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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사키가 아니라, 나가사키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우리는 후쿠오카 톈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나가사키로 갔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나가사키는 갈지말지 좀 고민이 되었던 곳이다. 특히 가이드 북을 보면 그다지 여행지로 매력이 없게 표현되어 있었고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딱히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을 세울 때에는 운젠으로 바로 가기 힘드니까 잠시 쉬어 가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일본 여행을 마친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기억에 참 많이 남는 도시다.


나가사키 시는 나가사키 현의 중심도시인데 1920년대에는 규슈의 최대 도시였다. 그러다 인구가 점차 줄기 시작하면서 온천 도시 오이타에도 밀려 규슈에서도 6위의 도시가 되었다. 현재 나가사키 시의 인구는 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집값은 아주 비싸서 월세가 후쿠오카보다 비싸고 나고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나가사키 하면 세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쇄국정책 당시의 국제무역항의 모습, 가톨릭 성지, 야경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원자폭탄이 실제로 투하되었던 최후의 도시이기도 하나 도시 어디를 가도 온통 원폭 관련 상징물로 가득한 히로시마와 달리 관광객들에게는 원폭의 이미지가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나가사키는 에도 시대에 막부에서 공인한 유일의 국제무역항이었다. 이를 상징하는 곳이 바로 '데지마'다. 데지마는 1634년부터 2년에 걸쳐 포르투갈인을 수용하기 위한 인공섬으로 건설하였는데 실제로는 통상을 하러 온 네덜란드 상인이 살게 된다. 일본인은 공무상 허가받은 자 외에는 데지마에 출입할 수 없었고, 네덜란드인 역시 데지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니 쇄국정책 시대의 특별자유무역지구 비슷한 개념인 것이다.


인공섬이라는 것을 알고 실제로 가 보면 섬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왜녀하면 나중에 데지마 주변 바다를 다 메워버려서 데지마는 그냥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데지마는 도시 한 가운데에 옛날 집 많은 유적처럼 느껴진다.


나가사키는 오래된 국제무역 도시답게 오래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천주교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오우라 천주당을 비롯하여 일본의 가톨릭 박해의 흔적인 '기쿠레 기리시탄' 관련 유적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또 나가사키의 야경은 유명해서 소위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라고 자랑하나 근거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에서는 '세계 3대' 혹은 '일본 3대'라는 게 워낙 많아서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나가사키에 도착해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노면전차(트램)이었다. 보통은 버스보다 작은 크기의 차량이 두 칸 이어져 있는데 아주 오래된 것도 있고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유럽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지만 한국에는 없기 때문에 아주 이국적이다. 일본에는 나가사키 말고도 트램이 다니는 지역이 꽤 있지만 나가사키는 유독 오래된 트램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트램 정류장은 한국의 버스 중앙 정류장과 비슷하게 도로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정류장 폭이 워낙 좁아서 한 사람이 겨우 서 있을 정도였다. 누군가 밀치지 않더라도 서로 지나가다가 사고가 날 수 있어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노란색 볼록 블럭이 깔려져 있는데 이게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의 폭이 좁다.


나가사키 트램


우리가 나가사키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오우라천주당이다. 오우라천주당은 1865년 2월 19일에 프티장 주교의 지도로 봉헌식을 거행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고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


과거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에도 시대에 가톨릭은 심한 박해를 받았다. 가톨릭은 스페인,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전래되었는데 처음 다이묘들은 가톨릭을 박해하지 않고 포교를 허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다이묘들은 가톨릭 신지가 되기도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가톨릭 신자였다. 이때 개종한 가톨릭 신자를 ‘기리시탄’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각지의 다이묘들이 서양과 결탁해 세력을 키워 자신에게 대항할까봐 우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1597년에는 나가시키의 기리시탄을 집단으로 처형하기에 이른다. 이후 등장한 에도 막부 역시 가톨릭을 금지하는 금교령을 내리고 선교사를 추방하거나 처형하였고, 번이 막부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외국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쇄국정책을 유지하였다.


이후 키리시탄들이 막부의 지배에 저항하여 시마바라 일대에서 봉기를 하게 되는데 이를 ‘시마바라의 난’이라고 부른다. 이 일을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기리시탄은 막부에 반란을 일으키는 반동분자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박해가 더욱 심해졌다. 기리시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목숨이 위험해졌으므로 기리시탄은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종교적 가르침을 전파할 사제도 한 명 없이 신도들끼리 비밀리에 종교생활을 하였던 사람들을 '숨은 크리스천'이라는 의미로 ‘기쿠레 기리시탄’이라고 불렀다.


1873년 메이지 시대에 금교령이 폐지되면서 많은 기쿠레 기리시탄이 가톨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쿠레 기리시탄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쿠레 기리시탄은 오랜 세월 동안 구전으로만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원래의 가톨릭과 성가나 성호경이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불교로 위장하기 위하여 성모 마리아상을 불상처럼 만든 소위 ‘마리아 관음상’이나, 성화를 불화처럼 그린 ‘예수 미륵도’와 같은 독특한 문화가 탄생하기도 한다.


오우라 천주당에서 아쉬웠던 것은 관람료였다. 종교적인 장소, 특히 성당에서 관람료를 받는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인데, 그나마 관람료도 워낙 비싸서 대부분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선다.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하여 일부러 관람료를 비싸게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관람료가 비싸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게 되는 게 과연 문화재의 목적에 맞는 일일지는 모르겠다.


오우라 천주당. 관람료가 비싸서 사람들이 입구에서 사진만 찍는다.


오우라천주당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근처 <구라바엔>으로 간다. 구라바엔 역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글로버 가든>이라고도 부르는데, 영국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 등이 살던 주택 여러 채가 모여 있다. 구루바엔은 높은 산 위에 조성되어 있는데 올라가는 것은 여러 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 되고 맨 위에서부터 걸어 내려가면서 관람할 수 있어 다리가 덜 피곤하다. 문화재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번호를 따라 관람하면 순서대로 모두 관람할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영국 상인인 글로버는 나가사키 개항 직후 일본에 조선과 채광 기술을 가져와 글로버 상회를 설립하였다. 글로버 상화는 차와 비단의 수출과 선박과 무기를 수입하는 일을 하였고, 글로버는 메이지 정부 요인들과 깊은 교류를 하며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


글로버가 거주하던 <글로버 주택>은 1863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오래된 서양식 목조 건축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글로버 주택은 현존하는 일본의 서양식 목조 건축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이 굉장히 독특해서 서양식 건축 스타일을 도입하였으면서도 오두막집은 일본식으로 하는 등 일본식의 요소가 강하다.


다만 우리처럼 건축에 무지한 사람의 눈에는 그저 어렸을 적 브라운관 TV에서 본 기억이 날듯말듯 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건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일본같지 않고 굉장히 이국적이다. 마치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가 떠오르기도 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서양식 복장을 대여해 주는데 동양인에게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안 어울린다. 다만 사람들의 이목은 확실히 끄니까 좀 창피할 것 같기는 하다.


<구라바엔> 글로버 주택과 정원


이곳은 사진 맛집이다. 높은 산 위에 있기 때문에 바다 쪽으로는 나가사키 항구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데 반대편 언덕으로는 서양식의 이국적인 건축물이 있다. 건물 내부는 옛날 식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대단한 흥밋거리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구라바엔>은 꽤 부지가 넓지만 꼭대기에서 걸어 내려오는 식으로 관람하기 때문에 걷는 양에 비해서 다리의 피로가 덜한 편이었다. 산 위에 조성된 문화재를 이런 식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는 참 좋은 것 같다.


<구라바엔>에서 본 나가사키 항


우리는 쇄국정책 시대의 나가사키의 상징인 데지마를 스치듯 지나 한국인에게 나가시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짬뽕을 먹으러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차이나타운은 대부분 식당과 기념품 상점으로 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가격은 좀 있었다. 유명한 나가사키 짬뽕의 가격은 어느 식당이든 비슷비슷 했는데 식당끼리 모여서 정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차이나타운은 나가사키를 가로지르는 나카시마 강의 지류에 있다. 나카시마 강변은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았다. 길을 따라 걸으면 관광객에게 유명한 메가네바시(다리)를 볼 수 있고, 쇼핑하기에 좋은 아케이드도 나온다. 바다와 만나는 하류에는 데지마워프라는 곳이 나오는데 카페와 식당이 모여 있다. 여유가 있다면 바다를 보면서 차라도 한 잔 할 수도 있겠지만 바닷가라 햇볕이 너무 강하고 더워서 포기했다.


나가사키 신치 중화거리


더위에 약한 나는 잡화점 <돈키호테>를 갔다가 냉각팩이 160엔인가 180엔 정도에 파는 것을 보고 얼른 두 개를 집어 들었다. 혹시나 싶어 들고 다니다가 데지마워프에 와서 하도 더워 하나를 터트렸다. 안에 작은 구슬 같은 것이 채워져 있고 작은 물 주머니가 있는 것 같은데 주먹으로 쳐서 물을 터트리면 구슬 같은 것과 반응하여 차가워지는 팩이었다. 어렸을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던 것 같은데 사실 더워서라기보다는 신기해서 사곤 했었다. 이번에도 반가워서 사서 서 봤는데 효과가 한 5분에서 길어야 10분 정도 지속되는 것 같았다. 참 무겁고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일몰 시간에 맞춰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나가사키의 야경을 보기 위해 케이블 카(일본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른다)를 타러 갔다. 세계 3대 야경은 나가사키, 홍콩, 상하이라는 설이 있고, 하코다테, 홍콩, 나폴리라는 설도 있고, 그 외에 모나코, 상파울루,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뉴욕,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 선전, 상하이 도쿄, 오사카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 일본은 ‘세계 3대’ 혹은 ‘일본 3대’라는 말을 하도 좋아해서 이런 식의 수식어는 굉장히 많은데 딱히 근거도 모르겠고 흥미롭지도 않으며 그냥 뻔히 속 보이는 상술이 유치해 보일 뿐이다. 일본에서 3대 야경이라는 곳은 대개 도시에 높은 산이 있어서 야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사실 나머지 두 곳으로 지목된 곳이 더 흥미롭기는 하다.


서울의 야경이 야근하는 근로자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불빛과 그 사이로 흐르는 거대한 한강의 아름다움이라면, 나가사키의 야경은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도시의 불빛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느낌이 굉장히 시원하고 아름답다. 사실 좀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는 한 번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면 다시 내려가는 것에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올라온 시간은 제각각인데 다들 야경을 보고 비슷한 시간에 내려가니 내려가는 케이블 카에는 어마어마한 인파로 한참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케이블카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올라올 때 케이블 카 표를 왕복으로 끊었으니 걸어가기에는 아까웠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린 끝에 우리는 결국 호텔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무료 셔틀이 호텔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는데 돈 주고 시내버스를 타서 또 한참 걸어가야 하니 속이 좀 쓰렸다. 차라리 무료 셔틀의 존재를 몰랐으면 모를까.


그렇게 소위 세계 3대 야경은 저물어 갔다.


나가사키 야경




강쉡의 먹방일기


Lekker | 터키라이스 세트


나가사키의 명물이라고 하는 터키라이스를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갔다. 항구 도시인 나가사키는 서양에 막 개항했을 때의 예스러운 풍경이 남아 있는데, 외국 문화에 일본 고유의 문화를 조합하여 다양한 식문화와 관광상품을 만들었다. 터키라이스와 카스텔라, 짬뽕은 그러한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간 식당은 축구를 좋아하는 주인분이 축구 유니폼과 사인으로 꾸며 놓은 오래된 경양식집 느낌이었다. 터키라이스는 필라프, 나폴리탄 스파게티, 돈가스, 샐러드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어린이 세트 같은 메뉴였다.


‘터키’라는 명칭 필라프가 터키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설과 그릇에 담긴 모습이 삼색기와 닮아서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지금의 성인들이 어릴 때 많이 먹던 조합이 한 접시에 모여 있어 어른을 위한 어린이 런치라 불린다.


원체 양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 레귤러 사이즈로 시켰다. 필라프용 날리는 쌀을 이용한 볶음밥은 주문 시 바로 주방에서 웍을 돌려 볶아준다. 따끈따끈한 밥에는 카레의 감칠맛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살짝 배어 있다. 토마토 케첩 맛이 나는 나폴리탄과 바삭한 돈가스의 조합은 누구나 좋아할 맛이다.


Lekker의 터키라이스 세트


칸로 | 나가사키 짬뽕과 접시 우동


서양풍의 건물과 노면전차, 언덕에서 보이는 멋진 바다 풍경, 흐르는 강을 가로지르는 예스러운 다리 등 나가사키는 걷기만 해도 재미있는 힐링의 도시다. 야경을 보기 위해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휴식을 하기로 했다.


어쩌면 나가사키보다 유명할지도 모르는 나가사키 짬뽕을 먹기 위해 신친중화거리로 갔다. 나가사키 짬뽕은 메이지 시대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싸고 영양가가 많은 요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빨간 국물의 얼큰한 짬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짬뽕이 '나가사키'라는 지명을 달고 넘어와 어쩌면 음식이 지역을 유명하게 만든 것 같다.


나가사키 짬뽕은 닭뼈와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에 짬뽕면을 넣고 살짝 끓여낸다. 짬뽕면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부드러운 편이다. 채를 썬 돼지고기, 어묵, 깍지콩, 오징어, 주꾸미, 새우 등 다양한 고명과 양배추가 듬뿍 들어가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다. 본고장의 짬뽕은 우리나라의 것처럼 센 불에 볶은 불맛은 많이 나지 않고 부드럽고 담백하다.


나가사키 짬뽕


접시우동은 처음 본 메뉴인데 굉장히 독특했다. 메뉴명과 다르게 얇은 면이 나오는데 튀긴 면과 구운 면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튀긴 면으로 시켰는데 바삭하게 튀긴 얇은 면에 탕수육 같이 걸쭉한 소스를 뿌려 나온다. 바삭바삭한 면에 걸쭉한 소스가 조화로운 식감을 만들어 재미있다. 이 메뉴에 킥 포인트는 우스터소스인데 테이블마다 놓인 소스를 살짝 뿌려 먹으면 새콤한 소스 맛이 접시우동의 감칠맛을 살려준다.

접시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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