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아가야
뚜띠를 만나기 전까지 엄마는 뱃속 아기의 생김새를 상상해볼 수 조차 없었다. 이쁜 구석만 닮아서 부족함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콤플렉스 같은 것은 생기지 않을 외모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어딘가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나 보다. 거울을 볼 때마다 피부 요기는 별로고 얼굴 모양도 좀 더 갸름하면 좋겠고 다리도 더 가느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불만을 늘어놓았다. 성격 면에서도 그랬다.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아기도 나처럼 생각이 많고 예민하면 어쩌지.
세상을 살면서 걸림돌이라 여겼던 성격들을 아기도 닮아서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지레 걱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문제로 끙끙대던 것들은 엄마의 것일 뿐 아기는 다를 텐데 말이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좋은 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불안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가여운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드디어 아기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모자동실을 신청하고 병실에서 아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투명하고 작은 아기 침대를 천천히 밀며 엄마에게로 다가왔다. 그곳에 뚜띠가 있었다.
세상에.
엄마는 아기가 너무 예뻐서 눈물을 흘렸다. 감히 쉽게 만지지도 못하고 남편의 팔을 부여잡고 매달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어쩜 좋아. 너무너무 예뻐." 아기는 구석구석 안 이쁜 곳이 없었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 뚜띠는 동그랗고 인자한 눈동자와 작고 오똑한 코, 선이 뚜렷하고 붉은 입술을 가졌다. 이마는 둥글고, 귀는 앞에서 보았을 때 요정처럼 옆으로 살짝 열려있다. 오른쪽 손목엔 몽고반점 같은 푸르스름한 점이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 이쁜 곳이 없다.
어느 날 새벽에 깨 엄마 젖을 물다 잠든 뚜띠의 얼굴은 마치 엄마의 얼굴 같았다. 엄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마주했다. 이상하지만 꼭 엄마가 엄마 자신을 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안고 들여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이렇게 예뻤나. (풉) 뚜띠가 이렇게 예쁜 건 엄마 아빠가 예쁘기 때문이겠지? 그럼 나도 예쁜 구석이 있는 아이인가 보네? 뚜띠가 이렇게 순한 건 엄마도 순하기 때문이겠지?
엄마는 서른이 훌쩍 넘었고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은 정말 어른이 된 게 맞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었다. 마음속에 작은 아이가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뚜띠를 안고 엄마는 상상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상상. 마법처럼 엄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나 이제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닮은 아이를 이렇게 끌어안은 것처럼 나를 꼭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아. 내 열등감이나 상처, 예쁘지 못하다고 여겼던 바보스러움, 잘 해낼 수 있을까 믿지 못했던 것들 모두 피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어.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실망하고, 좌절하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응원해줄 수 있어.
누군가는 겨우 잠든 아기를 보며 자신감을 채우는 거냐며 우습게 볼지 몰라도 엄마에겐 세상이 이전과는 달라 보일만큼 커다란 감정이었다. 단순한 만족감과는 다르다. 아이를 향한 사랑과 보호하고 싶은 열정이 엄마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는 동안,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며 아이와 함께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