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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osaur May 21. 2024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2장. 삼류 소설 같은 죽음

담배 연기를 깊이 들어마시자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시바타의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이제는 현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코는 지하철 문 옆에서 서서 흘러가는 밤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야코가 얘기한 게 사실일까. 약간의 과장은 있더라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른다. 만일 아야코가 얘기한 대로 에리의 죽음이 그런 삼류 소설 같은 죽음이라면 더더욱 슬프다고 교코는 생각했다.


3장.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도쿠라는 명백히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눈치였다.

"잠깐 몇 가지만 확인하면 돼요."

시바타가 말했다. 확인이라는 말은 정말로 편리하다.


4장. 합동 작전을 펼치자

사실 교코는 처음에 예리의 자살에 의문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시바타의 영향도 있었고, 거기에 다카미 슌스케가 관련됐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에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마음먹은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해봤자 대화가 복잡하게 얽히기만 할 것이다.


"에리 부모님이 뭐든 원하는 걸 가져가라고 하셔서 에리가 생전에 모아둔 CD며 테이프며 전부 들고 왔어. 요즘 저녁마다 그거 듣는 게 낙이야. 에리가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 혼자 상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얘기를 유카리는 눅눅하지 않게 가벼운 말투로 들려주었다. 정말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품을 수 있는 감정이어서 교코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카미가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예요. 내 직감만으로 일단 정해버린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으니까."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충고해 주는 게 좋아요. 혼자 추리해 보는 정도라면 위험할 것도 없지만, 진짜로 적의 수중에 뛰어드는 식이면 자칫 큰일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5장. 중요한 할 얘기가 있어

책을 훌훌 넘겨보면서 시바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남녀란 좀 자연스럽게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머, 왜요?"

"왜냐니, 교코 씨도 피곤하잖아요."

"난 전혀 피곤하지 않은데? 재벌과 결혼하는 거잖아요. 웬만한 고생은 감수해야죠."


6장. 두 남자의 궤적

오늘밤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교코로서는 결코 예정에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미리 마음먹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듬성듬성 2, 3센티미터 크기로 썰었다. 그다음은 '살짝 데쳐낸다'라고 적혀있었다.

"살짝이라니 대체 어느 정도야? 이런 감각적인 표현이 많은 게 문제라니까. 초보자도 알아듣게 써주세요, 제발!"


어쩐지 비위가 틀어졌다. 그 불쾌함은 어디서 온 것인가. 시바타는 어제 먹은 교코의 요리가 생각났다. 기묘한 맛이었지만 어쩐지 그리운 맛이기도 했다.


교코가 그다음 할 말을 찾고 있는 사이에 겐조는 노래방 테이프를 세팅해 버렸다. 그 바람에 교코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서툰 노래를 세 곡이나 들어야 했다.


7장. 너와 함께 비틀스를

노래라는 게 멍하니 들을 때는 좋지만 한 구절도 놓치면 안 된다고 온 신경을 집중해 계속 듣다 보면 저절로 졸음이 몰려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게 일거리라면 재미도 뭣도 없다.


"이상할 것도 없어. 잘못짚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문제는 그 실수를 어떻게 다음 단계에 활용하느냐는 거야. 수사란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걸어가는 머나먼 길이라고."

사고 능력이 둔해졌는지 나오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이미 확인한 테이프를 다시 듣고 있는 것을 보면 의욕까지 떨어진 건 아닌 모양이다.


8장. 페이퍼백 라이터

나오이가 의견을 청하듯이 둘러봤지만 아무도 발언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시바타는 생각했다. 범인의 행동에는 반드시 뭔가 근거가 있을 것이다.


택시 창문 너머로 흘러가는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교코는 몹시 불쾌한 느낌에 빠져 있었다. 아까 들었던 테이프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9장. 윙크로 건배

월요일 오후, 시바타와 나오이는 다시 밤비 뱅큇 사무실에 찾아갔다. 이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벌써 몇 번째 타는 건가. 그새 내 집에 드나드는 것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남녀가 사귈 때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일반적으로는 간단한 일이니까."

이것 또한 비꼬는 말이었다.


"여기서 이상한 게 한 가지가 있는데요."

시바타가 옆자리에 말을 건네자 나오이는 갑자기 허둥지둥 난리였다. 보고서를 쓰는 줄 알았더니만 그새 깜빡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겐조에 대한 인상이 변해버렸다. 그자는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교코에게 접근한 것도 정보를 수집하려는 속셈 때문이었던 게 틀림없다. 게다가 교코의 집에 침입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식사를 청했다. 그때 교코의 집을 뒤엎은 것은 에자키 요코였다.



방백

평소에는 정보성 도서를 선호하지만, 생각이 많아 시끄러운 머릿속을 잠시 멈추고 싶을 땐 소설을 찾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연애의 행방>, <나미야 잡화점>, <가면산장의 살인사건>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도 히가시노를 찾았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너무 판타지스럽지 않고 가볍게 읽을 만한 추리 소설을 고르다가 제목에 이끌려 읽었다.

보석에 대한 인기와 컴패니언 등, 소설에서 설정된 배경이 현재와 동떨어진 느낌에 와닿지 않았다. 이 소설이 1992년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당시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던 것 같다. 


히가시노가 이끌어가는 추리의 방향적인 요소보다 주인공의 내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관점으로는 도전, 또는 속물 같을 수 있는 원대한 계획이 있더라도, 자신의 속을 다 내비치는 않는 교코의 단단함이 인상 깊었다. 

또한, 매사 투명한 나와는 달리, 사실이나 개념을 알고 있을지라도 관계의 롱런을 위해 몰랐던 척, 이제야 알게 된 척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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