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파는 상품을 사랑해야 한다. (중략) 그게 지금까지 자기가 팔았던 것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해야 한다.
—케빈 오리어리(Kevin O'Leary), <케빈 오리어리가 말하는 영업 달인의 5대 비법>(영문), Inc.com
어제에 이어 또 <샤크 탱크>로 유명해진 기업가의 말입니다. 영업을 잘하려면 내 물건이 최고라고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는군요.
제가 번역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흔히 묻는 말이 있습니다. “대표작이 뭐예요?” 그러면 저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이다가 “글쎄요,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책이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립니다.
제가 번역한 책 중에 좋은 책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번역가로서 그 책들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장점만 아니라 단점도 잘 알죠. 그래서 남들에게 이게 내 대표작이라고 말하려다가도 단점이 생각나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겁니다.
세상에 단점 없는 책이 어디 있고 단점 없는 상품이 어디 있을까요?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이 있으니까 사라고 내놓는 거겠죠.
예전에 누가 저한테 그랬어요. “넌 꾸밀 줄을 몰라.” 외모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그땐 그랬어도 할 말 없었겠지만) 남들은 자기한테 조금만 좋은 게 있어도 부풀려 말하는데 전 좋은 것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한다는 뜻이었어요. 좋게 말하면 겸손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지 밥그릇 지가 차는 거죠.
아직도 그런 성격을 못 버려서 무슨무슨 책이 내 대표작이라고 말을 못 하고 다닙니다. 생각해보니까 그건 제가 번역한 좋은 책에게도, 그 책을 쓴 저자에게도, 제 번역 원고를 다듬은 편집자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
지난주에 서울에 간 김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사무직으로 입사해 갑자기 영업사원이 되더니 이제는 본인 사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그랬어요. 많은 작가가 독자에게 공감을 못 얻는 이유가 자기 세상에만 갇혀 있기 때문인데 진짜 세상을 경험하려면 영업 만한 게 없다고. 그러면서 제게도 책이 나오면 서점을 돌며 영업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영업은 출판사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요,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영업에 한몫 보태려면 보탤 수 있는 거죠.
다만 저는 영업형 성격은 아닙니다. 낯도 가리고 무엇보다 앞에서 말했듯이 꾸밀 줄을 몰라요. 내가 파는 물건이 좋긴 하지만 최고는 아니라고 말하는 거죠. 오리어리의 기준으로 보자면 영업인으로서 낙제입니다.
계속 영업을 권하는 친구에게 그럼 내가 집필한 책이 나오면 한번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집 근처에 독립서점이 한 곳 있고 또 좀 더 나가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지역 서점이 있으니까 부딪혀보겠다고요.
실제로 책이 나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겠다고 할 때까지 물고 늘어질 것 같아 일단 그렇게 말했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도 같아요. 제가 예전에 연극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인데 영업도 제겐 그런 재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역자가 아니라 저자로 찍히는 책은 언제 나오냐고요? 글쎄요? (웃음)
겸손하게 산 세월도 30년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 겸손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