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국제거리 근처에서 겨우 1박을 하고 아침에 다시 나하 공항으로 갔다. 미야코지마에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오키나와를 처음 갔을 때 당일치기로 토카시키 섬에 갔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른 섬들도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자마미 섬에 갔는데 얕은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무려 거북이를 보얐다.아쿠아리움이 아니라 그냥 물놀이하던 해변에 거북이라니! 그렇게 우리는 매해 도장 깨기 하듯 오키나와의 작은 섬들을 깨 나가고 있었다.
미야코지마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오키나와의 섬 중 하나였다. 이시가키 섬도 가 보고 싶었고 영화 <안경>에서 본 요론지마도 가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나하에서 좀 더 가깝고 가기 편한 미야코지마를 먼저 가는 게 편할 것 갔았다. 뭐, 가깝다고 해도 본섬에서부터 무려 300km나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2020년 초에 비행기도 예약하고 숙소도 예약했는데 무려 코로나19라는 비극을 맞았다. 눈물겹게 예약을 취소하면서 ‘몇 달 뒤에는 갈 수 있겠지’했는데,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나버렸다.
그토록 갈망하던 미야코지마에 가기 전날, 나는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렌터카를 잘못 예약한 것이다!
미야코지마도 꽤 큰 섬이기에 버스가 다니기는 하나 아주 드물게 다녀서 꽤 불편하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렌터카를 이용하곤 하는데, 여기가 아무래도 본토에서 많이 떨어진 낙도이다 보니 외국인이 인터넷으로 원활하게 예약할 수 있는 렌터카 회사가 많지 않아 금방 예약이 다 차곤 한다. 물론 비싼 차는 매진을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돈이 궁한 장기여행자에게 고급차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길거리에서도 많이 보았던 꽤 큰 렌터카 회사에서 소형차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일이 풀릴 줄 알았는데 바로 전날에서야 내가 예약한 곳이 ‘미야코지마 지점’이 아니라 ‘미야지마 지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겨우 '코' 하나 차이일 뿐인데! 그래도 전날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부랴부랴 예약을 취소하고 미야코지마 공항 지점으로 다시 예약을 해 보니 다행히도 예약이 가능했다. 혹시 몰라 다른 렌터카 업체를 찾아보니 역시나 모두 매진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이무즈 카 렌타루(Times Car Rental)!
내가 미야코지마와 미야지마를 헷갈린 것처럼 일본은 비슷비슷한 지명이 엄청 많다. 산도 많고 섬도 많아 무슨 지마(시마), 야마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름이 같은데 서로 다른 곳일 때도 많다. 키타히로시마는 히로시마현에도 있는 쵸(정, 작은 행정단위)이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홋카이도에 있는 시이기도 하다. 우리가 간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 현에 속한 시이기도 하지만 오사카에는 '미야코지마 구'라는 행정구역도 있다. 이렇게 일본은 지역 명칭이 하도 비슷해서 엄청 헷갈린다. 하긴 한국에는 무슨 천, 무슨 산으로 된 지명도 많고 심지어 서울에는 신사동만 은평구, 관악구, 강남구의 세군데나 있지 않던가.
어찌 되었건 우여곡절 끝에 렌터카를 받았는데 거대한 박스카였다. 나는 한국에서 대형에 가까운 중형차를 몰았어서 소형차니까 내 차보다 작겠지 싶었는데, 막상 이 소형 박스카는 정말 거대해서 마치 산 같았다. 룸미러가 하도 높은 곳에 달려 있어서 고개를 들어 봐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차는 높이만 높았지 차폭도 좁고 특히 다리 공간이 좁아 운전하는 내내 불편했다. 일본에 터번을 쓰는 시크교도가 많은 것도 아닌데 뭐 이리 높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일본에서 운전하는 것 자체가 좀 불편한데, 왼쪽 오른쪽이 한국과 반대인 것은 그나마 몇 번 해 보면 적응할 수 있지만, 그놈의 신호등과 표지판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일본 운전자들도 많이 헷갈려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이런 신호등을 만나면 대체 가야할까 서야 할까.
일본의 교통 규칙은 정말 알쏭달쏭하지만 그래도 미야코지마는 렌터카로 운전하기 꽤 편한 곳이다. 제한 속도도 40킬로 정도로 느린 편이고 도로에 차도 아주 적다. 오키나와 현 자체가 나하 시 같은 번화한 곳을 빼면 전체적으로 차가 많지 않기도 하다. 게다가 외국인이 운전하는 렌터카가 많아서인지 운전자들이 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편이다.
미야코제도는 미야코 섬 외에도 이케마 섬, 오오카미 섬, 쿠리마 섬, 이라부 섬, 시모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 미야코지마 시에 속하는데 오오카미 섬을 제외하면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로 왕래가 가능하다. 미야코 제도는 오키나와 본섬으로부터 약 30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기후와 식생이 많이 다르다. 인구는 5만 명이 약간 넘고 관광객이 많지만 섬 규모에 비해 아주 많지도 않고 분산되어 있어서 유명한 관광 포인트를 가더라도 별로 붐비지 않고 한적하다. 미야코제도는 산과 강이 없어 토사가 바다로 유입되지 않아 바다 색이 아름다운데, 바다 좋기로 오키나와의 여러 섬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아름답다. 그래서 이 바다 색을 ‘미야코 블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미야코 블루’는 여행자에게는 설렘을 주는 미라클 같은 단어라, 우리도 결국 이 미야코블루에 끌려 이곳에서만 여러 날을 묵게 되었다.
우리는 나하공항에서 미야코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시간은 김포에서 제주도 가는 것보다 약간 짧은 정도였다. 미야코 공항의 활주로가 짧은 탓인지 조종사가 펌랜딩(부드럽게 착륙하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주어 제동거리를 짧게 하는 랜딩)을 한 것 같았는데 몸이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쏠릴 정도로 급격한 제동이어서 살짝 무서웠다.
렌터카를 받아 숙소로 가 짐을 풀었더니 시간이 애매했다. 그냥 저녁까지 보내기도 그렇고 본격적으로 어딜 가자니 체력이 부담되었다. 게다가 날씨 요정인지 요괴인지(강쉡)가 있음에도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숙소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있는 공원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공원의 이름은 무려 ‘파이나가마 우미소라 스코야카 공원’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글자를 읽어야 하는 곳이었다. 이름 글자 수만큼이나 이곳은 굉장히 넓고 잘 정돈된 공원이었는데, 그에 비해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시간 남짓 산책하는 내내 한 두 명이나 봤을까.
공원에는 풀 숲 사이로 개구멍이 여러 곳 나 있었다.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다. 미야코지마의 해변은 개구멍을 통해 들어가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만큼 사람이 적기도 하고 개발이 덜 되어 있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날카로운 소철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더니 뜬금없이 푸른 바다가 나왔다. 비 오는 날씨임에도 푸른빛의 바다. 동네 앞바다가 이 정도라면 풍경으로 유명한 명소는 어느 정도일지 기대가 됐다.
나온 김에 멀리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 마리나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는데 정작 찾아가려던 곳은 나오지 않았고 이름 그대로 해넘이 명소인 선셋비치가 나왔다.
허름한 관리소 비슷한 낡은 건물을 지나자 눈앞이 온통 푸른빛이었다. 만날 동해, 서해만 보다가 제주도에 처음 갔을 때의 그 감격이 밀려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시리게 푸른 바다와 그 가운데를 가르고 있는 이라부대교뿐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푸를 수가 있을까, 초록색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바다였다. 잡는 사람도 없는데 물고기가 수면 위로 펄떡펄떡 뛰곤 했고 거북이가 고개를 내미는 것도 보았다.
여행을 하기 전에 나는 일종의 로망이 있었다. 풍경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아침에 조깅을 하고 싶었다. <윤식당>을 보면 박서준이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꽤 멋있었다. 바닷가를 가면 꼭 조깅을 하리라.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많은지, 혹은 원래 그런 습관이 있는 것인지 선셋비치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근처에 숙소라고는 비싼 유명 체인 호텔 한 곳밖에 없으니 아마도 그 호텔 투숙객들이었을 것이다. 사실 저녁이었으니 조깅이 아니라 석깅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바다에서 그런 여유, 꽤 부러웠다.
그러나 아침에 조깅을 해야겠다는 나의 로망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는데, 사실 귀찮음과 피곤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다음 날 드디어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스나야마 비치로 갔다. 미야코지마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사진에 꼭 나오는 장소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파리가 두껍고 큰 풀숲 사이로 모래언덕이 나타난다. 살짝 욕이 나오게 힘들 정도면 언덕의 끝에 다달아 드디어 내려가기 시작하고 슬며시 바다색이 보이며 설렘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짜잔! 하면서 "어제 본 건 가짜야. 이게 바로 미야코블루야!"라고 하는 듯 현실감 없는 TV 영상에서 보정을 잔뜩 먹인듯한 풍경이 나타난다.
스나야마 비치는 넓지 않은 곳인데 물속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제법 깊어 보여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명세치고는 사람이 아주 적어서 우리가 자리를 뜰 때까지 한 두 팀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스나야마 비치의 가장 유명한 포토스폿은 역시 아치형 바위다. 보통 이런 식의 바위는 다들 '코끼리바위'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코끼리 바위는 전 세계에 58,000개쯤 있는 것 같다. 스나야마 비치의 다른 코끼리 바위보다 특별한 이유는 미야코블루와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주면서 심지어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의자와 테이블 등 장사를 하다가 버린 물건들이 코끼리 바위 안 쪽 잘 안 보이는 곳에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해변에 담배꽁초 하나 발견하기 힘든 일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스나야마 비치의 풍경에 취한 마음을 부여잡고 우리는 아라구스쿠 해변으로 갔다. 이곳에서부터 스노클링을 할 생각이었다. 우리는 스노클링을 위하여 많은 것을 가져왔다. 마스크와 스노클은 물론 구명조끼와 쉬는 동안 햇볕을 막아줄 해변용 타프와 돗자리까지 준비했다. 대여하지 않고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이유는 미야코지마는 편의시설이 없는 해변이 꽤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물놀이에 꽤 진심이어서 한국에서 프리다이빙 강습도 짧게나마 받고 왔다. 사실 인생 첫 스노클링 역시 오키나와에서부터였는데 그때부터 여름 물놀이 하면 당연히 스노클링을 생각했다.
우리가 가져온 타프는 이케아 제품이었는데 팩이 나선형으로 되어 있어 모래사장에도 잘 고정이 되는 제품이다. 무늬가 약간 요란하지만 두 사람이 쓰기에 딱 적당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으니, 바로 바람이었다. 이날은 날은 맑은데 바람이 꽤 불었다. 나선형 팩은 어느 정도 고정력이 있긴 했으나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이 불안 불안했다. 하도 펄럭거려서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파라솔을 대여해 주는 아저씨가 뒤에서 씩 웃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30분 넘게 타프와 씨름을 하다가 포기하고 결국 거금 1,000엔을 주고 파라솔을 대여했다. 파라솔 아저씨가 그럼 그렇지라고 하는 긋 했다. 빌려서 보니 대여 파라솔은 그냥 모래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구해왔는지 큼지막한 돌 여러 개로 칭칭 묶어 고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낑낑대며 가져온 타프는 첫 피칭에 실패했다.
대여파라솔에 짐을 풀고서 곧바로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5월의 해변은 햇볕이 무척 따갑고 더웠는데 바다는 아주 차갑지는 않고 추가적인 체온조절 장비 없이 물놀이하기에 딱 적당한 정도였다. 아라구스쿠의 바다는 정말 맑아서 물 밖에서도 물고기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물속으로 고개를 넣으니, 역시나 노란색 파란색 물고기들의 세계였다. 물고기들은 사람을 많이 본 것인지 아니면 그저 큰 물고기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인지 닝겐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쏘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에 특별한 장비를 하나 더 마련했는데, 바로 핸드폰 방수케이스다. 물론 요즘 핸드폰들이야 다 방수가 되지만 그래도 바닷물에 쌩폰을 넣기에는 이제 출시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아이폰 14프로의 가격은 어마무시했다. 방수케이스 여러 가지를 장바구니에 넣고 고민을 하다가 굉장히 크고 튼튼해 보이면서 손목스트랩까지 있는 것으로 주문했다. 한국에서는 잘 팔지 않아서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해 받기까지 몇 주나 걸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무려 동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게 은근히 재밌었다.
아라구스쿠 해변에서 열심히 물놀이를 하고 전날 맥스밸류(대형마트)에서 사 온 도시락을 까먹고는 하가시헨나자키 공원으로 갔다. 이름이 길어 외우기 어려운 이곳은 절벽 위에 하얀 등대가 유명한 곳이다. 마치 "등대 그림을 그려보세요"라고 하면 10명 중 8명은 그릴듯한 그런 풍경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너무 더워서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뽑아 먹고는 공원으로 걸어갔다. 날씨는 어마어마하게 더웠는데 예기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매표소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무료인 공공 공원에 익숙해진 우리는 공원에 입장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먹을 천 엔짜리 지폐 한 장만 들고 나온 터였다. 입장료는 1인당 200엔인가 했다. 우리 수중에는 500엔짜리 동전과 음료수를 뽑고 남은 삼백 몇 엔만 있었다. 그런데 관리인 아주머니는 잔돈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더위를 뚫고 주차장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그냥 500엔짜리 빼고 되는 대로만 내라고 한다. 우리는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들어갔다.
등대까지는 생각보다 꽤 멀어서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꽤 볼거리들이 많이 있어 산책하는 느낌으로 걷기 좋았고 햇빛이 강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더위를 견딜만했다.
드디어 등대에 도착했는데 올라가려면 또 입장료를 내야 했다. 등대까지 가는 입장료 따로, 등대 따로였던 것이다. 등대 입장료는 무려 1인당 500엔. 그런데 우리 주머니 속에는 딱 500엔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좀 무서웠다. 나는 무서운 것을 싫어해서 평소에 놀이기구도 타지 않는 데다가 오사카에 가서도 유명한 유니버설스튜디오에 가지 않는 사람이다. 등대는 꽤 높았고 올라가 있는 사람이 한 두 명 있었는데 무척 무서워 보였다. 그래서 속으로 "아싸"하면서 강쉡한테 나는 안 가도 괜찮으니 혼자 올라가라고 했다. 그러자 관리인 아저씨가 그냥 500엔만 내고 둘 다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그렇게 멀미 날 정도로 뱅뱅 도는 계단을 올라갔더니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서웠다. 생각보다 꽤 높은 데다가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어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우리가 올라온 뒤에 홍콩 가족도 올라왔는데 어린 친구는 모르겠고 나이 좀 있는 분은 역시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무서움을 이겨내고 바라본 풍경은 사방이 모두 절경이었다. 가슴이 뻥 뚫린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물론 무서워서 나는 벽에 붙어서 살금살금 걸어갔지만 말이다. 겁이 없는 척하는 강쉡도 사실은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 다행이지 사람이 많았으면 서로 어떻게 길을 비켜줘야 하나 참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곳의 특이한 점은 해안에 마치 공깃돌처럼 생긴 바위들이 점점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보니 쓰나미 때 밀려온 바위들이라고 한다. 대체 어떤 쓰나미가 어떻게 올라오면 저 바위 덩어리를 데굴데굴 굴릴 수 있었을까. 새삼 바다의 엄청난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이라부 섬에 가기로 했다. 미야코지마를 가기로 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 바로 나카노시마 비치를 가기 위해서였다. 나카노시마 비치는 가이드 북에 따르면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 미야코지마에서도 특히 더 물이 투명도가 높은 비치라고 했다. 사실 나카노시마 비치는 이라부 섬이 아니라 시모지 섬에 있는 데 시모지 섬은 이라부섬과 딱 붙어서 아주 짧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하나의 섬처럼 느껴진다.
이라부 섬에 가기 위해서는 이라부대교를 건너야 한다. 이라부대교는 2015년 1월 31일에 개통된 다리로 길이가 3,540m인데 통행료를 받지 않는 다리 중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중간에 오르막 길이 두 번 있는데 제일 큰 오르막은 경사도가 5%라서 꽤 갸퍄르다.
많은 가이드 북이나 관광자료에는 이 다리를 풍경이 아름다운 명소로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 이 다리가 개통된 계기는 안타까운 사고 때문이었다. 1940년 6월 30일 미야코지마 히라라항과 이라부 섬 와타구치 항을 연결하는 항로에서 선박이 침몰하여 무려 73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때를 기점으로 다리 건설은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되었다. 그 후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주민들의 호소와 설득 끝에 사고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 다리가 준공된 것이다.
이라부 대교 근처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많고 이를 위하여 주차시설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이라부 대교의 탄생이 대형 인명사고 때문이었는데, 2017년 9월에 처음으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간호사로 일하던 한 남성이 이라부 대교에서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였고 결혼을 승낙받았다. 남성은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해서 다리를 넘었고 그 순간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참 허망하다. 실제로 가 보면 바람이 굉장히 불기 때문에 차가 휘청휘청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광경에도 불구하고 걸어간다면 꽤 무서울 것 같다.
이라부대교를 건너면 다리 양 쪽으로 환상적인 미야코블루가 펼쳐진다. 미야코지마의 바다색은 크게 두 가지 빛인 것 같다. 산호나 바위가 수면에 가까이 있으면 코발트에 가까운 짙은 파란색이 된다. 그렇지 않고 바닥이 모래인 대부분의 바다색은 제주도 바다와 같은 초록색보다는 캔디바 색과 비슷하다. 물빛이 아름다운 오키나와에서도 드문 광경이어서 오래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다.
이라부대교를 건너 막 이라부 섬으로 들어오면 교차로에 미야코제도의 명물인 마모루 군이 지키고 있다. ‘마모루’는 일본어로 ‘지키다’라는 뜻인데, 미야코제도 몇 곳에는 교통안전을 위해 경찰 제복을 입은 마네킹을 세워 놓고 이를 ‘마모루 군’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보면 피부색이 창백하고 표정이 없어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다. 사고가 나지 말라고 세워두었다지만 밤에 보면 놀라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이드북에는 나카노시마 비치가 정식 비치가 아니라서 접근이 어렵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표지판도 있고 제대로 된 주차장은 아니지만 차를 댈 곳도 있다. 다만 편의시설은 전혀 없어서 씻을 수도 없고 해변에 접근하는 것도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미야코지마의 해변이 거의 그렇지만 해변까지 들어가는데 제대로 된 정식 길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을 따라 가야하는데 약간 탐험에 가깝다. 가 보면 해변이 넓지는 않은데 요즘 유명해져서 그런지 다른 해변에 비해 사람이 꽤 있는 편이다. 그래도 일본의 해변답게 쓰레기로 지저분하지 않았다.
나카노시마 해변의 물은 역시 소문대로 굉장히 맑았다. 옆에 사람이 없을 때에는 물속 부유물이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 스노클링을 하는 데 강쉡이 갑자기 “봤어? 봤어?”라며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뭔데?”
“여기, 여기 니모 있어.”
다가가서 보니 산호 사이로 말미잘이 있었고 그 앞을 니모라고 더 잘 불리는 흰동가리가 지키고 있었다. 스노클링을 꽤 자주 갔었는데도 말미잘에 흰동가리는 처음 본 것 같다. 집에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 것일까. 특히 동남아에서 폭탄을 터트리거나 청산가리를 뿌려 기절시켜 잡는 때가 많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인공번식에 성공하여 이제는 자연에서 남획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자연에서 귀여웠던 애들은 그냥 자연에 있는 것으로 해야지 집에 전시해 놓으면 애들이 사라진다.
한참 물놀이를 하고 마키야마공원으로 갔다. 이라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키 산 정상에 조성한 공원인데 오는 사람도 굉장히 적고 관리가 잘 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꽤 오랜 시간을 있었음에도 사람이라고는 한 두 팀 정도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근래에 비가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땅이 축축했다. 무성하게 자라나 풀과 나무들은 하도 빽빽해서 한낮임에도 많이 어두운 느낌이었다. 그 풀과 나무 역시 한국이나 일본 본토에서는 보지 못한 잎이 넓거나 가지가 구불구불한 것들이 많아서 아, 여기가 남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하도 풀과 나무가 우거져 살짝 무섭기도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나고 예쁘긴 하지만 굉장히 큰 꽃들도 많았다. 덥고 습해서 그런지 워낙 굵고 큰 나무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세계수’라고 불렀다.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확실히 찾아오는 사람이 적고 관리를 잘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이라부 섬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가슴이 확 트이고 상쾌했다.
다음날 우리는 유키시오 제염소로 갔다. 유키시오는 한국식으로 읽으면 설염, 즉 눈소금이라는 뜻인데 이곳에서는 눈처럼 굉장히 고운 소금을 만들고 있었다.
유키시오는 미야코지마에서 꽤 유명해서 기념품 상점이 아니라 슈퍼에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소금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특히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 아이스크림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소금을 뿌려 먹는데 테이블에 여러 종류의 소금이 놓여 있어서 자유롭게 여러 가지 소금을 맛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소금의 짠맛이 말 그대로 단짠단짠이다.
유키시오 제염소는 미야코지마 출신의 니시사토 나가지가 설립하였다. 그는 오키나와 본섬에서 경제농업협동조합연합회에서 일하다가 스물여섯에 미야코섬으로 돌아와 미야코 파라다이스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영업이 잘 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사탕수수를 가공한 제품은 만들었는데 그 사업 역시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일본에서 소금의 제조와 판매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어 천연염에 대한 붐이 일어나자 나가지는 우물을 파서 소금물 섞인 지하수를 사탕수수 가공 기계를 사용하여 제염하면 파우더 같은 소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를 ‘유키시오’, 즉 설염이라는 상표를 걸어 판매했고 미야코지마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었다. 사탕수수 기계로 소금을 만들 생각을 했다니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유키시오 제염소를 지나 이케마 섬으로 갔다. 이케마 섬을 가려면 이케마대교를 지나야 하는데 이곳의 지형이 독특하다. 마치 가지가 2개 달린 작은 포크처럼 생겼는데, 그중 긴 가지 쪽에 다리가 있다. 이케마대교도 이라부대교 못지않은 꽤 긴 다리인데, 중간에 주차장이 두어 곳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또 기가 막히다.
이케마 섬은 면적 2.8km2에 인구가 800여 명인 작은 섬이다. 섬 전체가 국가 지정 조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섬 중앙에 미야코제도 최대의 습지인 이케마 습지가 있고, 동쪽으로는 오키나와 현 최대의 산호초군이 있다. 참 볼 것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관광객이 매우 적어 한적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이케마 섬에서 후나쿠스 비치로 갔다. 일단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찾을 수 없었다. 과거에 매점으로 썼었던 흔적이 있는 장소가 하나 있었고 화장실에는 폐쇄되었다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한 서양 사람이 저쪽 길가에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그 설명을 따라갔더니 도로 한편에 정식 출입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 나 있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갔더니 역시나 환상적인 해변이 나타났다.
후나쿠스 해변에서 우리는 드디어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타프를 처음으로 피칭할 수 있었다. 다음날 미야코지마를 떠나는데 이제야 처음 피칭을 하다니 가져온 수고만큼 잘 못써먹었다.
그렇게 들어간 해변의 수질은 소문대로 정말 최고였다. 수돗물을 모아두어도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한참을 스노클링을 즐기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미야코지마에 온 첫날 갔었던 선셋비치에 다시 갔다. 첫날 비가 왔기도 했고 선셋비치인데도 해넘이 노을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비가 오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도 해변이 워낙 넓어 조용하고 한적하게 노을을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때만큼은 일걱정 세상걱정은 하나도 없이 온전히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미야코지마를 떠나 이시가키 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오전에 시간이 좀 남아 마지막으로 딱 한 곳만 잠깐 들를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둘째 날 갔었던 스나야마 비치였다. 숙소나 공항에서 가깝기도 했고 그 환상적인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도 일본 여행 1순위로 꼽는 미야코지마를 떠나 이시가키 섬으로 갔다.
여행자 2인의 음식 체질
오변 : 햇볕에 5분만 걸으면 땀이 훈제 통닭처럼 나는 태양인. 찬 음식으로 통제 필요.
강쉡 : 속이 늘 차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 필요한 소양인. '아아'를 풀로 한 잔 마시면 바로 배탈 남.
나하에서 오전에 출발해 미야코지마로 갔다. 공항에서 렌터카 업체의 픽업 차량을 기다려 사무실로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차를 받사오니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음식은 타이밍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가 너무 고프거나 반대로 배가 부르면 소용이 없어진다. 배가 고프면 사소한 일에도 빡이 치고 빡이 치면 짜증 나서 싸우게 된다.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타이밍에 맞는 밥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목적지 도착 전에 주변 식당과 밥집 정도는 미리 찾아 놓는 편이다.
내가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오변 혼자서 운전을 했는데 일본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오변이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오변을 달래려 빠르게 밥집을 찾아야 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항상 요리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나름의 메리트가 있지만 다른 상황, 특히 차를 얻어 타야 하는 입장에서는 운전하는 사람을 케어해 주는 것이 임무다.
우리는 맥스밸류 근처 향토음식 체인점으로 보이는 밥집 <미오오도야>를 찾아 들어갔다. 맥스밸류는 이후로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찾아가는 대형마트인데 한국의 이마트와 비슷한 곳이다. <미오오도야>는 질그릇에 뜨끈하게 나오는 정식과 튀김 정식을 파는 곳이었다.
나는 '바지락과 흰살생선 질냄비 탕수 소스 밥'을 주문했다. 녹말소스에 튀긴 생선과 볶은 채소, 밥이 들어가 있어 해물 누룽지탕의 느낌이 났다. 가쓰오부시와 참나물 향이 좋아 뜨끈하고 대파가 많이 들어서 몸이 뜨끈해져 보양식 느낌이 난다.
오변은 '전갱이 튀김 정식'을 시켰다. 생선살만 채소에 말아 바삭하게 튀겼는데 간무에 폰즈와 곁들이니 생선과 같이 튀긴 시소잎 향이 나서 깔끔하니 좋았다.
우리는 일본에서 두 달 동안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조금은 절약을 해야 했다. 그런데 비용을 아끼려고 해도 기본적인 교통비는 줄일 수 없으니 그나마 줄일 수 있는 것은 숙소와 식사비용이었다. 이 식사를 적은 비용으로 퀄리티 있게 해 준 곳이 바로 맥스밸류였다. 맥스밸류는 미야코지마에 무려 2개의 점포가 있었다. 6시 이후에 가면 초밥세트를 20~30% 할인을 하는데 그 퀄리티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유명한 맛집을 가면 좋겠지만 일본의 대부분 식당은 점심만 하고 닫고 저녁에 문을 연 곳은 이자카야가 많았다. 이자카야에서 반주라도 하려고 맥주 두 잔을 시키면 웬만한 음식값보다 비쌌다. 반면 맥스밸류에서 초밥에 튀김, 꼬치, 맥주, 사와 칵테일을 사서 밥상을 떡하니 차려놓으면 두 명에서 2~3천엔 정도로도 푸짐하게 즐기고 남는다. 맥스밸류는 초밥을 사면 소량으로 포장된 초생강과 와사비를 셀프로 챙겨갈 수 있었는데, 이 역시 훌륭한 안주거리가 되었다. 다만 너무 많이 챙겨가면 살짝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다.
스노클링을 하러 가는 길에 <유키시오>라는 유명한 소금을 만드는 공장에 갔다. 질이 좋은 소금을 생산하는 곳인데, 사실 우리가 간 목적은 공장 견학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멋진 풍경과 다양한 기념품들, 특히 소금 아이스크림이 기대되었다.
유키시오 제염소에는 이케마 대교와 어우러진 바다 풍경을 관망할 수 있는 카페와 정원이 있어 사진을 찍으며 힐링하기 좋다.
소금 아이스크림은 유지방이 풍부한 아이스크림에 미네랄이 많다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하는 유키시오 소금을 뿌려 먹는 것인데 단짠단짠 한 매력에 더위가 날아간다.
아이스크림을 사면 테이블에 네 종류 소금이 있는데 기호에 맞게 단짠단짠 할 수 있다. 말차, 히비스커스, 오리지널, 김맛이 있는데 말차와 히비스커스가 제일 무난하며 의외로 김맛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