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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헛되지 않다.

by 이문연

지인의 남편분이 사주 상담을 시작했다고 해 친구랑 사주를 보러 갔다. 답답한 마음에 비해 사주에 큰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아 다소 편한 마음으로 임했다. 상담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사주를 봐주셨지만 오랜 직장 경험에 비해 개인 상담 경험은 초보인지라 세상사 경험할만큼 경험한(나이만으로 세상사 경험을 따지긴 어렵겠지만 - 그래도 반 팔십의 위엄을 주장해보자면) 40대를 만족시키기엔 다소 부족한, 딱 비용만큼의 상담이었다. 상담이 끝난 친구와 나는 사주에 대해 열렬히 토론했다. 거울치료 잘 했다느니, 원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느니, 사주 보면 다 나오는 내용이라느니 꿈보다 해몽이라고 사주보다 사주를 통해 꽃피우는 자기 문제(고민을 야기시키는 기질 - 보통 팔자라고 말하기도)에 대한 서로의 날카로운 진맥이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워낙 서로의 고민에 대해 잘 이야기하고 잘 들어주며 상대방의 기질에 따라 솔루션(그게 솔루션이 되느냐 여부와는 관계없이)도 잘 제시하므로 사주 선생님께 고마운 점은 또 한 번 이렇게 내 자신에 대해, 친구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보게 한 것.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산적인 고민과 함께하는 파전에 막걸리는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인지. 친구의 허심탄회한 분석과 솔루션에 그동안 했던 고민(정확히는 고민을 통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썰을 풀었다. 친구는 내 계획에 대해 흔쾌히 맞장구쳤고 잘 되기를 응원했다. 느리긴 하지만 내 일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한다. 고민은 고민일 뿐, 액션이 아니며 누가 알아주는 것(“너 오늘 고민만 10시간 했다며? 진짜 고생했다”)도 아니기에 현실화되기까지 무용에 가깝다. 게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상당한 불안을 야기시킨다. 나는 불안했지만 고민은 멈출 수 없었고 고민이 멈추는 때는 액션이 결정되는 때이다. 고민을 통해 액션이 정해졌고 친구에게만큼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기에 상담가 선생님의 사주가 엄청난 효용이 있지는 않았지만 사주로 인해 촉발된 우리의 대화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위안과 솔루션이 되어 주었다. 고민은 계획이 되며 계획은 액션이 된다. 고민은 그래서 값지다. 막걸리 마셔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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