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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깨달은 부끄러움

by 이문연

글쓰기 수업 단톡방에 기사 하나를 공유했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좋은 글을 공유함으로써 ‘글맛’에 대한 감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분이 운전을 하며 겪은 다양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으로 날카롭고 명쾌하게 풀어낸 글이었는데 배울 점이 많았다. 적확한 단어 사용과 위트있는 라임의 활용, 단문과 장문의 화합은 역시 ‘제야의 고수들은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꽤 긴 글이었는데도 쉼없이 한 번에 읽었고 수강생 분들도 재미있게 읽은 모양이었다. 감상평을 짧게 나누었는데 내가 한 말은 “택시 기사 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더라.”였다. 그 말을 할 때도 뭔가 꺼림칙한(하지만 당시에는 분명하지 않았던) 느낌이 있었는데 말에서의 자기검열은 글에서의 자기검열보다 집요하지 못하기에 그 순간이 지나자 잊어버렸다. 그러다 이틀이 지난 오늘,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 ‘어? 뭔가 이상한데? 그 말이 뭔가 이상한데?’ 느낌이 쎄해 곱씹어 보니 내 말에는 택시 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1) 순수?한 택시기사님은 그런 글을 쓸 수 없다. 2)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은 따로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편견에 갇혀 있었다. 누구나 글을 쓰는 세상이고 지적 활동에 가까운 직업이라고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닐텐데 나는 왜 택시 기사님의 전 직업이 궁금했을까. 글을 쓰는 것은 직업과 관련이 없고 통찰만 있다면 좋은 글도 쓸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여전히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에 갇혀 있었다. 어찌어찌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지만 내세울 거라곤 수강생들보다 조금 더 많은 글을 썼다는 것뿐, 나 역시 관심있는 분야말고는 일자무식쟁이에 가까우면서 저런 말을 턱턱 내뱉었다니, 흑역사 일기에 기록될만한 일이다. 그래서 문득 부끄러웠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자기검열을 열심히는 하지만, 마흔살 넘게 살면서 박힌 무의식적 편협함은 의식의 관점에서 쳐내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도 늦게나마 나의 무의식이 돌다리를 두들겨줘서 다행이다. 물론 건너기 전에 두드린 게 아닌, 건넌 후에 두드린 게 살짝 아쉽지만. 이번 기회로 나를 돌아보고 또 반성해본다. 부끄러운 흑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해마의 흑역사 일기장에도 기록해야지. 깨부수어야 할 편협한 생각이 내 안에 아직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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