끈다.


둘째는 아직 금요일 밤의 맛을 모르지만 유치원생인 첫째는 안다. 어차피 내일 유치원 안 가니까 자기도 그 밤을 불사르고 싶어 한다. 하루는 저녁 때 불쑥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한테 오늘 TV 실컷 보고 늦게 잘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단다.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싶은 건 둘째치고 아니, 너는 그걸 왜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니? 너 안 자면 옆에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아빤데?


그날은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놔뒀다. 10시 반쯤 되면 피곤해서 자러 들어가겠다고 항복할 줄 알았다. 그랬다는 것은 실제로는 꿋꿋이 버텼다는 말이다. 동생 자니까 소리 끄고 텔레비전 보라고 했더니 재미없다고도 안 하고 한참을 봤다. 장난감도 소리 내지 말고 갖고 놀라니까 종일 조잘대는 입을 잘도 무슨 극비 임무라도 수행하는 사람처럼 은밀히 놀았다.


아이를 혼자 방치해둘 수 없어서 나도 꼼짝없이 그 옆에 있어야 했다. 방에 들어가서 넷플릭스에서 내 취향의 폭력 영화들을 보고 싶은데 하는 수 없이 첫째 취향의 만화나 같이 보고 앉아 있어야 했다. 아이는 한없이 고요한데 나는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결국 항복한 것은 나였다. 11시쯤 됐을 때 자기는 제발 들여보내지 말라고 비는 아이를 침실에 수감시켰다. 이튿날, 아이는 어김없이 8시에 칼 같이 기상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불타는 금요일’을 즐긴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는 주6일제 시대였다. 사람들은 토요일에도 일하러 가서 점심 때 퇴근했다. 아니, 지금 일주일에 이틀 쉬어도 더 쉬고 싶은데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만 쉬고 살았을까? 일주일에 딱 하루 쉬고 애들 키우느라 우리 부모님들도 참 고생하셨…… 잠깐. 토요일 오전에 차라리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집에서 애를 보는 게 좋을까? 흐음, 난제다,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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