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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건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by 이문연

귀여운 걸 좋아한다. 귀여움을 탑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뭣 모른다’는 순수한 표정이 필요하다. 진짜 몰라서일 수도 있고 소통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는데 전자가 ‘아기들의 순수함’이라면 후자는 ‘반려 동물’의 순수?함이다. 두번째는 동글동글함이다. 뚱냥이가 사랑받는 이유는 고양이 특유의 매력에도 있지만 그냥 뚱뚱해서의 비율도 꽤 높다. 뚱뚱할수록 동그래지고 동그랄수록 귀여움은 배가 된다. 뱁새나 호박벌도 비슷한 계열이다. 세번째는 비주얼적인 측면보다는 귀여움을 인식하는 자의 사고체계가 자기멋대로 판단해버리는 귀여움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강아지는 표정보다 꼬리로 의사 표현을 한다. 코천이도 그런데 비 오는 날 우비를 입기 싫어한다. 그래서 “우비 입자” 말하면 저 멀리서 꼬리를 멈춘다. 하지만 “우비 입지 말까?”라고 말하면 꼬리를 마구 흔들며 가까이 온다. 자기 의사표현이 어찌나 정확한지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걸 합했을 때의 나의 반려동물 취향 1순위는 뚱냥이이고 2순위는 길냥이이며 3순위는 프렌치불독이다. 고양이들은 눈도 동그랗고 얼굴도 동그랗고 몸뚱아리도 동그랗고 발도 동그랗다. 안 귀여울 수가 없는 생명체다. 다만 너무 건강미 넘치는 얄상한 몸매보다는 허리를 알 수 없는 일체형 몸매가 내 스타일이다. 프렌치불독은 산책할 때 쉽게 볼 수 없는 견종인데 워낙 더위도 많이 타고 몸도 무겁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코천이랑 산책하다 프렌치 불독을 만나면 특유의 짧고 똥똥&딴딴한 매력에 너무 만지고 인사하고 싶지만 내향형 보호자는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귀여운 건 너무 귀엽다. 어쩌면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귀여움은 생존능력으로 발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야생에서 귀여운 건 아무 쓸모가 없으니)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 싫어하는 건 귀엽지 않은 것들이다. 귀여운 것과 거리가 먼 생김새의 생명체는 환영받지 못한다. 귀여움에 대한 결핍이 귀여운 걸 좋아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귀엽고 싶다는 욕망. 넌 귀여워서 좋겠다는 질투심. 코천이가 뚱뚱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도 내가 지 친구인 줄 아는데(밥 좀 혼자 먹으면 안되겠니) 뚱뚱했으면 보호자의 과한 애정으로 성질은 더 나빠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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