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 위 할머니와 갓난아기

by Thriving


10대 말에 정략결혼을 한 인순이는 이제 청상 과부가 된 지 15 년이 조금 안 되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하염없이 쏟아지던 굵은 소나기에 선산의 상태를 보러 갔던 남편이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둘은 어느덧 20대를 훌쩍 넘었고, 각자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서 떠났다.


시골 산속에서 홀로 살던 그녀는 어느 새벽,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주섬주섬 털 스웨터를 두세 겹 껴입고 방문을 열어 본다. 인순이는 플래시를 들어 정체 모를 소리를 따라 사립문 쪽을 비춰 본다. 사립문 밖 광주리 안에 희멀건 무엇인가 놓여있다.


밤 새 차가워진 구들 덕에 얼어버린 몸뚱이를 이끌고 사립문을 열어 보니, 광주리 안에 담아 있던 것은 얇은 흰 홑 겹 면으로 돌돌 말은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아닌가. 아기가 자는지 어쩐지 숨소리가 구슬프고 아픈 신음 소리 같았다.


허둥지둥 광주리를 채어 안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광주리에서 들어 올린 아기에게서 생모가 마지막으로 젖을 물린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젖 냄새가 진동을 한다. 광주리 한쪽 귀퉁이에 손으로 거칠게 찢은 종이가 있었다. 그 종이에는 사인펜으로 굵고 크게 쓴 이름, 생년 월일과 함께,


'어쩔 수 없었어요. 따듯함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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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궁이의 불은 꺼진 지 오래이고 방 안은 벌써 웃풍으로 싸늘했다. 새벽녘에 광주리 안에 얼마 동안 있었는지 모르나 갓난아이의 몸뚱이도 온기는 없었다. 아직 밖은 어두워 나무를 하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인순인 두꺼운 스웨터를 몇 개 껴 입은 채로 요 위에 누웠다. 그리고 갓 데려온 핏덩이를 가슴에 올려놓고 이불을 덮는다. 어미를 갓 잃은 이 핏덩이에게 인순은 조금이나마 온기가 전해지길 바랬다. 아이는 몸을 몇 번 꿈틀 대더니 처연한 울음소리를 멈추고 자신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대신, 이번엔 인순이 입에서 처처하고 애처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뜨거운 눈물이 새어 나온다.

"아이고, 시상에.... 이 어린 걸... 아이고... 시상에..."


밤하늘은 어느덧 걷히고 동쪽 하늘이 푸근한 햇볕에 점차 데워지자 밤새 얼어붙은 별들도 하나 둘 녹아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