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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은 흔들린 것 같은데

by 이문연

미친년 같다. 카페 이름과 코칭 이름을 끊임없이 바꾸는 것이. 바꾸는 이유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바꿔보자. 잘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이 되면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번엔 이유가 뭘까. 너무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대중적이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만 보고는 알 길이 없어 보인다. 마치 순대국 집을 갔는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맛'이라고 순대국을 설명해놓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또 머리를 굴려보자. 이게 문제다. 대중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이름을 만드는데 대중적으로 가기 위해 대중적인 이름을 떠올리면 그건 또 나답지 않은 이름이라며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게 된다. 김난도 교수는 청춘들에게 1000번을 흔들려야 한다고 말했는데 난 1000번을 지우고 썼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청춘은 더더욱 아니다. 불혹 더하기 네 살이나 더 먹고서도 이렇게 흔들리는 중이니 김난도 교수의 말은 틀렸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흔들린다.(나만 그래?) 자기확신도 없고 그렇다고 비즈니스 감각도 없다. 대중적이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래서 도루묵이다. 한 쪽은 내가 있고 한 쪽은 세상이 있다. 나는 산 꼭대기이며 세상은 산 아래쪽이다. 열나게 돌을 짊어지고 내가 추구하는 건 무엇인지를 쫓다가도 막상 정상에 올라가면 '이 산이 아닌게벼'를 외치면서 돌을 아래쪽으로 다시 굴리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형벌에 빠진 나를 어떻게 구원할 것이냐. 글쎄. 끊임없이 굴리다 보면 산이 평평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힘이 빠지고 돌이 닳듯이 산도 닳을 테니까. 산의 정상과 아래쪽이 얼추 비슷하게 되면 나는 세상의 눈으로 나의 가치를 나답게 알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갑자기 희망적으로 쓰려니까 또 고뇌에 빠지네. 사실 좌절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런 글쓰기도 하고 있는 건데 그래도 이렇게 뭔가라도 끄적거리는 건 분명 '희망적'이라고 느껴지긴 하다. 내가 원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지 못해 거의 무직(옷 관련 빼고 글 관련은 하고 있으니 테크니컬리 무직은 아니지만)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알베르 카뮈가 자신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 나무위키”고 말했듯이(이 글 쓰느라 검색해서 처음 알게 된 건데 쫌 마음에 든다) 나도 알베르 카뮈의 말을 따르고자 한다. 다시 바위를 굴릴? 수 있음에 그래도 시지프는 행복했을 거라고. 고민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이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알베르 카뮈의 정신을 이어받아 좋게 해석해보쟈.


* 시지프: 시지프스의 프랑스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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