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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Apr 28. 2020

13 of 185, 아빠의 규칙, 아들의 생각

2020/03/26, 13 of 185

세상에나 낮잠이라니. 없던 종교도 만들어서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배고프다는 말로 엄마를 끌고 나가서는 붙들고 놀기 시작하더니 장장 열 시간 반을 놀고야 만 우리 큰아들. 조금만 거슬려도 울고 소리 지르고 짜증 내더니만 기어이 세시 반에 엄마 손에 끌려 들어가서는 금방 잠이 들었다. 내가 자러 가자고 하는 건 끝까지 안 간다고 난리치고 하더니 그래도 엄마 손에 끌려서는 갔다. 이거 참 서운하달까… 내가 너무 장난을 쳐서 싫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아빠 장난치지 마세요!’라고 하는 많이 자란 모습에 깜짝 놀라는 한 편, 내가 아버지에게 ‘뭐 하나 의미 있거나 재미있는 일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아빠들 술만 마시기 위한, 시간만 낭비하는 친목회 여행 따위 따라가지 않겠다’ 고 선언했다던 중학생 당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왜 기억이 나지 않지?). 그러고 보면 첫째가 나나 와이프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고, 못 들은 척하고, 황당하달까 짜증 난달까 하는 것으로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하는 일들이 벌써 많이 보인다. 거 참, 세상이 변하는 게 빠른 만큼 아이들이 성장하고 똑똑해지는 것도 점점 더 빨라지나 보다. 나도 멀지 않았구나. 최대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아빠가 되고, 또 와이프랑 잘 지내야겠다. 결국 남는 건 부부 서로 뿐이다. 자식은 둥지를 떠나야 또 하나의 어른이 되는 법.


와이프가 둘째를 재우고 잠시 옆에서 자고, 나는 첫째를 재우기 전 자동차 놀이와 숨바꼭질 등을 하며 같이 놀다가도 문득 떠오른다. 내 아이들이 보는 지금의 나는, 내가 어릴 적 보고 느꼈던 아버지에 비해서 어떤 사람일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화낼 때 무섭긴 해도 나랑 아주 잘 놀아주고 매주 데리고 나가 개울가에 가고, 시내에 나갔다가 사무실에 찾아가면 책 사 읽으라고 용돈도 가끔 주시고 그랬었는데. 내 발바닥은 당시 아버지에게서 보았던 발바닥보다 덜 갈라져있고 말랑말랑한데, 그렇게 시대가 좋아지고 더 편한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만큼 아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자세 또한 그에 맞게, 아버지가 나에 대해 가졌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충분히 말랑해졌을까? 버릇을 잡는답시고 아이들을 혼내고 울리고 하는 것은 사실 내 편의와 만족을 위한 것일 뿐 주제넘은 일이고, 정말 그냥 애들이 원하는 대로 받아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것일까? 장난치듯이 대하면서, 먹는 거로 약점 잡고, 삐진 척 아빠 싫어하니 가겠다고 해서 울리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고 큰 스트레스를 주면서 원하는 답을 얻어내는 안 좋은 방법인 건 아닐까 (안 좋은 방법이다. 안다.)? 참,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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