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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이 있어야

by 이문연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나를 존중하는 마음)이고, 자존심은 타자존중감(남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벌써 12년 전 포스팅이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막 관심받던 시기였고 그 흐름으로 포스팅도 검색이 꽤 많이 됐었다. 모 기업 사보에도 실렸는데 몇 년 후에는 누군가가 불펌으로 자기가 쓴 글인양 포스팅해 놓기도 했다. 그렇게 자존감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중요해졌고 지금도 어떤 고민에는 자존감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존심 세포가 실종?된 1인으로 써보면 자존심은 꼭 필요하다. 살면서 타인에게 존중받는 일 역시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정이 기반된 존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탁월하게 잘 하지 않는(탁월하게 잘하더라도 개인의 기준은 다르므로 그 탁월함의 소유자 역시 열등감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이상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부족하다는 마음은 열등감을 부른다. 열등감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만드는데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다. 더 잘 하고 싶다면 열등감을 인정하고 계속 정진하는 길을 택할 것이며, 계속 하더라도 나아지지 못할 거라는 혹은 내가 원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거라는 마음은 단념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여기서 긍정적 자존심은 자존감만큼 좋은 영향을 가져다 주는데 ‘쪽팔리고 싶지 않다’는 동력이다. 쪽팔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발동하는 분야는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나를 규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일에서건 연애에서건 회피성향은 조금만 안 좋은 모습을 보였을 때 바로 피해버리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말 잘나서든(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못난 부분을 잘 감춰서든, 못난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건 못난 모습을 남이 눈치채고 내가 느꼈을 때 초라함에 잠식되지 않는 것. 초라하고 못나고 쪽 팔렸을 때 그걸 인정하고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게 긍정적 자존심의 역할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자존심은 큰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것과 부족한 부분에 있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건 다른 것이다. 내가 잘하고자 하는 분야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가선 안 된다. 자존심을 세우고 쪽팔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그게 바로 나에게 부족한, 내가 원해 마지 않던 뾰족함과 전문성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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