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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은 이미 웃고 있다.

by 이문연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했다. 학원 출근 시간이 오전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오전에 작업을 조금 하고 운동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출근을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아침 먹을 시간도 없이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기상 알람이 7시 10분(왜 10분인지는 묻지 마시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애매한 그 시간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운동을 가서 운동을 하고 씻고 출근하면 딱 맞는 스케줄이다.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은 보통 '할 수 없을 때'보다는 '하기 싫을 때' 더 많이 떠올리는 걸로 봐서는 하기 싫은 마음이 더 많아 보인다. 불혹의 자아성찰이란 참... 그렇게 하기 싫음을 뒤로 하고 오늘 6시 반에 일어났다. 더 잘까 운동을 일찍 갈까 하다가 역시 도로 누웠다. 잠깐 눈을 붙였더니 알람이 울린다. 운동복을 입고 운동 가방을 챙겨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 껴서 헬스장으로 출근했다. 마을 버스 속 출근하는 캐주얼과 세미 정장 사이에 쫄쫄이 5부 레깅스와 헐렁한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노라면 출근 풍경에 균열을 일으키는 아싸가 된 듯한 기분에 엄지손톱만한 우쭐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피곤한 건 매한가지다. 그렇게 도착한 헬스장에 불이 꺼져 있네. '헬스장 점검으로 당분간 휴관합니다' 회원권을 받고 탈의실 락카를 주시는 직원분께 물어봤더니 점검해야 할 곳이 생겨서 오늘 아침에 급하게 휴관하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 점검을 해봐야 얼마나 휴관할지도 나올 거라고도 했다. '이런...천상 샤워만 하고 가야겠네.' 안그래도 아침 일찍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타이밍 좋게 헬스장이 휴관되다니. 표정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자못 심각했지만 마음 속의 내 표정은 '브이 포 벤데타 가면'처럼 웃고 있었다. '아싸! 그럼 휴관하는 동안 운동 안해도 되는 거잖아!!' 이렇게 즐거울 수가. 고민이 한 방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아침을 초스피드로 먹지 않아도, 아침부터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아마 비가 많이 와서 건물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온 듯 하고 그로 인해 전기가 안 들어와 기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헬스장의 휴관으로 스케줄을 자체 조정해야 할 듯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일 온탕에서 느긋하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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