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연재하지 못한 이유

방어기제에 관하여

by 나의

쓰는 행위가 나를 나아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일주일에 글 한편이라도 연재를 하게 되었다. 대단히 잘 쓰지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쓰기를 실천했다.


그런데 무슨 일에서인지 2주 동안 나는 멈춰버렸다. 연재 그까짓 거 안 올리면 어때,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 걸 하면서 아무렇게나 널브러 놓은 이불처럼 쓰고 싶은 마음도 되는 대로 뭉치고 못 본 척했다.


굳이 '왜 쓰려고 하는 걸까',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같은 물음만 반복했다. 쓰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답을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왜 쓰는가 물었다.


글쓰기는 마음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정화시키는 가장 좋은 길이다. 감정에 휩쓸려 옳다고만 생각했던 부끄럽고 오만한 선택이나 판단도 다시 돌아보고,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을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며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답은 명백하게 알고 있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왜 내내 같은 질문을 반복한 걸까.




답을 제대로 찾으려면 질문을 제대로 해야 한다. 고심 끝에 '왜 쓰는가'를 '왜 쓰기를 주저하는가'로 바꾸어 다시 물었다.


질문을 바꾸니 표면을 겉돌던 생각이 한 칸 아래로 내려가 깊은 곳에 숨은 답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일기장 빈칸에 수두룩하게 적어 놓았지만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 중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기장엔 슬픔으로 시퍼렇게 물든 날을 쓸 때도 있고, 끝없는 희망으로 밝은 날을 쓸 때도 있고, 역겨울 정도로 분노로 가득 찬 날을 쓸 때도 있다. 브런치에 올릴 땐 조금 거르고 다듬어서 실제로 느꼈던 슬픔보다 덜 슬프게, 덜 기쁘게, 덜 화나게 절제하고 조심하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 올려버리면 읽는 사람이 지치고 질릴까 봐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너무 벅차지도 말고, 너무 화내지도 말고,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정리하고 정돈하려고 애쓴다.


글을 완성하기 위한 적절한 과정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나의 방어기제가 글에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방어기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잠재적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거나 왜곡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행동이 본능에 의해 동기화되는 것처럼 역시 불안을 피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방어적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을 원치 않으며 그것을 벗어나기를 원한다. 따라서 인간은 갈등에서 비롯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 위키백과




얼마 전 동네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법주차에 관해 글을 쓴 이후로 브런치를 열지도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브런치에 올리려고 했지만 결국엔 올리지 못하고, 쓰는 내내 화만 냈다.


마을을 조성할 때 땅을 파는데 급급한 나머지 실제 살아갈 거주민들의 생활은 고려하지 못한 구조를 설계한 높은 양반부터 사유지와 경계에 대한 개념 없이 뻔뻔하게 선을 넘는 자들까지 화에서 시작해 화로 끝나는 글을 써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노려보기만 했다.


2주 동안 연재하지 못한 이유가 정말 이 글과 관련이 있을까.


낮 시간 맞은편 주택 앞, 거주민들의 차가 나가고 빈 주차장에 낯선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차에서 노란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내렸다.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플랫폼이 두툼한 겨자색 슈즈를 신고 있다. 손에는 빨간색 휴대폰을 들고서 주변을 둘러본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토록 촌스러운 스타일의 기원은 무엇이며 왜 남의 집 주차장에서 턱을 세우고 멋을 부리고 있는가.

그녀는 주차장에서 나와 근처 공원을 걸었다. 얼마 뒤 다시 돌아와 차 문을 열어둔 채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여유를 누렸다. 누가 사는 곳인지, 어떤 곳인지 모르는 아무도 없는 벽 앞에서.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허락한 벽 앞에서.

한 가족이 지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지만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은 여성을 한참 바라보며 걸었다.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행동은 옳지 않다는 것을.




이 장면만 떠올리면 속이 울렁거린다. 투사가 일어난 것 같다.

투사란 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욕구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방어기제다.


노란 옷의 중년 여성을 닮은 과거의 그들은 나에게 어떤 모양의 경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무시하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했다.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무거운 시절의 한 부분이다. 쇳덩이를 쥐고 무의식 저변에 가라앉아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머물러 있는 상처를 마주하고야 말았다.


이제야 2주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여전히 가벼워지지 못한 그 마음을 나는 차마 밖으로 꺼내 놓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다룰 수 없는,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한 아픈 마음을 다시 억눌러 놓은 것이다. 쓰려고 하면 떠올려야 하고 다시 괴로워지니 억압을 선택한 것이다.

억압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밀어내는 방어기제다.




결국 방어였다.


늘 하던 것을 할 수 없을 때, 이유도 모르고 멈췄을 때, 불편한데 무엇이 불편한지 알아채지 못할 때, 변명만 늘어놓을 때. 무엇을 방어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거의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심장이 쿵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겪은 괴로운 감정은 뇌리에서 잘 잊히지 않는다. 다시 안전한 벽을 세우고 벽 앞에서 제대로 화내고 싶다. 노란 옷의 촌스러운 아줌마에게 하듯 이렇게.


"아줌마!! 차 빼!!! 어디 남의 집 앞에서 개수작이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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