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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의 고뇌

by 이문연

49화 등밀이에 대한 고찰 ( https://brunch.co.kr/@ansyd/1918 )에서 기브앤 테이크의 불편함을 언급했었다. 정확히는 받기만 하고 언제 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 대해 언급했는데 운동 시간을 오전으로 바꾸는 바람에 무려 110화를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아주머니께 등밀이를 Give하지 못했다. 게다 운동 시간을 오전으로 바꿔 그 아주머니와 마주칠 기회는 더더욱 희박해졌는데 이것은 의식적으로는 '빚을 갚아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을, 무의식적으로는 '때 안 밀어드려도 되니 짱 편하다'라는 홀가분함을 주었다. 사실 그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Take할 것을 바라고 등을 밀어주신 것은 아니나 나라는 인간이 그저 사회 속의 Give & Take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받기만 해서는 약간의 불편함을 어쩔 수 없이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쓰려는 건 아니고 내가 내향인이라 관계로 인한 부딪힘에 불편하고 뻘쭘해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건 나라는 인간의 속성인지 궁금해서 글을 써본다. 작년에 진행한 글쓰기 수업은 마을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라 근방에 사는 수강생분들이 꽤 많았다. 그 중에 두분은 코천이 산책할 때 걸어다니는 지근거리에 살고 있어 수업할 때도 동네에서 종종 만났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마주친다. 그런데 코천이 산책을 하다 만나는 건 그래도 괜찮으나 운동을 하러 갈 때 보게 되면 극한의 추레함(오전에 가는 운동은 눈곱만 떼고 간다;;)으로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고뇌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에 마을버스에서 2번 정도 작년 수강생분을 봤는데 내가 버스에 먼저 타고 있어서 나는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아는 척이랑은 상관없이 얼굴을 본 것은 반가운 일이나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아는 척을 했을 때는 또 나름대로의 퀘스트가 존재한다. 1) 인사를 한다. 2) 안부를 묻는다. 3) 내릴 때가 멀었다. 4)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을 대비해 내가 내릴 즈음 시간을 계산해 아는 척을 해보면 1) 인사를 한다. 2) 안부를 묻는다. 3) 내릴 때가 되어 인사를 한다. 이 순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머릿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내릴 때가 되고 나는 버스에서 내리게 된다. 그러면 또 나의 의식은 '인사하지 못해서 아쉽네'라고 하지만 나의 무의식은 '추레한 몰골 보여주지 않아 다행이다'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만 같은 분을 두 번이나 마을 버스에서 보았고 두 번 다 운동을 갈 때라 추레한 몰골이었으며 그래서 두 번 다 아는 척을 하지 않았는데 나의 불편함이 내향인이라 그런건지 궁금해서 다른 분을 소환해봤다. 같은 동네의 다른 분은 좀 젊은 분(나랑 비슷한 연령대)이라 그 분을 만났어도 내가 그렇게 행동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니 이 분은 그래도 좀 더 편하게 아는 척했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고로 불편함은 나의 성향도 있지만 상대방을 내가 얼마나 편하게 여기느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래도 추레한 몰골로 있을 때(운동갈 때)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지금까지는 무의식이 승리?했으나 다음에는 무의식을 깨고 의식적으로다가 인사를 건네봐야겠다. 다만, 시간계산을 잘 해야겠지. 할 말을 다 했는데 내릴 때가 멀었다면 그건 너무 뻘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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