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우리는 이시가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갔다. 푸른 바다와 아열대의 풀과 나무가 우거진 섬에 있다가 갑자기 도시에 떨어지자 마음마저 여유가 없어진 느낌이다.
사실 아침부터 일진이 좀 사나웠다. 강쉡의 허벅지며 팔뚝에 오돌토돌 붉은 반점이 올라왔고 가렵다며 긁어대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비염이 심해져 약이 없이는 숨쉬기가 너무 불편했다. 대체 공기 좋고 습도 높은 나라에서 온종일 놀기만 했는데 왜 이럴까 싶었다. 알레르기 증상 같긴 했다.
이시가키에서부터 약국에 가서 "가유이데스(가려워요)."라며 피부를 보여 주니 약사가 "진짜다. 엄청 심하다"하면서 추천해 준 연고가 있었다. 바르면 화-한 느낌이라 안 가렵긴 한데 용량이 적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아껴바르고 있었는데 좀처럼 낫지는 않고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그나마 나는 좀 버틸만했는데 강쉡의 피부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우리가 든 보험은 해외에서 병원에 예약을 해 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사실 여행 도중 병원에 가는 것이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외국에서 병원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스러움도 있었지만, 다음 날 예정한 일정을 포기하면서라도 병원에 한 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험사에서는 연락을 한 날이 금요일 저녁이어서 다음 날 병원을 예약해 주기는 어렵고 응급실에 가서 서류를 해 오면 한국에서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응급실에 갈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가 가정의학과 의사인 지인에게 연락해 이거 알레르기 맞는지 물어봐 달라며 사진을 보냈다. 지인은 알레르기 맞다고 엄청 센 알레르기 약을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약국에 가서 성분표를 보고 추천받은 알레르기 약을 샀다. 이전에 썼던 것보다 약간 저렴한 가유미(가려움) 연고도 샀다.
확실히 비싼 게 좋았던 것이 저렴한 연고는 화-한 느낌이 없어서 바르고서 가려움을 좀 참아야 했다. 그나마 알레르기 약을 먹으니 점차 좋아지긴 했다. 그래도 거의 보름은 알레르기로 고생을 했다. 딱히 무엇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리오모테 섬에 다녀온 뒤에 그랬으니 아마 그 정글 같은 삼림이 우리 몸에는 생소했나 보다.
후쿠오카는 꽤 자주 왔던 도시다. 이시가키에서는 비행기로 두세 시간이 걸리지만 한국에서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데다가 항공권도 꽤 싸다. 비자도 필요 없으니 사실 국내 여행을 하듯이 갔다 올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데 후쿠오카는 노잼도시다. 가이드 북이나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딱히 가고 싶은 데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커널시티 하카타>처럼 좋은 쇼핑몰은 많은데 우리 같은 장기여행자는 물건을 사면 다 짐이 된다. <돈키호테> 같은 만물상 잡화점도 아주 큰 게 있으니 쇼핑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도시일 수 있겠다.
후쿠오카에서는 하카타라는 지명을 자주 듣게 된다. 가장 중심이 되는 역의 이름도 하카타이고, 한국에서 배를 타면 도착하는 항구 이름도 하카타 항이다. 이 지역에 유명한 돈코츠라멘도 하카타 라멘이라고 부른다. 사실 하카타와 후쿠오카와 별개의 도시였는데 19세기말에 합병을 하면서 후쿠오카 시로 명명되었다.
후쿠오카 시는 인구가 16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고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드물게 인구가 증가 추세에 있는 도시다. 오키나와에 가면 확실히 외국에 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 반면 후쿠오카에 오면 그냥 규칙이 좀 다를 뿐 한국의 도시와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다. 간판에 쓰인 글자가 달라서 그렇지 대충 사진을 찍어서 보면 그냥 종로의 어딘가라고 해도 믿길 정도다.
후쿠오카는 규슈 교통의 중심지라 어디든지 편하게 갈 수 있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온천 마을 유후인에 갈 때도 후쿠오카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규슈를 여행하다가 혼슈로 갈 때에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대개 후쿠오카 하카타 역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후쿠오카에 온 첫날은 숙소에서 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다자이후로 갔다. 다자이후는 일본 고대의 행정관청의 명칭이자 후쿠오카 현에 속한 도시의 이름이다. 그런데 여행객들이 다자이후에 가는 이유는 다자이후 유적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대부분은 <다자이후 텐만구>라는 신사를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텐만구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다. 일본 전국에 굉장히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중 교토의 기타노텐만구,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의 다자이후텐만구, 야마구치현 호후의 호후텐만구를 3대 텐만구라고 부른다.
스기와라 미치자네는 헤이안 시대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명문가문 출신이 아님에도 드물게 재상의 지위까지 오른 사람이다. 많은 관광책자에서는 미천한 신분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러한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스가와라 가문은 학자 가문으로 미천한 신분이라고 할 수 없다. 메이저 급 귀족이 아닌 신분으로 우대신이라는 재상의 지위에 오른 그는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실시하는데 당연하게도 많은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다가 901년 좌대신 후지와라 도키히라의 음해로 현재 후쿠오카 현에 해당하는 치쿠젠코구의 다자이후 원외수로 좌천되었다. 당시 다이고 덴도의 아들인 도키오 친왕을 옹립하려는 역모가 있었다는 참소가 있었는데 미치자네의 삼녀가 도키오 친왕의 비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쇼타이의 변’이라고 한다. 미치자네는 그 후 얼마되지 않은 903년에 사망한다.
미치자네가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후 미치자네의 유해를 ‘안락사’라는 절에서부터 장사를 보내려 하였다. 그런데 유해를 실은 우마차가 절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미차자네가 그곳 절에서 머물고 싶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안락사에 묘를 만들게 된다. 이후 일본에는 역병과 자연재해가 연달아 일어나고 909년에는 미치자네를 좌천시킨 좌대신 후지와라 도키히라가 3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미치자네의 재앙’이라고 불렀다.
930년 7월에는 이윽고 덴노가 있는 교토교소의 정전인 청량전에 벼락이 떨어져 많은 대소신료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생겼다. 미치자네의 재앙이 덴노 코앞까지 미친 것이다. 재앙을 두려워한 다이고 덴노는 같은 해 9월 유타아키라 친왕에게 양위하고 물러났지만 바로 다음 해에 사망하게 된다. 후지와라 가문 역시 줄줄이 요절하여 결국 몰락하게 되는데 하필 후지와라 가문이 덴노의 외척이어서 황태자와 황태손 역시 모두 요절하게 된다.
미치자네는 이렇게 원한을 품고 죽은 원령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며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게 되고, 현재는 많은 애니메이션에도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학문의 신이라고 하니 집에 수험생을 둔 관광객들은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라고 빈다고 한다지만, 사실은 재앙신이었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다자이후 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자이후 역은 하카타 역에서 기차를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찾아오는 한국 사람이 워낙 많아 한글 표지판도 많은 데다가 그냥 사람들이 몰려가는 대로 따라가면 쉽게 찾아가 둘러볼 수 있다.
다자이후텐만구로 가는 길은 여느 유명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양쪽에 전통가옥 스타일의 상가들이 늘어서 있다. 일본에서도 꽤 규모가 큰 기념품 상점가다. 제대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곳도 있으나 대개는 가격이 비싸고 이 지역 명물이라고 주장하는 간식들과 일본의 관광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브리 소품들, 잘 모르는 캐릭터 상품들을 판다.
다자이후텐만구는 규모가 굉장히 크고 아주 잘 꾸며 놓았다. 외국인 입장에서 신사 자체가 꽤 흥미로운 볼거리인 데다가 정원까지도 멋지게 꾸며 놓아 볼거리가 많다. 미치자네가 좋아했다는 매화나무는 신사에 굉장히 많이 심어져 있는데 그 수량도 많거니와 크기도 압도적이다.
신사는 대개 입장료가 없는데 다자이후 텐만구 역시 입장료가 없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후쿠오카 시에서도 가깝고 교통도 좋고 볼거리도 많은 데다가 심지어 무료이기까지도 한 이곳을 놓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는 평일에도 단체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사생대회를 하고 있는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앉아 서툰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상상으로 그려도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어쨌든 밖에 나가서 그린다는 그런 기분이 있지 않은가.
여기는 개별 관광객에 단체 관광객, 수학여행 온 학생들, 그림 그리는 학생들이 서로 어울렁더울렁 모여 신사가 아니라 마치 명동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한국 관광객이 워낙 많아 그냥 한국인데 외국인이 좀 있구나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른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 어느 곳엘 가도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신사와 잘 꾸며진 정원은 보기 어렵다. 어차피 공짜기도 하니까 한 번 쯤은 가볼만은 하다. 다만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탓에 조용하고 깨끗한 일본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은 아주 실망할 수는 있다.
후쿠오카는 여러 모로 편하기는 하다. 도시 규모에 비해서 물가가 비싸지도 않고 교통도 좋은데다가 쇼핑을 하기도 아주 편하다. 게다가 맛있는 것이 워낙 많다. 다만 나처럼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고 쇼핑에 별 관심이 없으며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귀찮아 하는 사람은 "굳이 여길 왜 가?"라고 할 것 같기는 하다.
비행기를 타고 이시가키에서 후쿠오카를 넘어오니 늦은 오후였다. 체크인을 하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라멘집을 갔다.
올초 후쿠오카를 방문해 <이치란 라멘> 본점에 간 적이 있다. 원래 한국에서도 돈코츠 라멘을 좋아하던 터라 본고장 라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이치란 라멘>은 그러한 만족감을 충분히 채워줄 만한 훌륭한 맛이었다. 마케팅 적인 요소가 곳곳에 있었는데, 웨이팅을 하면서 주문용지를 작성해서 대기 시간을 줄이고 주문용지에 맛, 기름진 정도, 마늘, 파, 양념, 면 익힘 등 디테일한 설정을 요청할 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면 독서실 같은 칸막이에서 오롯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게 돼있는데, 이런 프라이빗한 세팅 때문에 오픈 초기에 혼자 오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돈코츠 라멘의 진한 국물은 수프처럼 매끄럽고 진하다. 깔끔하게 매운 양념이 느끼함을 잡아주고, 찰기 있는 면과 야들야들한 차슈는 부드럽게 넘어간다. 일본의 음식은 짜다고 느끼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치란 라멘은 감칠맛과 짠맛의 경계를 잘 맞춘 맛이었다.
한국 여행자들이 <이치란 라멘>을 많이 찾으니, 이곳 라멘이 모든 돈코츠 라멘을 평가하게 되는 기준점이 되는 것 같다. 이치란 라멘은 일본 내에서도 맛과 가격 역시 프리미엄급이라 이후로 맛본 돈코츠 라멘에서 이 이상으로 만족하기는 꽤 어려웠다.
이번에 후쿠오카에 와서 처음으로 간 라멘 집은 전형적인 큐슈풍의 라멘집으로 소금 맛과 간장 맛 선택할 수 있고 짠맛을 조절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는 곱게 다진 마늘과 초생강, 식초, 흑후추가 놓여 있었다. 토핑을 추가해서 맛있게 먹는 방법도 친절하게 적혀있다.
첫술을 떠 보았다. 국물이 매우 기름지고 짭짤했다. 식당에서 추천하는 토핑 가이드를 따라 해 본 뒤 커스텀을 했다.
가이드 : 다진 마늘 1T, 생강, 식초 조금, 흑후추 마무리
커스텀 : 다진 마늘 2T, 식초, 생강 넉넉히, 흑후추는 먹을 때마다
다진 마늘의 개운함과 식초로 짠맛을 중화시켜 주니 국물의 감칠맛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돈코츠 라멘에는 넉넉한 마늘이 필수다. 생강채가 테이블에 있어 곁들여 먹었는데 기름진 면과 궁합이 아주 좋았다.
이 가게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고명으로 각자의 입맛에 맞게 맛을 조절할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술이 당기지 않는 날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하고 싶다면 이 라멘집을 적극 추천한다. 양이 넉넉한 데다가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눈치가 보이지 않고, 이 정도라면 맛이 없기도 힘들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자이후 텐만구에 갔다. 신사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상점거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아직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집이 있었다. 도대체 뭘 파는지 궁금해서 무작정 줄을 섰다. 오픈런인 셈이다.
그곳은 '우메가에모찌'라고 하는 매화떡을 하는 곳이었다. 길가에 거의 두 곳 중 한 곳은 매화떡을 하는 것 같았는데 이곳에서는 바로 만들어 바로 팔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고 줄도 길었다.
매화떡은 달지 않은 팥 소가 많이 들어 있어 은은한 단맛이 난다. 떡의 겉표면은 바삭하게 구워 누룽지처럼 바삭바삭하다. 겉면의 바삭함, 쫄깃한 떡, 팥 소의 조화가 훌륭하다. 선물로 여러 개 사 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뜨거울 때 막 나온 떡의 따끈함과 바삭함이 포인트라서 줄 서서 바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숙소 근처에 시장거리가 있어 가 보았다. 다양한 회와 간식거리를 파는 곳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형형색색의 어묵을 파는 집이 있어 점심을 이것으로 때우기로 했다.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하시는 아주머니의 친절함과 스피디한 영업이 멋진 곳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 바구니와 집게를 주는데 기호에 맞는 어묵을 골라 계산하면 즉석에서 한번 더 튀긴 후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썰어 포장해 주는 호텔급 서비스를 보여준다.
우리는 한펜 어묵, 우엉 어묵, 가라아게 어묵, 크로켓 어묵, 새우, 타코야키 어묵을 골랐다. 따끈따끈하게 튀긴 어묵은 정말 맛있었는데, 그중 최고는 가라아게 어묵이었다. 겉표면도 가라아게처럼 바삭했는데 어묵 반죽에 다진 닭연골이 들어가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후쿠오카 대표하는 전골요리인 모츠나베를 먹으러 갔다. 구글에서 꽤나 평점이 높은 곳이었는데 10분 정도 웨이팅 후 내부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발이 들어가는 좌식 테이블에 앉게 되는데 오밀조밀한 실내가 정감 있는 곳이다. 의외로 관광객 보다 현지인이 많이 있었다.
짬뽕면 무제한 + 두부 토핑 + 전체요리 1종 선택 + 모츠나베 세트가 있는데 양이 적고 가격이 1인분당 가격으로 받는다. 양이 적으니 모츠나베를 좀 더 즐기고 싶다면 단품을 시키고 기호에 맞는 사리를 추가하는 걸 추천한다. 우리는 모츠나베 2인분에 두부, 짬뽕면 토핑으로 시켰다. 끓기 전 푸짐하게 채소가 올라가 있는 비주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한다. 물론 막상 끓이면 숨이 죽어 허무하지만 말이다.
모츠나베는 대창의 양이 많지는 않았다. 각자 세 알정도 먹은 거 같다. 대창보다 양, 천엽, 막창 같은 부속이 더 많이 섞여있다. 부추는 한국에서 파는 부추가 아닌 볶음 요리에 많이 쓰는 중국 부추로 잎이 넓고 두꺼운데 기름진 국물을 머금어 감칠맛이 좋다. 양배추도 겉잎의 파란 부분까지 들어가 있고 마늘 슬라이스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다.
레드페퍼는 기호에 맞게 또는 짬뽕면 끓일 때 같이 넣으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국물은 간장베이스로 소불고기 전골맛도 나지만, 먹다 보면 조미료 맛 꽤 많이 나서 캠핑 갈 때 자주 먹던 번데기 통조림 국물맛이 난다. 두부는 연두부 수준으로 연하지만 밀도가 있어 탱글하고 부드럽다. 국물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술안주로 좋다. 실제 옆 테이블의 현지인들은 반주를 많이 하고 있었다.
다만 찍어 먹을 소스가 없어 아쉬웠는데 폰즈 등 곁들이가 있으면 확실히 좋을 거 같았다. 테이블마다 모츠나베 비법 가루가 놓여 있었는데 단맛과 산초 고수 등의 강렬한 향이 많이 나는 분말이다.
후쿠오카의 음식들은 전반적으로는 관광객들의 입맛에 많이 맞춰져 있고,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간이 센 편이다. 기름진 음식에 채소와 조미료로 느끼함을 잡아주는 스타일의 요리가 많아 입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