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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Sep 17. 2024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FRANCE


떤 글자나 움직임 없이 단순하게 구성한 추상화만으로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예술가가 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다. 그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사유에 잠겨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관람객의 일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림이 시나 음악만큼 강렬한 감정의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이 화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곳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었다. 불타오르는 빨강이나 녹슨 듯한 보라색 배경에 몇 개의 색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과 정반대로 차갑게 식어버린 회색조의 그림 두 점. 색의 농담이나 조합을 살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보려다가 아차 싶어 한걸음 물러섰다. 마크 로스코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제안한 내용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는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간격을 45센티미터로 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작품을 볼 것을 권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는 작품 수가 많지 않은 탓인지 다른 전시실과 조도의 차이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45센티미터 떨어진 채로 그림을 응시했다.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에 반 쪽짜리 감상에 그친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마침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제는 비로소 그의 작품을 제대로 관람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15여 점에 달하는 대규모 회고전인 데다 조도까지 완벽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연출한 전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명상실 같은 조명 아래서 그의 초기 작품인 구상화부터 과도기 작품인 멀티폼,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추상 회화까지 화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에 있다. I am interested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 -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 드빈스크(현재는 라트비아 가우다프필스)에서 태어나 191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921년 예일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2년 후 학교를 그만두었고 예술에 집중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1946년 로스코는 멀티폼(Multiforms)라고 불리는 그림 양식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커다란 캔버스에 공간과 색을 배치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색채와 구조에 운동감을 부여해 자유롭고 느슨한 구조를 만들었다. 


로스코의 멀티폼 형식은 그가 형체의 구속으로부터 색을 해방시켰음을 의미한다. 로스코는 이 시기부터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거나 번호만 붙였다. 1949년과 1950년 사이, 로스코는 초기의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의 구도를 단순화하여 그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색면 회화'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캔버스를 가로로 나누어 세 개의 면을 만들었고, 각각의 면은 부드럽게 연결된다. 따뜻하면서 차가운 색감의 직사각형이 미묘하게 충돌하는 듯 호흡하며 숭고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흔히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불리는 마크 로스코는 그 명칭을 철저히 거부했다. 표현보다는 소통에 무게를 두고 자신의 작품이 관람자의 감정을 일깨우기를 원했다. '색의 관계나 형태, 그 밖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밝힌 그는 한평생 비극, 환희, 파멸과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구도자처럼 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느낀 종교적 경험을 관람자에게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나타남으로서 인간의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결국 눈에 띄는 색감은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무한한 감각은 숭고미에 가까웠다.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 어떤 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작품에 어떤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보는 이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단지 침묵이다. 나는 내 작품을 변호할 의도가 없다. 내 작품은 스스로를 방어한다.' - 마크 로스코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가장 높은 천장을 지닌 전시실은 감정을 잠재우고, 일순간 침묵하게 만들었다. 마크 로스코의 말년 작품인 <Black and Grey series>가 자코메티의 조각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검고 차분한 색덩어리 사이로 조각상이 등장했다. 장식의 소멸은 거룩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되려 비워내고 걷어냄으로써 몰입을 극대화하고, 명상으로 나아가게 했다. '결국 우리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했던 윤형근 화백의 말마따나 삶에 대한 집착심에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 무엇을 버리고, 중요시 여겨야 하는지 올바르게 볼 줄 아는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화된 마음인지 혹은 너무 많은 감정의 파고 때문인지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최상층에 자리한 테라스에서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빛을 부드럽게 반사해 내는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을 마주했다. 아주 많은 그림을 보았음에도 잔상으로 남은 것은 감상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각기 다른 빛을 내뿜는 작품이 연달아 펼쳐지니 각각의 성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마음껏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가로막힌 벽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잡이를 열고 나가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Mark Rothko, 2024 © 길보경
Self-Portrait of Mark Rothko, 2024 © 길보경
 © 길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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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dation Louis Vuitton, 2024 © 길보경
Fondation Louis Vuitton, 2024 © 길보경
Fondation Louis Vuitton, 2024 © 길보경
Fondation Louis Vuitton, 2024 © 길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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