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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Nov 08. 2024

얼탱이 없는 상간자 소송

웬만하면 다른 변호사 욕을 하기는 참 싫은데 얼마 전 정말 얼탱이 없는 소장을 하나 검토했습니다. 전국단위 대형 네트워크 로펌에서 원고를 대리하고 있는 사건이었죠.


사건의 주요 내용은 원고와 피고1은 사실혼 관계였는데, 피고1과 피고2가 외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건이구나, 하고 생각하였지만 자세히 보니 소장이 민사법원에 제출되어 있었습니다.


으잉? 이게 민사소송이라고요????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토지관할, 그러니까 서울서부로 넣어야 할 사건을 서울남부로 넣었다... 뭐, 이런 건 변호사가 헷갈릴 수 있습니다만, 전속관할, 그러니까 가정법원 관할 사건을 민사법원에 잘못 넣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소송으로 하면 당연히 틀릴 수 있습니다만, 변호사가 그것을 틀릴 수는 없습니다. 너무 기초적인 것이니까요. 가정법원 관할인지 민사법원 관할인지를 헷갈리기 위해서는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민법 중에서도 가족법 부분을 일부러 안 본다던가, 민사소송법 중 관할 부분을 일부러 안 본다던가... 수업 중 가사의 '가'자만 나와도 귀를 틀어막고 있어야 한다던가...


그러니까 적어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면 사실혼 부당파기에 따른 손해배상과 같은 전형적인 '다류' 가사소송을 민사소송으로 착각할 수는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무슨 전관출신의 변호사들도 있고 소속 변호사가 수백명이며 전문센터도 있다는 대형 로펌에서 이런 착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건 마치 삼성전자에 85인치 TV를 주문했더니 집에 85리터 냉장고를 가져다 주고서는, 냉장고로는 영상 못 보나요?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고 상간자만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때는 보통 민사소송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법리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제3자가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방해하거나 침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민사소송의 영역이니까 민사법원에 제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혼이나 사실혼 부당파기에 따른 위자료 청구도 똑같이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인데 왜 가사소송일까요? 그건 가사소송법에서 가사소송으로 하기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도를 했을 때 '이혼'이나 '사실혼 부당 파기'와 관련된 손해배상 청구는 가사소송으로, 그렇지 않은 청구는 민사소송으로 해야 하죠.


그러면 앞선 사례에서 그 대~~~형 로펌 변호사님은 왜 민사소송으로 하였을까요? 


제가 하도 궁금해서 의뢰인과 깊은 상담을 하였습니다. 저희 의뢰인의 말로는 원고가 피고1과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상간자 소송이 민사소송으로 가능한 이유는 '제3자'가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방해하거나 침해한 경우를 불법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3자'입니다. 부부의 어느 일방 당사자가 스스로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법률혼이든 사실혼이든 외도를 한 배우자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가정법원에 이혼 또는 사실혼 부당파기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가량 '딴살림'을 차린 경우입니다. 이 때는 배우자를 상대로 동거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1,000만 원 정도 위자료를 인정한 판결이 몇 있습니다.


그런데 동거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은 법률혼에 한합니다. 왜냐하면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서는 동거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혼에서는 이혼 절차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별거를 하면 그냥 사실혼이 끝난 겁니다. 


결과적으로,

사실혼 배우자가 외도를 한 경우, 그 배우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정법원에 사실혼 부당 파기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법원에서 원고 측에 관할위반이 아닌지 검토하라는 명령이 나왔고, 원고는 가정법원으로 이송신청을 하였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도 토지관할을 틀려 엉뚱한 법원으로 신청했더군요.


더 황당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 건 제가 다른 사건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한 법무법인에서 원고를 대리하면서 상속재산분할심판 청구를 민사법원에 제기하였더군요. 가사소송법을 모르더라도 제목이 '심판 청구'니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소송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가사비송사건이니까 가정법원 관할이겠거니 할 겁니다.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속에 관한 사건은 유류분 사건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가정법원 관할입니다. 


진짜 저런 사람들도 어떻게 의뢰인과 상담을 했길래 사건을 수임했을까 싶습니다. 사실혼 배우자에게 청구하는 위자료나 상속재산분할을 민사소송으로 구하는 변호사는 정말 그 직업이 본인에게 맞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셔야 합니다.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가사소송이나 비송은 의뢰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때가 많습니다. 제발 잘 모르는 건 수임하지 말고, 수임했으면 공부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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