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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osaur Sep 07. 2024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작은 고의

그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다쓰야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얼굴을 보면 "뭐야, 멀쩡하잖아" 하고는 웃어넘기고 싶었다.


자살한 것 아니겠느냐고 다무라는 말했다. 그 가벼운 말투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다무라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그곳을 뒤로했다.


집 앞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요코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위로할 방법을 모르니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정신력에 감탄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내가 하려던 말을 그녀가 알아챘으니 입을 다물었다.


6교시가 끝나자 이모토 선생이 내일 있을 다쓰야의 장례식에 다 함께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정을 표시하라는 의미겠지만, 다쓰야에게 우정을 느끼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나 보다.


그러고 나서 요코는 자신이 속한 체조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축구부 이야기를 물었다. 억지로 화제를 찾고 있는 듯했다.


"아무 의미도 없어, 이런 장례식은."

제자리로 돌아온 요코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죽은 자에게는 그렇지. 하지만 이건 남은 사람들을 위한 의식이야."


빗속에 다쓰야의 몸이 실려 나간다. 배경도, 사람들이 입은 옷도, 표정도 흑백과 회색뿐이어서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그 필름은 상처투성이다.


"휘청휘청이라....."

후지오는 '균형을 잃은 것 같다'라고 했지만 히로미의 표현이 좀 더 감각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라는 말도 못 했다.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쓰야가 그 러브레터를 영어회화부의 다른 아이에게 보여줬대. 그러곤 그 아이를 통해 그녀의 고백을 거절한 모양이야. 다쓰야에게는 그런 면이 있거든. 직접 거절하는 것보다 충격이 덜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그런 방식은 여자의 마음을 짓밟는 거나 마찬가진데, 거기까진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거지."


회색 공간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 둘은 어떻게 보일까? 헤어지지 말자고 남성이 애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아니면 헤어져 달라고 설득하는 것처럼 보일까?



어둠 속의 두 사람

아침 공기를 뒤흔들면서 벨이 울렸다.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에 일격을 맞고 나가이 히로미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믿기 힘든 불행이라고 히로미는 생각했다.


열정적으로 말하는 형사의 입가를 히로미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다는 말은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정확한 추리일지도 모른다. 신지와 계모 사이가 어떻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신지의 마음이 궁지에 몰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자신이 학생의 마음에 새겨진 구김을 읽어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순찰차 안에서 신지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로서는 오랜만에 맛보는 숙면이었다. 형사는 한쪽으로 툭 떨어진 신지의 손을 다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 손이 아들과 동생을 동시에 죽인 손이라는 건 형사도 알지 못했다.


춤추는 아이

다카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학교 안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였다. 어머니가 예전에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한 까닭에 다카시는 그 음색을 들으면 왠지 그립기도 하고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다카시는 훌륭한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똑같은 감동을 받았다. 좋은 곡을 만나면, 그것이 난생처음 듣는 곡일지라도 이전에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차인 거냐?"

대답 대신 다카시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로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구로다는 '아하하' 하고 웃었다.

"홈런을 치려고 하면 헛스윙을 하게 마련이고, 구애를 하려고 하면 실연을 하게 마련이다. 비관할 거 없어. 그래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생각해도 별수 없는 건 생각하지 않는 거야. 아무튼 다음 주에도 가보면 돼."


"설거지요. 그렇게 침울한 얼굴로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댁의 무뚝뚝함은 어떻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참으며 구로다는 다시 물었다.


구로다는 어설프게 대답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그건 다카시에게 너무나 잔혹한 일이었다.



끝없는 밤

요이치가 없다. 그 사실이 묘하게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실감 나게 가슴에 와닿지도 않았다. 요이치가 살해되었다. 아쓰코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러자 마치 아픈 어금니를 누르는 것처럼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여자관계..."

아쓰코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부자연스러운 울림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마음이 끌리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불쾌한,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아쓰코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하얀 흉기

"사실입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가스관을 열어놓은 뒤 도망쳤어요. 어쨌든 운이 좋았어요. 그녀가 가스에 대해 무지한 것에 감사해야 할 겁니다. 여기는 천연가스를 쓰니까 일산화탄소 중독이 될 일은 없거든요."


"형이 죽고 형수는 굉장히 슬퍼했어요. 가까스로 기운을 차린 건 형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예요. 아이랑 둘이 살아갈 거라고 했죠. 그런데 그렇게 유산을 하고 말았으니... 유산한 후로 형수는 좀 이상해졌어요.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다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곤 했죠. 그러다가 점점 말이 없어졌어요. 한 번은 형수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았다고, 형수가 직장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요. 임신 중에 그런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유산된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굿바이, 코치

나오미는 시선을 떨어뜨리더니 손을 마주 비볐다. 다음 말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몸짓이었다.


"코치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딱히 무언가를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좀 지쳤을 뿐이에요. 안녕히 계세요, 코치. 정말 즐거웠어요."


"그저 확인하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거든요."


"그랬군요. 그건 괴로우셨겠습니다. 자신한테 호감을 품은 사람과 늘 함께 있으면서 코치와 선수라는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요."

"별로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형사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인상이 전혀 다르다. 이 남자의 눈은 차갑다.


거무칙칙한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공기가 몸에 달라붙으면서 다가오는 장마를 느끼게 했다.


나오미는 내 팔에 안겨 울었다. 그녀를 입으로만 위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말이 결코 망상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나오미는 진심인 것 같다. 이제껏 올림픽 출전이라는 외길을 달려왔으니, 그 꿈이 깨진 지금 결혼이라는 또 다른 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리고 연애 경험이 없어 자신을 안아준 남성이라면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숨이 막힐 만큼 길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을 것이다.


마사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배짱이 있는 대신 다소 생각이 얕은 편이다.


"진실에 거짓이 조금 섞여 있는 건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부분만 두드러져서 파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지요. 100% 거짓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좀처럼 증명할 수 없는 법이거든요."


그렇구나. 감탄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쿠야는 옛날부터 거짓말을 잘했다. 나도 몇 번이나 속은 적이 있다.


다카오를 제외하고 모두 응접실에 모여 대책을 세웠다. 아무래도 상황을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다소 낙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약속을 하신 건 아닙니까?" 

소스케 씨의 힘겨운 발뺌을 의심하는 말투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결행의 순간이 다가왔다.

*결행: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변함이 없을 듯한 기세로 결단하여 실행함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반추하고 있는 듯했다.

*반추: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함 또는 그런 일


"글쎄요."

고개를 저었다. 흥미가 없다는 걸 보여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형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요량: 앞일을 잘 헤아려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불쾌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일까?

순간 상대의 영역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고상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뿐이다. 이 연극의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카노는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는 자세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눈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이야기를 중단하면 계속하라는 듯 느릿하게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공기는 차가웠다. 한껏 들이마시니 머릿속까지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방백]

단편의 장단점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떤 작품은 후루룩 단숨에 끝났고, 어떤 작품은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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