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긴 생각을 읽고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엔 짧은 이야기들이 더 시선을 잡는 것 같다.
저렇게 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줄여 쓰고,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상 플랫폼이 대유행이다.
모든 것이 달리는 차창 풍경처럼 휙휙 지나가버려 하루종일 듣고 보고 한 그 많은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이야기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의 문제이지 그 이야기들이 짧아서, 가벼워서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짧아서 명료한 것들을 짧아서 쉽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긴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을 짧게 쓸 수 있는 것이 더 큰 실력임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여러 이야기 중 특히 내 맘을 세차게 두드린 긴 생각거리를 35. 수염을 찾아라(p125)에서 만났다.
긴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에게 아이가 묻는다.
잠잘 때 그 수염은 이불속에 넣어두는지 아니면 이불 밖에 빼놓는지.
기발한 질문에 나도 무척 궁금해졌고, 할아버지의 잠자는 여러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십여 년 기르고 지낸 그 수염을 자신도 어찌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래요,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 묻고 사는 수염 하나씩이 있습니다.
좀 헷갈리고 꼬인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모른 채 살아온 나날들을 새파랗게 눈을 뜨고 지켜보세요.
일거수일투족 숨어 있는 수염을 의식 위로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묻는 자에게 답을 하세요. ”이것이 나의 삶, 나의 모습”이라고
수염이 의미하는 것은 사소하게는 나의 일상 습관도 되고, 넓게 해석해 보자면 나의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하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나의 습관이 되어 나를 고착시키기도 한다.
또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있는 사고방식이 나를 제어하고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릴 때도 있다.
돌아보기 부끄럽고 속상해서 숨겨두고, 잊은 척하는 실패,
뻔히 보이는 개선의 방법이 낯설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는 불편,
이젠 익숙해져서 새삼스럽지도 않은 행복,
이 모든 것들이 할아버지의 수염처럼 내 삶에서도 꽤 많이 길어졌을 것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헷갈리고 꼬여있을 것이다.
내 생활을 세세하게 의식 위로 떠올려 분해해 보는 것.
너무나 당연해서 재고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나의 생각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면서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