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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Aug 01. 2017

위대한 도박사의 탄생

최고의 투자가 에드 소프

이 글은 책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현재 YES24 혹은 메이저 온라인 서점 등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1화. 프롤로그 - 알고리즘 전쟁


라스베이거스의 한 남자




1961년 뜨거운 어느 날 밤,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남자가 수십 명의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채 블랙잭 게임을 하고 있다.

  

6시간째 침착하게 게임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커다란 뿔테 안경과 뻘뻘 흘리는 땀을 보면 그는 전문 도박사가 아님이 분명했다. 관중들은 그가 몇 게임이나 더 버틸지 내기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몇 번의 운 나쁜 게임을 거치고 파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굉장히 불리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카드를 받거나, 누가 봐도 유리한 상황에서 멈추거나 하는 둥 블랙잭 초보자 같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옆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비웃으며 게임을 시작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패배하고 자리를 떠날 동안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궁지에 몰려서 파산할 것 같으면 어느새 다시 승을 거두며 되살아나곤 하였다.



관중들은 대단히 운이 좋은 사나이가 나타났다면서 흥미진진한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딜러는 이 남자에 대한 기묘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승기를 확실히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행운의 여신이 남자의 편을 들어주면서 다시금 긴장감이 팽팽한 대결 구도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9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고작 8달러 정도를 잃고 일어났다. 그는 조용히 ‘시스템 검증은 끝났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카지노를 빠져나갔다.


많은 관중들이 그의 체력과 굉장한 운에 대해 박수를 쳐주었지만 딜러만큼은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바로 퀀트의 시작이자 후대 퀀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알고리즘 전쟁의 시발점, 1900년대 중반 최고의 투자가 에드워드 소프(Edward O. Thorp)였다.     


1932년 가난한 참전 용사의 집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소프는 대공황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 덕에 금융 지식과 절약에 대한 본능이 일찍이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돈을 버는 법을 빨리 터득했다. 주스 분말가루를 5센트에 사서 주스 6잔으로 나눠 만든 다음 1잔당 1센트씩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행에 옮기기도 하였다.      


또한 승부와 게임을 좋아해 주유소 주인아저씨, 슈퍼 카운터 아줌마 등과 종종 여러 가지 내기를 했다. 한번은 금전 등록기보다 빨리 암산할 수 있다고 슈퍼 주인과 내기해 아이스크림콘을 딴 적도 있었다.      


그의 나이 고작 10살이었다.





1%의 불리함




소프는 특히 일상생활에서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와 화학에 관심이 많았다. 차고에서 화학 재료를 모아 폭발 실험도 하고, 전자 장치들을 연결해 비밀통신 장치도 만들었다.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이론으로 여러 가지 현상들을 계산해보고 실험해보는 데에 푹 빠졌다.


“카지노에선 절대 돈을 벌 수 없다. 그러니 손을 대선 안 된다.”     


어느 날 고등학교 선생님의 한 마디 말에, 승부욕이 강한 소프는 카지노 게임도 게임인 이상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 룰렛 게임의 경우, 공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떨어질 확률이 높은 숫자에 건다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비싼 룰렛으로 실험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카지노에 대한 열정을 잠시 뒤로한 채 물리학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UCLA 물리학과에 전액 장학금으로 진학하게 된다.     


대학교에 진학했어도 그는 룰렛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장학금 생활을 하느라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소프는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업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카지노야말로 승부에 강한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는 종종 학교 동료들과 세계의 여러 가지 게임들, 즉 복권, 경마, 포커, 바둑 등에서 유리한 게임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토론하였다.


카지노 룰렛판



동료들 대부분은 룰렛이 가장 불리한 게임이라고 했다. 룰렛에는 1부터 36까지의 숫자와 0, 00이라는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특수 문자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짝수에 걸더라도 짝수가 나올 확률이 절반이 아닌 49%이다. 검정색에 걸어도 마찬가지로 절반이 아닌 49% 확률이다. 즉 1%의 불리함 때문에 장기적으로 플레이어는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룰렛에 결함이 있어 특정 숫자가 더 잘 나온다면 유리하게 베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대형 카지노 룰렛은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모든 숫자가 무작위로 나와 어떤 숫자가 나올지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소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카지노를 상대로 이길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수학천재의 확률 게임이 시작되었다



물리학자라 함은, 카지노의 룰렛 따위의 바퀴 움직임을 계산하는 데 도가 튼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정교한 원판 위에서 돌아가는 공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것은 초기 위치와 속도만 있으면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학으로도 계산 가능한 일이었다. 룰렛 같은 경우에는 딜러가 공을 굴린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베팅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위치와 속도를 알아내고 나서 돈을 거는 것이 가능했다.


카지노 룰렛판


소프는 바로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300달러 정도 하는 싸구려 룰렛판을 산 다음 고속사진촬영기를 빌려 공을 굴리는 순간을 촬영했다. 그리고 공의 초기 위치와 속도를 측정한 뒤에 떨어질 위치를 확률분포로 나타냈다. 실험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공의 초기 위치와 속도, 룰렛 마찰 계수 등을 모델화해 공식으로 나타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공식을 만드는 것은 물리학과인 그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점이 결국 소프를 좌절시켰다. 싸구려 룰렛판이 너무 조잡해 결과가 일정하지 않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다. 어떤 부분은 거칠어서 마찰력이 너무 강하고 어떤 부분은 너무 미끈거리는 등 판이 고르지 않았고, 가끔 공이 튀기도 했다. 카지노에서 쓰는 정교한 룰렛을 구하기 위해선 월 생활비 2배 이상인 1,000달러 정도가 필요했으나 소프에겐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카지노에서 직접 공의 초기 위치와 속도, 떨어지는 위치를 계산하려면 소형 컴퓨터와 인식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비는 굉장히 비쌌고 성능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쉽지만 소프는 룰렛 연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을 밟기로 결정했다.


빨리 졸업한 뒤 돈을 벌고 싶었던 소프는 상대적으로 필수 과목이 적었던 수학과를 선택했다. 박사과정에서도 승부와 확률에 대한 관심은 줄지 않았다. 1958년 박사과정을 졸업할 즈음 그는 신규 수학 박사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교수직인 MIT CLE 무어 교수직을 제안 받았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게임 이론으로 유명한 존 내쉬(John Nash)도 MIT CLE 무어 출신이었다.


소프가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던 해에 우연히 학교 동료에게서 한 저널을 건네받았다. 그것은 미국통계협회저널이었는데 미 육군 본부 소속 수학자 로저 볼드윈이 발표한 <블랙잭 전략>이라는 논문이 수록되어 있었다. 블랙잭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승률을 최고로 이끄는 전략을 담은 이 논문은 소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작위로 결과가 나오는 룰렛과 다르게 블랙잭은 플레이어가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카지노 측이 완벽히 유리하다’고 증명된 적이 없는 게임이었다.


블랙잭 혹은 21이라고 하는 이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카드를 원하는 만큼 뽑아서 합이 21점에 가까울수록 이기는 게임이다. 만약 카드를 너무 많이 뽑아서 21점을 넘게 되면 자동으로 패배한다. 각각의 카드는 숫자대로 계산하고 J, Q, K처럼 사람이 그려진 카드는 10점으로 계산한다. 에이스는 1점 혹은 11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세세한 룰이 있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이렇다. 플레이어는 21점 이하이면 얼마든지 카드를 더 받을 수 있다. 딜러는 16점 이하면 카드를 계속 받아야 하고 17점 이상이면 카드를 더 받을 수 없다. 사람들은 딜러가 가진 카드와 자신의 카드를 비교해서 더 받을지 혹은 받지 않고 끝낼지 정한다. 이기면 건 돈의 두 배를 받고, 지면 건 돈을 잃는다.




그동안 블랙잭의 승률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플레이하면 45%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승률이 50% 이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불리한 게임이고 계속하면 파산에 이른다. 블랙잭에 대한 다양한 전략이 나왔지만 몇 천만 가지가 넘는 천문학적인 가짓수 때문에 그 확률을 계산하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컴퓨터의 등장으로 계산이 가능해졌고, 육군 수학자들이 이를 이용해 18개월간 각 상황에 따른 확률을 하나하나 계산해 논문에 정리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내 카드의 합이 16이고 딜러의 카드가 9일 때, 카드를 받는다면 52.1% 확률로 이기고 받지 않으면 46.1% 확률로 이긴다. 즉, 카드를 받는 게 좋은 것이다. 논문대로 따른다면 총 49.4%의 승률을 얻게 된다. 카지노 게임 중에서 승률 50%에 가장 가까운 게임인 것이다. 비록 50% 이하라 여전히 플레이어가 불리하지만, 운이 좋으면 돈을 딸 확률이 가장 높은 게임이기도 했다.




카드 5의 비밀




소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논문의 전략대로 이루어진다면 조금만 더 연구해 카지노보다 유리한, 즉 50% 이상의 승률을 가지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MIT로 가기 전에 당장 볼드윈의 논문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바로 짐을 싸들고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로 달려갔다. 그는 볼드윈의 논문 내용을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 손에 붙여갔다. 카지노에서는 신의 계시나 부적처럼 종이에 무언가를 써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딜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소프는 9시간 동안 100달러 중 8달러만 잃으면서 논문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그는 이렇게 몸으로 전략을 시험해보면서 문제점 또한 파악하였다. 볼드윈의 전략은 항상 52장의 카드로 게임한다는 가정 하에 계산하는 확률이었고, 이에 따른 최적의 움직임을 산출해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한 게임 뒤에 바로 섞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온 카드와 남은 카드에 따라서 확률이 변했다. 만약 지금까지 에이스 3장이 나왔다면 앞으로 에이스가 나올 확률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에이스가 4장 나왔다면 앞으로 에이스가 나올 확률은 0%다.



즉, 지금까지 나온 카드를 추적한 뒤에 유리한 상황이 되었을 때 베팅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21〉으로 유명한 카드 카운팅 기법이다.


영화 <21>

그는 MIT에 도착한 뒤에도 MIT 계량 센터에 있는 IBM-704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을 이용해서 블랙잭에 관하여 끊임없이 연구했다. 소프는 볼드윈에게 각 상황마다 확률을 계산한 데이터를 요청하였다. 얼마 뒤에 숫자가 가득한 메모지로 꽉 찬 상자 하나가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를 이용해 소프는 다양한 블랙잭 상황에서 승리 확률이 어떤지 계산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52장의 카드로 나올 수 있는 상황만도 몇 백만 가지가 넘었고, 이미 카드가 몇 장 나누어진 상황까지 고려하면 수십억 가지가 넘어 모든 확률을 계산할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확률 패턴을 유심히 보던 소프는 카드 5가 승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드 5가 많을수록 딜러에게 유리했고 카드 5가 적을수록 플레이어는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사실을 이용해서 카지노를 격파할 전략, 에드 소프의 알고리즘을 완성하게 된다.


에드 소프의 첫 알고리즘인 카드 5 카운팅 알고리즘은 간단하다. 덱에 남은 카드의 숫자를 카드 5가 나온 숫자로 나누어서 13보다 크면 소액 베팅을, 13보다 작으면 거액 베팅을 하는 것이다. 카드 5가 덱에 하나도 없을 경우 플레이어의 승률은 53.6%까지 오르기 때문에 거액 베팅을 한다면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구조인 것이다.


에드 소프가 특별했던 점은 ‘단순히 게임이 유리하다, 불리하다는 판단 하에 베팅’하는 것이 아닌 ‘매 순간 정확하게 확률을 측정하고 어느 정도 유리한지 확인한 후에 베팅’했다는 데에 있다. 13보다 작으면 작을수록 유리한 정도가 커졌고, 베팅 금액도 그만큼 늘릴 수 있었다. 또한 상황이 변화했을 때 새로운 경우에 대한 확률을 재빠르게 판단하는 방법을 개발해 적용하였다. 사실 카드 카운팅이나 블랙잭 확률에 대한 이론은 이전에도 굉장히 많았지만, 속도가 빠르고 기계의 사용이 금지된 카지노에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간편하게 우위를 계산할 수 있는 소프의 아이디어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의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 내에 우위를 계산할 수 있고 덱에 남은 카드에 따라 어떤 게임은 20%까지 우위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카지노에 비해 평균 1.2% 정도의 우위를 지니는 것이다. 약 51.2%의 승률이다. 에드 소프는 즉시 이 아이디어를 적용해보고 싶었으나 여전히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먼저 소프의 자금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집안이 어렵고 연구소 월급도 많지 않았다. 설령 자금을 구한다 하더라도 베팅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알고리즘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현재 게임의 승률이 55%이고 수중에 100달러가 있다고 하자. 유리한 게임이라고 100달러를 올인해야 할까? 여전히 45%라는 패배할 확률이 있고, 패배할 경우 전 재산을 잃게 될 것이다. 반대로 10달러씩 10번을 건다고 해도 10번 모두 패배하면 파산할 수도 있고, 9번을 승리하더라도 베팅 금액은 여전히 10달러로써 변화가 없기 때문에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므로 비효율적이다. 미세하게 유리한 확률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파산하지 않고 오랫동안 게임을 해야 했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소프는 이러한 자금 문제와 베팅 문제를 해결키 위해 MIT 수학계의 거장,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교수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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