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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Jul 25. 2017

프롤로그 - 알고리즘 전쟁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이 글은 책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현재 YES24 혹은 메이저 온라인 서점 등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프롤로그 - 알고리즘 전쟁


    2014년 봄. 월스트리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전쟁터였다. 총도, 피도, 고성도 없었지만 그들은 광케이블과 마이크로파 통신을 이용한 이름 모를 인공지능들로 소리 없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주식 거래의 85%는 이미 알고리즘이 차지하고 있고, 세계 최고의 투자가 자리는 어느새 워런 버핏이 아닌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먼스가 차지했다. 일반 사람들이 투자 타이밍과 감각에 대해 논할 때 그들은 양자역학, 인공위성, 음성인식, 암호해독 혹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금융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배경은 다양했다. 심리와 확률에 능통한 도박가도 있었고 우주를 연구하던 천문학자도 있었다. 해킹에 도가 튼 프로그래머도 있었고 통신 사업을 하던 전자회로 전문가도 있었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이용해 투자하는 사람들을 퀀트라 부른다. 퀀트는 모든 것을 숫자로 바꿔서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다. 그림이나 사물마저 0과 1로 인식하는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퀀트는 가능한 사건을 확률적으로 계산하고, 상황을 데이터와 숫자로 표현한다. 브랜드의 가치, 셰프의 능력, 뉴스의 영향, 태풍으로 인한 공포심, 심지어 CEO의 신뢰도까지도 숫자로 표현했다. 그리고 추출한 데이터를 토대로 투자를 행하는 인공지능을 설계하였다. 특히나 투자 인공지능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알고리즘은 퀀트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전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알고리즘을 이용해 시장을 장악해나가는 퀀트라는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몇몇 사람의 이야기나 영화에서 전설 속 존재처럼 등장하기는 했지만, 월스트리트 사람들 입장에선 그저 수학을 잘하는 골방 괴짜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계 10대 헤지펀드 중 9개가 어느새 퀀트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주식, 환율, 채권, 금속 그리고 농작물까지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퀀트들은 고수익의 강력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경쟁사의 알고리즘 설계도를 알아내기 위해 스파이를 보내거나 기존 직원을 매수해서 코드를 알아내려고도 했다. 퀀트 헤지펀드인 시타델(Citadel LLC) 사무실은 웬만한 국방시설보다 보안이 심해서 보안장치를 5번이나 통과해야 메인 서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주식 시장은 외관상 10년 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2014년 봄, 마이클 루이스가 초고속 로봇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퀀트들에 대한 책 《플래시 보이스(Flash Boys)》를 출판하면서 세상은 떠들썩해졌다. 《플래시 보이스》는 초고속 로봇들과 사설로 설치한 광통신망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거래를 미리 파악한 뒤 가격을 바로 올려버리는 불법 행위인 선행 매매에 대해 고발한다. 물론 실제 시장에서는 합법적인 로봇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금융 시장을 지배한 초고속 로봇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86번 알고리즘의 설계도만 알아내 준다면, 이 사태 이후에도 자네 뒤를 톡톡히 봐주겠네.”
“알겠습니다. 시도는 해보겠습니다만……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2014년 봄, 나는 메릴린치 투자은행 3년 차인 신참 퀀트였다. 당시 나는 기본적인 데이터 분석 작업을 겨우 벗어나 나만의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플래시 보이스 사태로 상황이 복잡해지자 퀀트 그룹 대표인 제이크가 나를 조용히 불러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그때 메릴린치에는 수십 명의 퀀트들이 만든 300가지 알고리즘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들의 수익이 상당히 높아 은행 내에서도 영향력이 꽤나 컸고, 경쟁업체에서는 알고리즘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6번 알고리즘은 그중에서도 수익이 가장 높은 알고리즘이었다. 나머지 모든 알고리즘을 다 합친 수익의 반을 186번 혼자서 내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눈독을 들일 만도 했다.


    186번의 원작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나온 통계학 교수였는데 2013년 여름에 해고되었다. 해고된 이유는 2012년부터 시행된 새로운 규제 때문이었다. 은행이 돈을 크게 잃을 수 있는 공격적인 투자를 전면 금지하는 도트 프랭크법이 바로 그것이다. 고객들의 돈을 지나치게 잃어서 나라 전체를 휘청거리게 했던 2008년 금융 위기 같은 사태를 방지하고자 하는 처사였다.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했던 100개의 알고리즘은 금지 처분을 받았고 퀀트 팀원은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그는 은행을 떠난 뒤 규제를 받지 않는 헤지펀드로 이직하였고 186번도 자연스레 반년 정도 작동을 멈춘 먼지 쌓인 로봇 신세가 되었다.


뉴욕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건물, One Bryant Park


    이런 상황에서 186번의 설계도를 알아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원리를 응용해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 수도 있고, 이 알고리즘의 거래 타이밍을 포착해 역으로 잡아먹는 ‘알고리즘 저격수 AI’으로 수익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는 아마 186번의 설계도를 이용해 파트너 자리를 합의하거나 다른 회사로 가서 좋은 대우를 받으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는 186번 알고리즘의 코드를 공개하면서까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이 만든 인공지능의 코드와 데이터를 읽고 설계도를 추출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코드를 보더라도 그 수학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최고의 속도가 필요한 퀀트 알고리즘은 대부분 복잡하게 최적화돼 있어서 이해하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설령 설계도를 이해했다 하더라도 똑같이 복제하고 주어진 데이터에 맞게 변형한 다음 비슷한 결과물을 얻게 만드는 작업은 웬만한 해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마당에 플래시 보이스 사태로 모든 언론의 화살이 전국의 퀀트 업계에게 쏠린 것이다. 우리 팀의 300개 알고리즘은 플래시 보이스에서 말하는 불법적인 선행 매매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언론을 의식해서 조만간 나머지 알고리즘도 더 이상 작동시키지 못하게 할 것이고 퀀트 팀은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제이크는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적고 신뢰할 만하다 생각한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나도 전적으로 제이크만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겐 6개월 전에 나름대로의 기술을 집약한 알고리즘 288번이 있었다. 도트 프랭크법 이후에 만든 알고리즘이라 그다지 공격적이진 않았지만 꾸준한 수익을 안겨주는 나의 첫 인공지능이었다. 288번의 설계도 자체는 내가 직접 제작한 것이라 머릿속에 대부분 입력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알고리즘은 다른 알고리즘과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연계되어 있거나 전처리를 해주는 베이스 알고리즘들의 설계도를 차근차근 뜯어보아야 전체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초 알고리즘들은 186번 알고리즘과도 공유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종종 코드들을 보다 보면 프린트하거나 복사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제이크가 코드를 프린트하거나 백업하지 않고 나에게 설계도 해석을 지시한 이유가 있었다. 월스트리트 내에서 수익을 내주는 알고리즘에 대한 보안은 상상을 초월한다. 알고리즘의 코드를 추출하게 된다면 수익 기밀이 노출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USB를 꽂기만 해도 보안 팀에 연락이 가고, 복사-붙여 넣기 명령도 모두 추적이 된다. 2011년 소시에테 제너럴 은행의 한 퀀트는 회사 내 알고리즘 설계도를 프린트했다가 맨해튼 법원에서 3년형을 받았다. 2013년에는 한 프로그래머가 시타델에서 코드를 하드디스크에 넣었다가 10년형을 받았다. 이 때문에 프린트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사무실 의자에 기댄 채 밤늦도록 머릿속에 설계도를 집어넣었다.






    플래시 보이스 사태로 많은 거대 퀀트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수사를 받는 등 난관에 처했다. 그러나 소규모 트레이딩 회사나 헤지펀드에겐 오히려 기회였다. 알고리즘 거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인공지능을 제작해줄 퀀트를 영입하는 것이 모든 업체들의 최우선 과제였다. 베일에 싸여 있던 알고리즘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고 난세를 타개할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각 회사의 책략가들은 더듬이를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네. 인공지능 전문가 헤드헌터 빌이라고 합니다. 32조 정도의 자산을 운용 중인 헤지펀드에서 새로운 파생상품 알고리즘 퀀트를 영입 중입니다. 최소 30%의 연봉 상승이 있을 것이고 유수의 상급 박사들,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머신러닝을 공부하셨던데 현재 거래 알고리즘에도 머신러닝 기술을 쓰시나요?”


“아,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헤드헌터가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서 마냥 넋 놓고 있어선 안 된다. 각종 헤지펀드들은 다른 업체들이 어떤 알고리즘과 기술로 수익을 내는지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면접을 본다는 명목으로 기술을 세세하게 물어본 뒤 탈락을 통보하는 경우도 많다. 그 후 비슷한 알고리즘을 구현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물론 구체적인 수치나 연구 내용 없이 똑같이 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업계 동향이나 상대 알고리즘을 잡아먹는 ‘저격수 알고리즘’ 정도는 구사할 수 있다. 심지어 국제적으로 유명한 모 헤지펀드는 유망한 알고리즘을 가진 퀀트를 고용한 다음 그 알고리즘이 거래하는 회선에 일부러 랙을 걸리게 만들어 실적 악화를 유도해 퇴사시키고는 그대로 전략을 베껴 수익을 낸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여러 가지를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까진 이 팀에서 할 일이 꽤 있다고 판단했다. 186번을 이해한 뒤에 제이크와 협력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꾀할 수도 있었고, 나의 288번 알고리즘도 조금씩 다듬어 성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많은 퀀트들이 해고되거나 퇴사하였고 아직 경력이 길지 않지만 설계와 코드를 읽을 수 있는 퀀트라는 나의 입지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아직도 186번의 구조는 50%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딩동.


블랙베리에서 ‘법무팀으로부터 새 메일’이라는 알림이 떴다. 법무팀은 좀처럼 메일을 보내지 않는데, 의외다 싶었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최근 퀀트와 알고리즘, 초고속 거래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만약 접촉을 시도하거나 질문을 한다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지 마시고 ‘저는 권한이 없으므로 저희 법무팀과 연락을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답변 또한 언론에 인용될 가능성이 있고 법적 효력을 가지는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 법무팀 드림


    확실히 그날따라 사무실 전화벨도 자주 울렸다. 워낙에 나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급한 일은 블랙베리로 직접 전화가 오거나 메일로 오곤 했다. 사무실도 어수선하고 전화벨 소리도 시끄러워서 일찍 퇴근해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렇게 로비를 빠져나가려는데 입구에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저기요! 내일부로 퀀트팀이 해체된다고 하는데, 역시 불법적인 선행 매매가 있던 것입니까?”


“현재 내부 수사상황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해체된 이후 남은 퀀트들의 동향을 알고 계십니까?”



해체라니?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니 해체라뇨? 저는 모릅…… 아니, 권한이 없습니다. 법무팀에 문의하세요.”



나는 서둘러 제이크와 다른 팀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들은 미리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해체가 맞다고 전해 주었다.






    퀀트팀의 알고리즘 코드와 데이터는 모두 폐기 처분되었다. 은행에서는 평판이 나빠질 것에 대비하기 위해 이 사실을 언론에 발표하였다. 제이크는 해고되었고 회사는 나에게 기술지원 부서로 발령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말만 발령이지 사실상 해고인 셈이다.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접했는지 알고리즘과 수익에 대해 묻는 헤드헌터들의 각종 메일이 쏟아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개인번호로 문자 메시지도 보내왔다. 제이크는 자신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니 186번 알고리즘을 재현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그의 입지가 그다지 탄탄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동안 연락 왔던 헤드헌터 중 믿을 만한 이에게 내 인공지능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어줄 좋은 회사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면접 일정을 잡게 되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편한 복장의 매니저 두 명이 나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나는 최대한 간략하게 배경 소개를 하되 포부나 취미 따위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다. 어차피 이들이 관심 가지는 것은 단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나의 알고리즘.


“어떤 전략을 구사하십니까? 어떤 통계 기술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합니까? 거래는 어떤 식으로 합니까? 수익 레벨과 최대 리스크는 어느 정도지요?”


찬찬히 답변을 하였다. 퀀트의 면접은 직원을 뽑는 느낌보다도 투자 설명회에 가깝다. 회사는 자신들이 투자할 알고리즘을 찾는, 퀀트는 자신의 알고리즘이 탄탄하고 경쟁력 있음을 논하는 자리인 것이다.


“나쁘지 않군요. 수익률도 훌륭하고 기존의 알고리즘과 차별화되는 점도 있어요.”


괜찮은 피드백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읍시다. 알고리즘에 이름이 있나요?”


    나는 288번이라고 대답하려다 관뒀다. 은행을 떠난 이상 코드네임을 따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퀀트업계에서 역사적으로 대단했던 알고리즘에는 모두 이름이 있었다. 아마겟돈, 스타쉽, 루비, 네오 등등 대부분 진취적인 이름들이었다. 그간 코드네임만 따르다 보니 내 알고리즘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예. 물론 있습니다.”


잠시 고민한 뒤에 대답했다.



“지니(Genie)라고 합니다. 소원을 이루어주죠.”


그렇게 나 또한 알고리즘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프롤로그 - 알고리즘 전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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