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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돌담이지만 돌담이 없는,
이시가키 섬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이시가키(石垣)는 ‘돌담’ 혹은 ‘석축’이라는 뜻이다. 일본 성이 죄다 돌을 쌓아 만들었으니 이 단어는 일본 성을 갔을 때에 자주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시가키에 돌담이 많아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막상 이시가키에 가면 돌담을 보기 어렵다. 인터넷에서는 실제로 가 보지도 않고 상상으로만 소개하는 글이 꽤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이시가키 섬에도 돌담이 많았을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이시가키 섬 바로 옆에 있는 타케토미 섬을 가면 온통 돌담이니까 말이다.


이시가키 섬 주변의 12개의 유인도와 수많은 무인도를 합하여 야에야마 제도(八重山諸島)로 부르는데, 한국식 독음으로 '팔중산'이다. 그래서 산이 여덟 개인가 싶어 그 명칭의 유래가 궁금해 찾아봤는데,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아직 이것이다라고 하는 결정인 학설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쾨펜의 기후구분에 따르면 오키나와 현 전체는 아열대 해양기후에 속하나 이시가키 섬은 열대우림기후에 속한다고 한다. 다만 이시가키 지방 기상대는 이시가키 섬이 아열대 해양기후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그 미세한 구분까지야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일 년 내내 고온다습한 기후다.


이시가키 섬은 오키나와 현에서는 오키나와 섬과 이리오모테 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고 일본 전체로도 21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224.54km2에 달하니 넓다. 인구는 5만 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이 삼림으로 되어 있는 이리오모테 섬과 달리 예전부터 개발이 많이 되었다(이리오모테 섬은 전체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시가키 섬에 가는 관광객은 주변에 타케토미 섬과 이리오모테 섬으로도 가곤 하는데 매우 가깝지만 서로 다른 행정구역이다. 이시가키 섬은 중국과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와 함께 이시가키 시에 속하고, 근처 두 개의 섬은 야에야마 군 타케토미 쵸에 속한다.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 섬에서 가까운지 대만에서 더 가까운지 딱 느낌이 오지는 않았는데 이시가키 섬은 거리를 재 보지 않더라도 확실히 대만에 더 가깝다. 그래서 그런지 이시가키 섬에는 대만 관광객이 많은 편이고, 홍콩 관광객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이시가키 위치.jpg 이시가키 섬은 대만에 가깝다


이시가키 섬은 가수 김건모가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면서 간 곳이기도 한데, 그 예능 프로를 보지 않아서 어떻게 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시가키 섬 하나만 본다면 그저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오키나와 현의 많은 섬 중에서는 특출 난 곳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좀 멀리 나가면 만타가오리를 볼 수 있어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는 미야코 공항에서 정원 50여 명의 비교적 작은 비행기를 타고 이시가키 공항에 도착했다. 이시가키 공항은 국제공항으로 코로나 전에는 한국에서도 직항 편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통계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저 돌아다녀 본 느낌으로는 오키나와 현의 다른 곳과는 달리 서양 관광객이 꽤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열대우림을 체험할 수 있는 곳 중에서 이시가키와 주변 섬들만큼이나 안전하고 쾌적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이시가키 섬의 가장 중심지는 항구 주변이다. 근처에 버스터미널도 위치하고 있고, 숙박시설도 대개 그 근처에 있다. 섬이 꽤 크기 때문에 렌터카가 있으면 편할 것 같긴 한데 워낙 낙도라서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물론 제주도처럼 황당할 정도로 비싸지는 않다. 그래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대중교통으로 못 다닐 정도는 아니고, 5일 간 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티켓을 2,000엔이라는 일본 치고는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에(1일권은 1,000엔), 이 티켓으로 여행하는 관광객이 아주 많다. 우리도 돈 한 푼이 아쉬운 여행자라 버스 5일 권을 끊었다.


D56D8608-79A6-4ADA-824B-CC5A82F01386_1_102_a.jpeg 이시가키 섬 시내버스 내부


우리가 이시가키에 온 첫날부터 비가 내렸는데 도착을 오후에 한 데다가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이것저것 깨작되었더니 어디 멀리 가기엔 애매한 시간이 되어 그냥 근처를 산책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유글레나 몰에 가게 되었다.


유글레나 몰은 일본 최남단의 쇼핑 아케이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이리오모테 섬을 제외하면 이시가키 섬이 가장 남쪽에 있으니 당연할 것이다. 아케이드는 상점가가 밀집한 거리에 지붕을 씌우고 대개는 차량이 통행하지 않게 한 곳을 일컫는 말인데, 일본에는 이런 아케이드가 꽤 많다.


유글레나 몰의 이름이 꽤 재미있는데,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웠던 단세포 진핵생물의 이름이다. 유글레나 몰은 아케이드를 건설했던 1988년에는 아야파니 몰이었다가, 2010년 2월 상가 건설 차입금와 관리비 충당을 위해 이시가키 중앙 상가 진흥 조합에서 주식회사 유글레나에 상가 명명권을 양도하면서 유글레나 몰이 되었다. 주식회사 유글레나는 미세조류를 연구하고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회사로 실제로 유글레나 관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이 상점가에 난데없이 단세포 생물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유글레나 몰은 이 지역에서는 꽤나 번화한 상가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긴 한데 워낙 인구 자체가 많지 않은 곳이라 대단한 규모도 아니고 일본 답게 가게들이 상당히 일찍 문을 닫는다. 그래서 점심은 괜찮지만 저녁에는 문을 연 밥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지하 식당가에서 밥을 때우는 것으로 그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오후에 무료 바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사케와 와인, 오리온 맥주가 준비되어 있는데, 맥주는 1인당 한 잔씩으로 제한이 있다. 주문을 하는 식은 아니고 그냥 테이블에 놓여 있는 술을 각자 알아서 따라 마시는 방식이다.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만 운영하는데, 이 무료 바 때문에 같은 체인의 다른 숙소보다 약간 비쌌다. 우리는 사실 이 무료 바를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즐기지는 못했다. 일단 안주가 없는 데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힘들어 금방 취하는 느낌이었다. 호텔에서 전략을 잘 짠 것 같다.


A1EB0ED3-09E1-4550-B8E0-C6076C256446_1_102_a.jpeg 숙소에서 본 풍경


다음 날 우리는 버스 투어를 갔다. 버스터미널에서 예약할 수 있는데, 아줌마가 아니라 ‘아주마’ 버스에서 운영한다. 영어로 된 안내 책자도 있고 서양사람도 꽤 신청하지만 막상 가이드는 일본어로만 진행했다. 그래도 특별히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어차피 우리가 잘 모르는 이시가키 출신의 유명인과 사투리, 이시가키 규(소고기)에 대한 소개들이라 그다지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우리 가이드는 중년의 여성분이었는데 굉장히 친절한 데다가 재주가 참 많아서 사미센을 연주하면서 노래도 여러 곡 불러주기도 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당인묘(토진바카)였다. 차이나타운을 ‘당인가’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중국 사람을 ‘당인’이라고 많이 불렀다. 당인묘는 1971년 세워진 위령비인데 소위 ‘로버트바운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로버트바운호는 미국의 노예무역선이다. 1852년 중국 샤먼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로 가던 로버트바운호에는 중국인 400명이 타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중국인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서였다. 미국인 선원들은 중국인을 잡아다 옷을 다 벗기고 머리를 삭발시켜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였다. 그러다 노예로 팔리지 않으면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렇게 못된 취급을 하다가 당연한 귀결로 반란이 일어나 미국인 선장과 선원은 죽임을 당했고, 중국인 노예들이 배를 탈취해 운항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월 19일 이사기키 섬의 사키에무라 앞바다에 좌초하고 만다. 이 배가 미국인 선장과 선원에 대항하여 탈취한 노예무역선이었다는 사정을 몰랐던 이시가키의 일본 군인들은 수용소를 만들어 중국인 노예들을 수용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영국은 함선 두 척을 보내어 3월 16일에는 수용소를 포격하였고, 4월 4일에는 미국에서도 함선을 보내어 섬에 상륙해 중국인들을 끌고 갔다. 살아남은 중국인 노예들은 류큐 왕국에서 보호하다가 그 다음 해 9월 29일에서야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당시 송환된 중국인 노예 생존자는 172명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권선진국을 표방하는 미국과 영국이 불과 얼마 전까지는 노예무역을 하면서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러하였던 것이다. 서양인이 아시아인도 인간으로 생각하고 같은 인간의 고통에 공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에 불과한 것이다.


92720DF6-0F83-45DD-9FE5-45605535EC97_1_102_a.jpeg 당인묘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카비라 만이었다. 글라스보트를 선택관광으로 하던가 아니면 카비라만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예외 없이 모두 글라스보트를 선택했다. 가격이 대담스레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라스보트는 매우 일본답지 않게 꽤 지저분하고 그다지 투명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보트의 생김새와는 달리 선장님은 친절했다.


카비라만의 물은 굉장히 맑아서 글라스보트의 유리가 결코 맑지 않았음에도 바다 깊은 곳까지 훤히 볼 수 있었다. 특히 거거(대왕조개)는 장식으로 전시한 껍데기만 보았지 야생에 살아있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 굉장히 크고 신기했다. 수명이 100년이 넘으며 1미터 넘게도 자란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서는 멸종위기등급 VU(취약)에 속하는 거거를 무단으로 채취해 잡아먹는 사태로 익히 알려진 동물이다. 먹을 게 차고 넘치는 세상인데 꼭 그런 것까지 먹어야 했는지,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참 안타깝다.


DC4BDADE-A21E-4710-ABFA-D29FEF6A6926_1_102_a.jpeg 글라스보트에서 본 거거(대왕조개)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뭔가 커다란 것이 쓱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를 비롯한 보트 끝머리에 앉은 사람만 본 것 같은데, 분명 거북이였다. 흥분한 관광객들이 “카메! 카메!”하고 외치자, 선장은 센스 있게도 배를 후진해 주었는데 역시나 거북이였다. 자마미 섬 아카 비치에서 보고 한 4년 만에 보는 거북이었다.


거북아, 너는 인간에게 잡아먹히지 말고 바다에서 잘 살아있으렴.


글라스보트에서 본 바다거북


카비라만은 보트투어가 아니더라도 굉장히 아름답고 물이 맑은 곳이었다. 물이 깊어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대부분 보트로 바다를 즐기는 것 같았다.


5ACF7D5F-9B43-4C0A-B44B-87545703282D_1_102_a.jpeg 카바라만. 날씨가 좀 아쉽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요네하라 야자수 군락지였다. 밀림같이 식물들이 빽빽한 곳인데 야자수가 얼마나 큰 지 끝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길이 잘 되어 있어서 걷기에 힘들지 않았고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나무들이어서 그냥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워낙 습한 데다가 공기도 좋아서 안 막혔던 코도 뚫리는 것 같았다.


77098E4C-3A63-4147-9D10-5040CF3FBC9F_1_102_a.jpeg 요네하라 야자수 군락지에서 본 야자수


이후 전망대를 들러서 산책을 했다가 원래 출발했던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가격이 엄청 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교통편이 불편한 이시가키에서 편하게 버스로 일주를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이드가 지루하지 않도록 전통 노래도 불러주고 사미센 연주도 해 주고 하여 꽤 알찬 여행이었다.


사미센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이드 분

버스투어를 워낙 아침 이른 시간 것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오후에 시간이 많아 남아 버스를 타고 야이마무라에 갔다. 민속촌 같은 곳인데 전통 건물보다는 사실 볼리비아 다람쥐원숭이(검은 머리 다람쥐원숭이)로 더 유명하다. 민속촌에서도 다람쥐 사진을 잔뜩 걸어놓고 홍보한다.


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버스를 타고 갔야했는데 야이마무라에서 내리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고, 실제로 입장해서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원숭이를 보러 왔지만 막상 와서 보니 원숭이 말고도 굉장히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일본의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야이마무라 전통가옥에서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전통무용 공연을 가르쳐도 주고 이것저것 체험 행사가 있었는데, 사실 좀 부담되어서 체험해 보지는 않았다.


집의 양식 자체도 독특해서 흥미로웠지만, 역시나 하이라이트는 원숭이였다. 이 지역의 원숭이는 아니고 수입해 들어온 것이지만 사람을 워낙 잘 따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람을 무시한다고 해야 할까. 수십 마리가 몰려다니면서 사람들 올라타기도 하고 사람을 징검다리 삼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예전에는 먹이를 팔기도 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먹이 파는 곳은 없었고 사육사가 수시로 먹이를 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숭이들은 관람객에게 먹이를 구걸하지 않고 그냥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붙어 다녔다. 나한테도 한 세 마리 붙어 있었는데 한 일본인 젊은 여성이 자기한테는 안 붙는다며 연신 부러워했다.


야이마무라에 있는 볼리비아 다람쥐원숭이

민속촌에서는 맹그로브 숲도 산책할 수 있다. 맹그로브 숲에서는 다니는 길을 모두 나무데크로 해 놓아서 진흙을 밟지 않아도 되었다. 맹그로브 숲은 한국에도 없고 일본에서도 오키나와 현 남부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아주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나무가 물에서 사는 것도 신기한데 그 물이 바닷물이라니. 얘네들은 짠물에서 이렇게 잘 자라는데 왜 우리 집 화분은 꼬박꼬박 좋은 물 먹여도 잘 죽을까 모르겠다.


맹그로브 숲에서 나오니 웬 물소 한 마리가 나왔다. 이 지역 투어 상품 중에서 물소차를 타는 상품이 꽤 있다던데 실제로 타 보면 물소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타지 않았다. 우리가 민속촌 관람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나올 때에도 주차장에 웬 물소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 때 본 애가 걔인 것 같았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일찍 요네하라 비치로 갔다. 요네하라 비치는 이시가키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이다. 이곳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없기 때문에 한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거나 비싼 택시를 타야 한다. 요네하라 비치는 이시가키 섬의 북서쪽 끝에 있고 숙소들이 모여 있는 항구는 남동쪽 끝에 있으니 버스는 섬을 반바퀴나 돌아가느라 한 시간 가깝게 오래 걸렸다.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좀 애매했는데, 비가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이었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유명 관광지 치고는 같이 내리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실 그때부터 웬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 걸어가는 데 도대체가 해변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구글지도에서 알려주는 길은 폐쇄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출입하지 않았던 것 같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가족끼리 온 것으로 보이는 홍콩 관광객들 역시 헤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만 길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얄상굿게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우리만 당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어디에선가 근처에 캠핑장이 있다고 한 기억이 있어 캠핑장으로 검색해 찾아갔다. 그랬더니 정말 오랫동안 인간의 흔적이 닿지 않았던 곳,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은 캠핑장이 나왔다.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만약 사람이 나왔다면 혹시 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다행히 좀 더럽지만 화장실도 있었고 수돗물도 나왔다.


캠핑장에서 아무리 찾아도 길이 없길래 이곳이 정식 길이 맞나 싶은 개구멍을 통해 해변으로 나갔다. 드디어 요네하라 비치에 도착한 것이다.


요네하라 비치는 우리가 지금까지 오키나와 현에서 가 본 해변 중에서 가장 크지 않았나 싶었다. 오키나와에서는 넓은 해변이 드문데 요네하라 비치는 한국의 유명한 해변만큼이나 넓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도는 잔잔했는데 수영을 하기에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것이었다. 두리번거려보니 정말 멀리 한 팀이 보이긴 했는데 큰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 그래서 물놀이를 해야하나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가 나온 구멍으로 중국계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나왔다. 그들도 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도 적당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고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타프를 설치했다.


그런데 막상 자리를 잡으니 날씨가 애매한 것은 둘째치고 물속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온 김에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 해변을 거니는데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지 못하니 좀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좀 일찍 돌아갈까 싶었는데 그것도 어려웠던 것이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가 근처 정류장을 지나가는 시간이 오후 2시쯤이었다. 그러니 꼼짝없이 오후 2시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짝 침울한 기분으로 걸어 다니고 있는데 멀리에 있던 팀에서 몇 명이 드디어 물에 들어갔다. 우리 뒤로 왔던 중국계 여행객들 중 중년 여성분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갔다. 바다에 사람이 한 두 명이라도 있으니 우리도 바다에 들어가기로 했다.


요네하라 비치의 물속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물이 굉장히 맑기는 한데, 그동안 워낙 물고기가 많은 해변을 많이 갔다 와서 그런지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물고기가 보이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그런지 그날 유독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대신 해삼이 많고 큰 물고기가 좀 있었다. 딱히 찍고 싶었던 것도 없었기에 사진도 찍지 않았다. 그렇게 유명세에 잔뜩 기대했었지만 큰 실망만을 남기고 물놀이를 마쳤다. 인터넷에 좋은 후기들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가 날씨 운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요네하라비치.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캠핑장에서 대충 씻고 점심을 먹으러 나오니 음식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구글지도에 나온 식당을 가보니 죄다 문을 닫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 손님이 없을 것이라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가뜩이나 물에 들어갔다 나와서 배는 고픈데 문을 연 식당은커녕 구멍가게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간신히 돈카츠 집을 하나 찾아서 갔더니 웨이팅이 있었다. 근처에 문을 연 가게가 여기밖에 없으니 다들 이쪽으로 몰려온 것 같았다. 몰려왔다고 해도 앞에 한 두어 팀 정도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가게 직원은 굉장히 친절했는데 무척 느렸다. 웨이팅이 생긴 것은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빈자리를 미처 정리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너무 친절해서 짜증보다는 참, 고생하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을 보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다양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믹스카츠를 시켰다. 그런데 한참 후에 직원이 와서는 "스미마셍. 믹스카츠 재료가 다 떨어졌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럼 히레카츠하고 등심카츠로 주세요."라고 했다. 그 직원은 잠시 후 다시 와서는 "믹스카츠가 되네요. 믹스카츠로 해 드릴게요."라고 했다. 좀 깝깝하지만 굉장히 친절했다.


사실 이 가게만 느린 것이 아니라 일본 식당은 대체적으로 느리다. 아마도 프렙을 하지 않고 주문하면 그제야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맛은 있는데 성질 급한 사람은 좀 갑갑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직원이며 주인장들이 워낙 친절해서 짜증보다는 저렇게 해서 장사가 될까 싶은 마음이 더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느린 것은 시골이나 소도시 뿐이고 일본도 도시로 가면 한국처럼 음식이 빨리 나오고 반면 친절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점심을 먹고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도 한참 시간이 남아서 뭘 할까 하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본 희한한 조형물이 있는 공원에 가기로 했다. 도착할 때 봤더니 ‘무료’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요네코야키 공방 시사 농원>이었다. 이름을 보니 공방도 있고 농장도 있다는 말 같은데 과연 조형물을 만드는 공방이 있고 상당히 대규모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냥 사설 무료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굉장히 넓고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왜 여기가 무료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사'는 상상의 수호동물인데 한국의 해태와 비슷하게 생겼다. 오키나와 현의 상징과도 같아서 각종 소품이나 기념품으로 많이 볼 수 있고 상품 로고에도 자주 활용된다. 시사는 '사자'의 오키나와 발음이다. 시사가 처름 만들어 진 것은 1689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화재가 빈발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주민들은 유명한 풍수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 풍수사는 불이 나는 이유는 야에세다케 산의 기운 때문이라며 이를 막으려면 사자 상을 만들어 그 산을 향해 놓아 기운을 눌러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주민들이 그 말을 듣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사였다. 그후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요네코야키 공방 시사 공원의 시사는 크기도 굉장히 크고 생긴 것도 익살스럽다. 색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아 아주 재미있다. 시사뿐만 아니라 요괴를 나타낸듯한 조형물도 많았다. 일본의 요괴는 종류도 많고 애니메이션도 많아서 나도 좋아하는 소재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아저씨 한 분만 보였다. 반 취미 식으로 꾸며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취미라고 하기에는 워낙 대규모인 데다가 연못과 정원도 잘 꾸며놓았다.


요네코야키 공방 시사 농원. 아주 크고 재미있는 시사 조형물이 있다. 심지어 무료.


다음날 우리는 이리오모테 섬으로 갔다. 전날 한국에서 온 지인 둘이 합류했는데, 처음부터 같이 가기로 한 것은 아니고 다른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오키나와 현에 있을 때 마침 그들도 같은 날 똑같이 오키나와로 휴가를 갈 계획이 있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이리오모테 섬은 동식물의 다양성이 인정되어 202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리오모테 섬 외에도 아마미오시마, 도쿠노시마 오키나와 섬 북부와 함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리오모테 섬은 그 면적이 289.62km2으로 상당히 넓어 오키나와 현에서는 두 번째, 일본 전체로도 12번째로 큰 섬이다. 그에 비하여 인구는 2,500명 정도로 아주 적다. 섬 면적의 90%는 아열대자연림이고 80%는 국유림이다. 산 안쪽에서부터 우라우치 강이 흐르는데 하류에는 광대한 맹그로브 숲이 형성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이리오토테 섬 안에는 많은 곳에 맹그로브 숲이 발달해 있는데, 일본산 맹그로브 7종이 모두 서식하는 곳은 이곳 이리오모테 섬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리오모테 섬을 여행하다 보면 삵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유명한 이리오모테 야마네코(삵)다. 이리오모테 삵은 1965년에서야 발견되었는데 20세기 이후에 중형 이상의 포유류가 발견되는 것이 매우 드물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개체 수가 100여 마리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며 멸종위기종으로 보호가 필요한 동물이다.


이곳에 인구가 적은 이유는 풍토병인 말라리아 때문이라고 한다. 1678년에 조선소가 설치되어 한때 인구가 800명을 헤아릴 만큼 당시로서는 번성하였으나 지진과 말라리아로 인구가 격감하였다. 류큐 왕국에서도 강제로 이민을 시키는 등 정착촌을 만드려고 시도하였으나 매번 말라리아의 유행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후 19세기말에 탄광을 개발하지만 역시 쇠퇴하고 2차 대전 말기에는 하테루마 섬에서 이곳 이리오모테 섬으로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으나 역시 말라리아로 많은 주민이 사망하였다. 이처럼 말라리아는 이 지역 쇠퇴의 원인이었다가 1961년에 이르러서야 근절되었다고 한다.


이리오모테 섬은 미슐랭 그린가이드 재팬에서 별 2개를 받았다고 하는데,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워낙 서양인의 입장에서 작성되기 때문에 그다지 참고할만한 사항은 아닐 것이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리오모테 섬에서 숙박하지 않고 이시가키 섬에서 숙박하면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때가 많다. 교통이 몹시 불편하기 때문에 대개 투어상품을 이용하는데 가격도 엇비슷하고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꽤 규모 있는 현지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투어 상품은 대개 유람선으로 맹그로브 숲을 구경하고 인근 유후 섬으로 가서 물소차를 타는 식으로 구성된다. 젊은 사람들은 그러한 단체관광보다는 좀 더 프라이빗한 관광을 좋아하는데, 우리도 에어비앤비를 통해 개인 가이드 한 명이 운영하는 투어를 신청하였고 덕분에 우리 일행만 프라이빗한 투어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런 투어 상품은 여행사 상품과 가격은 비슷하지만 이리오모테 섬까지 가는 왕복 배편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실제 비용은 좀더 들어가는 편이다. 다만 단체 관광처럼 시간의 압박을 받지 않아 조용히 힐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리오모테 섬에 가서 가이드 다카시 상을 만났다. 다카시 상은 도쿄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 일을 하다가 이리오모테로 와서 정착한 지 8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니 30대 중반쯤에 일을 그만두었던 것 같다. 우리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속세(?)의 끈은 놓지 않고 있었는데 그동안 배우고 이뤄놓았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낙도에 정착하였다니 대단한 실행력이다.


다카시 상을 따라 처음으로 간 곳은 강의 하구였다. 이곳에서부터 두 명씩 짝을 지어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숲을 탐험한다. 물이 실제로는 많이 깊지 않은데 탁도가 워낙 높아서 실제보다 꽤 깊어 보였다. 맹그로브 숲을 카약으로 건너는 것은 정말 굉장히 신비한 경험이었다. 너무도 조용해 새소리와 바람에 나뭇잎이 날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면 맹그로브가 하늘을 전부 가릴 듯이 우거져 있고 물어 젖어 축축한 풀냄새가 싱그러워 안 막힌 코도 뻥 뚫리고 없던 폐병도 나을 것 같았다. TV나 영화에서나 보았던 정글탐험 느낌이다.


맹그로브 숲 카약킹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연. 맹그로브 숲


우리는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숲을 원 없이 즐겼는데, 좀 심심해질만 하자 다카시 상은 차를 몰아 정자 비슷한 곳에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간단히 소바를 만들어 점심을 해결했다. 그냥 동네에서 흔히 있을 법한 쉴 곳이었는데 그곳의 경치도 기가 막혔다. 세상에서 제일 경치 좋은 밥집이었을 것이다.


그냥 길가 정자에서 밥 먹다가 찍은 풍경


그다음으로 간 곳은 산이었다. 논길을 지나 아주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금세 개울이 나오는데 여기가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길이 험하다. 풀이 다리와 얼굴을 때리고 이끼가 껴 미끄러운 바위를 지나야 하는데, 이 축축한 산은 마치 <모노노케 히메>에나 나올 법한 대단한 원시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이제 좀 쉬었으면 하는 곳에 폭포가 나왔다. 신기한 것은 보통 폭포 밑은 꽤 깊은 물이라 들어가기 어려운데 이곳은 깊은 물이 없었다. 기껏해야 발목이나 찰까. 더위를 못 견뎌하는 나는 먼저 폭포수로 뛰어들었다. 온몸으로 맞는 폭포물은 정말 시원했다. 없던 텐션도 끌어 올랐다. 우리는 그렇게 폭포에서 자발적으로 물벼락을 맞으며 잔뜩 사진을 찍으며 놀아 돌아왔다.


폭포 아래에서 찍은 폭포수


다카시 상의 투어는 꽤 알차고 재미있었다. 진짜 체력이 바닥날 때쯤 끝나 이시가키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꿀잠을 잤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결국 아쉬워 근처 마에사토 비치로 갔다. 전날 요네하라 비치에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도 아쉬웠고 지인들과 함께 이시가키의 바다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마에사토 비치는 ANA 인터콘티네탈 호텔에서 조성하고 관리하는 해변이다. 대기업에서 관리하는 곳답게 매우 깨끗하게 정비가 잘 되어있었는데, 깔끔한 샤워시설이나 매점도 있었다. 게다가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마에사토 비치는 대규모 호텔이 관리하고 있어서인지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과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그렇지만 오키나와 현의 해변이 늘 그렇듯 사람이 몇 명인지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에사토 비치의 바다는 우와,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수질이 그럭저럭 괜찮았고 무엇보다 뭔가 열심히 관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기자기한 물고기는 많지 않았고 해삼이 많았다. 특이한 것은 굉장히 큰 하얀 물고기가 꽤 보였는데 길이가 50cm도 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워낙 좋은 해변을 많이 가봐서 눈높이가 워낙 높아져있어 좀 아쉽긴 했다.


잘 정비된 마에사토 비치


다음날 우리는 지인들과 헤어져 타케토미 섬으로 갔다. 타케토미 섬은 이시가키 섬에서 워낙 가까워 배편도 많고 항구에서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타케토미 섬의 명칭은 최초로 섬에 정착해 마을을 만들었다는 타킨든(タキンドゥン)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영어로 쓰면 Taketomi라서 ‘take me to Taketomi’라는 홍보 문구가 재미있다. 아마 처음에는 타케토미에 맞춰 take to me라고 생각했다가 문법에 안 맞아 중간을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제주도처럼 돌담이 많다. 정작 ‘돌담’이라는 이름의 이시가키 섬에는 돌담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동네 담이 다 돌담이다. 제주도와 다른 것은 지붕이 붉은 기와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다만 편의시설이 너무 없는 건 큰 단점이다. 편의점이나 공중 화장실은 물론 일본에서는 흔해 빠진 음료 자판기도 드물다.


가이드 북을 보니 자전거나 도보 혹은 물소차로 여행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도보로 다녔으나 섬이 생각보다 꽤 넓어 굉장히 힘들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자전거가 확실히 편할 것 같다. 물가는 오키나와의 다른 곳보다는 꽤 비싼 편이다.


타케토미 섬. 제주도처럼 돌담이 많다.


타케토미 섬의 주요 포인트는 니시산바시(서잔교)와 콘도이 비치다. 콘도이 비치의 물이 맑기로 워낙 유명해 우리는 또 한국에서부터 싸 온 물놀이 장비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다.


니시산바시는 다리라기보다는 선착장이다. 폭이 좁고 바다로 아주 길게 길이 나 있기 때문에 한눈에 인스타 사진각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물이 얕아서 실제로 배가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과 물고기가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여기를 보고 나면 콘도이 비치가 더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맑은 물에 들어갈 수 있다니. 니시산바시에서는 콘도이 비치가 보이는데 가까울 것 같았지만 걸어가니 생각보다 꽤 멀었다.


대충 찍어도 멋진 니시산바시


콘도이 비치는 이곳을 가기 위해서 타케토미 섬에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넓고 맑은 해변이다. 물이 아주 잔잔하고 한참을 들어가도 물이 허리춤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얕기도 하다. 해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섬이 되었다가 잠겼다가 하는 모래톱이 있는데, 돈을 내면 해변에서 그곳까지 돛단배를 타고 갈 수 있다. 물론 그냥 걸어갈 수도 있다. 스노클링 하는 사람도 많고 그냥 맨눈으로 물고기를 구경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 적은 타케토미에서도 사람을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이시가키에서 바다가 좀 아쉬웠는데 여기서 마지막 바다 한을 풀고 가는 느낌이었다.


콘도이 비치에는 사람을 굉장히 잘 따르는 고양이들이 있다. 굉장히 오래전에 산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었는데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들 피부병에 걸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람을 워낙 잘 따르는 아이들이라 더 안타까웠다.


콘도이비치 고양이

타케토미 섬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키나와 현을 떠나 비행기를 한참 타고 규슈의 관문 후쿠오카로 갔다.



강쉡의 먹방일기


미야코지마에서 신나게 즐기고 이시가키 섬으로 넘어왔다. 흔들리는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내려 뙤약볕에서 20kg나 되는 짐을 달고 다니다 보니 그새 오변은 온몸이 땀에 절어 기진맥진 해져 있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간단하게 식사할 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간 곳이 유글레나 몰이다. 유글레나 몰은 보통 기념품을 사러 마지막 날쯤에 많이 들르는 곳인데, 주변에 이러저러한 식당이 많이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괜찮았다.


유글레나 몰 안에 '시장'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지하에는 가격도 저렴하고 음식도 빨리 나오는 소바 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 지역 명물인 야에야마 소바를 시켰다. 역시 짭짤한 국물이 흘리니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해 주는 느낌이다.


62C51C83-7CE5-4C9C-B481-797D2DAA4DA3_1_102_a.jpeg 야에야마 소바 (유글레나 몰 지하상가)

테이블마다 코레구스(고추식초)가 놓여 있는데, 살짝 뿌려 먹으면 짠맛도 조금 부드러워지고 개운하게 매운맛이 국물 맛을 잡아 준다.


디저트로 옆집에 오키나와에서만 파는 도넛인 사타안다기를 한 개씩 사 먹었다. 갓 튀긴걸 바로 주는데 우리나라와 다르게 많이 뻑뻑하고 밀도가 높다.


IMG_1178.jpeg 사타안다기 (유글레나 몰 지하상가)

다음날은 버스투어를 했다. 오변 혼자 운전하는 게 고생스러워 보기도 하고 렌터카 비용도 생각보가 비싸 좀 더 알뜰하게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시가키 섬은 생각보다 크고 볼곳이 많은데 비록 머무는 시간은 짧지만 투어 패키지에 점심까지 나오는 것이라 뚜벅이인 우리들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오전에만 세 곳을 관광하고 나서 먹는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보드라운 햄버거와 정갈한 가정식 반찬에 소바까지 나온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우연히 투어 식사 자리에서 합석한 네덜란드 노부부와의 대화는 여행다움을 더해주었다.


IMG_1236.jpeg 함바그 정식 (업체명 : 포자오바상의 식탁)


이시가키에서 예약한 숙소는 저녁 무렵에 알코올바가 제공되는 곳이었다. 투어를 즐기고 맥주를 한잔씩 하니 흥이 나고 목구멍이 열려 로컬 이자카야까지 찾게 만들었다. 사실 경비를 아끼고자 죽치고 앉아 있을 계획이었지만 사람들도 꽤 많고 안주도 없이 홀짝거리니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전략적인 세팅이다)


IMG_1397.jpeg 호텔 알코올바

이시가키에도 오키나와 국제거리와 비슷하게 포차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저녁에 일본인이 많이 찾는 시끌벅적한 곳이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안주와 함께 분위기를 즐기며 맥주를 한 잔 했다. 친절한 직원은 우리를 편하게 해 주었다. 메뉴판을 보고 안주를 조금씩 시켜 먹으니 로컬 포장마차의 기분을 즐길 수 있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다음날 지인들을 만났을 때에도 이곳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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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참푸르, 참치 회, 우민찌커틀렛 (업체명 : 센베로후도センベロ風土)


요네하라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하러 간 날,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도 안 오는데 물에서 놀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섬 날씨의 변화는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숲을 지나자 넓은 백사장이 나왔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구름 흐르는 게 보일 정도로 바람이 부는 데다가 파도도 미친 듯이 철썩였다. 그래도 여행 책자에 유명하다고 나온 해변인데 남들은 다들 똑똑한지 날씨를 보고 여기에 안 왔나 보다.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구나 싶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탄 데다가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시간 여유가 많아 해변에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을 찾아갔다. 이시가키 섬에서는 생각보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식당이 많았는데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은 점심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재료가 떨어졌다고 하거나 문을 닫는다.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해변 근처에는 식당이 세 곳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중에서 두 곳은 문을 닫아서 선택할 여지도 없이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갔다.


수십 분을 웨이팅 끝에 겨우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호스트 여성분은 매우 친절했으나 자리가 다섯 테이블밖에 없고 카츠는 주문을 받은 뒤에야 튀기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웨이팅이 있을 수밖에.


모둠카츠를 시켰는데 민찌, 히레, 꼬치의 3종 구성이었고 양은 시골 밥상처럼 푸짐했다. 꼬치는 특이하게도 양파와 등심을 꽂아 튀겨낸 것이었다. 푸짐한 양, 기분 좋은 친절함 그리고 한참 배고플 때 문을 연 유일한 식당이라는 세 박자가 높은 평점을 줄 수밖에 없는 식당이었다.


모둠카츠 (업체명 : 돈카츠 리키)
식당 입구


저녁에 한국에서 온 지인들과 만나 이리저리 밥집을 찾다가 결국엔 어제 간 이자카야를 다시 갔다. 어제 먹지 않은 새로운 메뉴를 찾다가 이자카야에서는 모츠나베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시켜봤다.


모츠나베는 네 명이 먹기 좋게 푸짐한 전골냄비에 담백한 두부와 고소한 대창, 그리고 식감 좋은 다양한 채소 고명이 어우러져 좋았는데, 특히 얇게 썬 우엉이 들어가 있어 씹는 맛이 더 좋았다. 면사리까지 추가하여 푸짐하게 즐길 수 있었다.


모츠나베 (업체명 : 센베로후도)


이자카야를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새우가 명물이라는 간판을 꽤나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간 집도 새우가 유명하다고 해서 시켜봤는데 가격이 비싸 맛만 보기로 하고 세 마리만 시켰다. 정확히는 보리새우인데 당연히 신선하고 맛은 있었지만 우리나라 흰 다리새우와 큰 차이를 느낄만할 정도의 메리트는 느끼지는 못했다.


이 집의 별미는 새우가 아닌 오마카세 꼬치 세트였는데 숯불에 직화로 구워 불맛 나는 다양한 종류의 꼬치가 일품이었다. 가지, 대파, 베이컨 토마토, 베이컨 메추리알, 고기시소잎말이였는데, 특히 고기에 시소잎을 넣고 만 꼬치가 시소잎의 향긋한 향과 함께 느끼함도 잡아 주어 좋았다.


이번에 일본에 와서 시소잎 향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시소잎은 우메보시, 과자 등 많은 곳에 쓰며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깻잎처럼 소비하는 매력적인 향신채다. 상쾌하고 강렬한 향이 고기와 특히 잘 어울린다.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나라마다 자주 사용하는 향신채가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입에 적응을 하면 대개 요리의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보리새우 (업체명 : 구루리쿠루리 이시가키)


오마카세 꼬치 세트 (업체명 : 구루리쿠루리 이시가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예약하며 기대했던 이리오모테 섬 투어를 하러 가는 날이었다. 어릴 때는 자연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나이를 좀 먹고 나니 그 뜻을 알 것도 같다. 투어는 기대이상으로 좋았다. 새소리가 나는 조용한 맹그로브 숲은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평화로움이었고, 강을 타고 펼쳐지는 절경에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평화로운 오전을 보내고 바다가 보이는 정자로 이동했다. 가이드 분은 요리를 하면서 이 섬에 살게 되기까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삶에 대한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주먹밥은 치마키(대나무 잎에 싸서 찐 떡) 스타일로 참치와 흑미를 써서 소박하고 담백했다. 가이드 분이 즉석에서 소바를 만들어 주셨는데, 미리 준비한 육수에 시금치와 버섯을 살짝 데치고 돼지고기 조림과 반숙을 곁들였다. 채수 베이스 육수의 깔끔함과 간이 잘 밴 고기와 반숙을 곁들이니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 경치를 보며 좋은 대화와 함께 음식을 다 먹고 나서 합장을 하면서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니, 가이드 분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녁에는 유글레나몰 근처에 테라스가 있는 이자카야에 갔다. 저녁 날씨는 선선했고 골목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어 관광지 분위기였다.


스팸을 이용한 이시가키 스타일의 오믈렛과 고야 참푸르, 이시가키규로 만든 소고기 불초밥, 모둠 숙성회를 시켰다.


바다포도와 전복, 참치, 도미, 새우, 오징어와 육회까지 멋들어진 대왕조개껍질 위에 푸짐하게 나온 모둠숙성회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해 준다.


오키나와 대표 식재료라 할 수 있는 스팸은 기념품 티셔츠나 마그넷 등 기념품으로도 흔히 볼 수 있다. 양도 넉넉하고 스팸의 맛이 짧짤해 쌉싸름한 고야와 담백한 오믈렛에 잘 어울린다.


소고기 불초밥은 원래 점심에만 할인으로 적혀 있었는데 조금 일찍 가서 그런지 할인해주신다고 해서 주문했다. 부들부들한 고기에 입힌 불맛이 입안에 감칠맛을 더한다.


고야참푸르, 이사가키 규 초밥, 사시미, 스팸오믈렛 (업체명 : 파이카지 이자카야)


술자리에서 우리는 오늘 체험한 투어에 대해 이야기하며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안주를 더했다. 평화롭고 조용한 섬 분위기에 반해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실제 이곳에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는 가이드 분. 이 섬에는 반나절의 투어만으로도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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