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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또 가고, 오키나와 본섬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계획을 세울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워낙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 무더위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로 올라오는 루트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장마는 무려 5월부터 시작이었다.


“괜찮아. 내가 날씨요정이라 비 안 올 거야”


강쉡은 이렇게 장담을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오키나와의 장마는 한국처럼 부슬부슬 오래 내리는 비가 아니라 스콜처럼 확 내렸다가 금세 그치는 비라고도 했다. 그러면 여행하기엔 크게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콜이라면 잠시 비를 피할 수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스콜은 개뿔. 장마는 그냥 장마였다. 생각해 보면 북쪽의 차갑고 습한 오호츠크 해 기단과 남쪽의 덥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만나 긴 정체전선으로 만들어지는 장마의 원리가 오키나와라고 다를 수가 있을까. 다르다면 장마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나는 강쉡을 날씨 요정이 아니라 '날씨 요괴'로 불렀다. 일본 여행이 끝나갈 무렵 삿포로에서 강쉡처럼 스스로를 '날씨 요정'이라고 지칭하는 가이드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날도 역시나 비가 몹시 내렸다. 날씨 요정은 맑은 날을 싫어하는 요정이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오키나와의 여행 적기는 과연 언제일까. 나는 코로나 전 몇 해 동안은 거의 매년 오키나와를 갔었고 엄마와 조카를 데리고도 갔었다. 나름 오키나와는 꽤 자주 갔던 것 같은데 날씨가 좋으면 너무 더웠고, 덥지 않으면 비가 내렸다. 오키나와는 바다가 참 좋은 곳인데 여름에는 너무 더워 숨쉬기가 힘들 정도이고, 가을에는 태풍이 자주 온다. 봄에는 일찍 장마가 시작하고 겨울에는 바다에서 물놀이를 할 수 없어 오키나와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오키나와를 잘 즐길 수 있는 때를 맞춰서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일본 종주를 마친 지금, 일본 여행지 1순위로 여전히 오키나와를 꼽을 것이다. 오키나와는 무더위와 비를 감수하고도 기어코 찾아가게 하는 매력이 있는 멋진 곳이다.


오키나와 나하공항 위치 @gogole maps


‘오키나와’라고 하면 오키나와 현을 말할 때도 있고, 오키나와 시를 말할 때도 있고, 그냥 일본 최남단의 대만 동쪽의 길게 늘어선 섬 중 가장 큰 섬을 말할 때도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냥 대충 그 쯤의 지역을 죄다 ‘오키나와’라고 부르며, 가장 큰 섬은 ‘본섬’이라고 부를 때가 많은 것 같다.


한국에서 오키나와를 갈 때는 보통 나하 공항으로 간다. 그냥 항공편을 검색할 때 '오키나와'라고 하면 나하 공항을 말한다. 저비용항공(LCC)을 타고 나하 공항에서 내리면 거의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여러 번 공사를 해서 이제는 제법 규모를 갖춘 공항이 되었다.


나하 공항은 일본에서도 꽤 큰 공항 중 하나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던데. 엄청 작던데?"라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나하 공항은 국제선 쪽 시설은 별 게 없고 국내선 쪽에 상점과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국내서을 타지 않는다면 별 것 없는 국제선 쪽만 봤을 수도 있겠다.


나하 공항은 오키나와 현 나하 시에 있는데, 나하 시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일본 ‘시’ 급 중에서는 가장 작은 시인데, 인구밀도는 도쿄 주변의 수도권과 간사이 지역(오사카, 교토 등)을 제외하면 가장 높다. 인구도 30만이 넘는다(오키나와 현의 인구는 약 150만).


오키나와의 '역사'는 약 11세기쯤부터 시작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구스쿠'라는 성곽이 지어졌는데, 구스쿠 유적지 아홉 곳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구스쿠 유적지 중 관광객에게는 '슈리 성'이 가장 유명하다.


슈리 성은 모노레일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인 데다가 특이하게 생겨서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얼마 전 화재로 전부 소실되었다. 나는 화재가 나기 전에 갔다 왔는데 뉴스로 불에 타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팠다. 숭례문 화재를 당한 한국인의 마음이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겪은 프랑스인의 마음처럼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도 슈리 성의 화재는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오키나와는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던 시기를 거쳐 북산, 중산, 남산의 세 나라로 정리되었는데 이때를 '삼산시대'라고 부른다. 삼산시대는 1429년 중산의 쇼하시 왕에 의해 통일이 되면서 막을 내리고 류큐 왕국이 세워졌다. '류큐'라는 명칭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어서 오키나와 섬 일대의 섬들을 통칭해 '류큐 제도'라고도 부른다. 오키나와 곳곳에서도 류큐라는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으며, 가게 상호나 지역 상품의 상표로도 많이 쓰고 있다. 류큐 왕국은 조선이나 명나라와도 교역을 하였으나 점차 쇠락하여 1609년에는 사쓰마 번(현재의 가고시마 현)의 속국이 된다.


류큐 왕국은 1872년 이른바 '1차 류큐 처분'으로 왕국에서 '번'으로 강등되었다. 그전 해인 1871년에 '폐번치현'(메이지 유신 때 지방의 통치 기관인 번을 폐지하고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현을 설치한 것)으로 이미 '번'이라는 행정구역이 사라졌음에도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과거의 행정구역이던 '번'을 설치하여 류큐 국의 마지막 국왕인 쇼타이를 류큐 번왕으로 삼는다. 7년 뒤인 1879년 제2차 류큐 처분으로 오키나와 현을 설치하여 직할령이 되었고, 최초이자 마지막 번왕인 쇼타이 왕은 도교로 가 후작으로 강등되었다.


이렇게 오키나와는 일본의 본토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본토와 달리 근대적 정책이 도입되지 않고 낡은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소위 '구관온존책(旧慣温存策)'의 방침을 고수하였다. 조선의 경우 토지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1914년에 부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으나 오키나와 현은 마지리·도(間切·島) 체제를 한동안 유지하다가 1908년이 되어서야 도서정촌제를 실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공황 때에는 혹독한 기근을 겪었는데, 당시 소철로 연명을 하였다고 하여 '소철 지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키나와 길거리에 널린 것이 소철인데 여행객의 팔목에 상처를 내는 그 딱딱하고 거친 잎을 가진 식물이다. 소철은 잎과 열매에 독이 있어 식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번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걸 어떻게 먹을까 싶은데 배고프던 시절이었기에 그 딱딱하고 가시돋친 소철을 그냥 대충 삶아 먹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 제국은 1940년부터는 류큐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등 오키나와를 일본 본토와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이는 조선어를 금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이렇게 차별을 받던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하여 병참기지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갈 무렵 태평양 전선의 최대 혈전이라고 불리는 오키나와 전투가 벌어진다. 전선에서 밀리자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옥쇄하라'며 죽음을 강요하였고,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기도 하였다.


일본군은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면 여자들은 유부녀부터 소녀들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강간한다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실시하였는데, 미국의 통치를 받는 것보다 차라리 자살하는 것을 택하는 오키나와 인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은 일본 패망 직전인 1945년 6월 오키나와를 점령하였는데, 이후 1972년 다시 일본에 반환할 때까지 미국이 통치하게 된다.


이러한 오키나와의 역사를 보면 약소국의 설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공통점이 많아 괜히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키나와는 꽤 최근까지 미군이 통치해 왔고 현재도 주일미군이 주둔해 있어 언뜻 한국의 이태원이나 평택 안정리 같은 느낌일 것 같지만, 길거리에는 미군보다 한국인과 대만 관광객이 워낙 많다. 특히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고쿠사이토리(국제거리)는 미군의 색채는 거의 없고 그냥 여느 관광지 쇼핑거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와 강쉡은 이미 본섬엔 여러 번 왔기 때문에 나하는 그냥 미야코지마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잠깐 들르기로만 했다. 그러나 그냥 숙소에만 있기에는 몸이 근질근질하니 숙소에 짐을 맡겨 놓고 나하공항에서 멀지 않은 우미카지 테라스에 가서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우미카지 테라스는 차로는 공항에서 10여 분 남짓의 가까운 곳인데, 대중교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유이레일’이라는 이름의 모노레일 열차를 타고 내려서 또 버스를 타야 한다.


유이레일은 현재는 오키나와 유일의 철도 교통인데 두 량짜리 경전철이다. 과거에는 오키나와에도 철도가 많이 부설되어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레일을 빼어 철을 확보하거나 숱한 전투로 파괴되었고, 2003년에서야 개통되었다. 이후 2019년에 노선이 연장되어 이제는 나하 시를 넘어 인접한 우라소에 시까지 연결되는 나름 광역 철도가 되었다. 오키나와는 버스가 별로 없어서 유이레일은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교통수단일 뿐만 아니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유이레일을 타려면 이제는 한국에서는 사라진 종이 승차권을 사용해야 하는데 마그네틱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QR코드를 사용하는 게 특이하다. 오키나와와 달리 일본의 다른 지역들의 종이권이 대부분 마그네틱으로 되어 있다. 유이레일은 원래는 이 종이권만 쓸 수 있었는데 몇 하 전 부터는 교통카드(IC카드, 우리나라와 같은 터치식인데 IC카드라고 부른다)를 사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유이레일, 일본에서는 기차 운전석이 보이는 때가 많다


우미카지 테라스는 본섬이 아니라 나하 시 남서쪽의 도미스쿠스 시 세나가지마(세나가 섬)에 있다. 세나가지마는 오키나와 본섬과 워낙 붙어있는 데다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모르는 사람은 본섬과 떨어진 다른 섬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겠다.


세나가지마는 나하공항 바로 남쪽에 있어서 비행기가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하 공항은 일본에서도 손꼽히게 붐비는 공항이라 생각보다 비행기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세나가지마 위치 @google maps

'우미카지'는 바닷바람이라는 뜻이다. 일본어로 바람을 ‘카제’라고 하는데 이곳이 ‘우미카제’가 아니라 ‘우미카지’인 이유는 바람을 뜻하는 오키나와 방언이 ‘카지’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방언이 관광객의 흥미를 끌 듯 오키나와 방언 역시 재미있는 관광요소여서 간단한 인사 같은 것이 안내 책자에 많이 나와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오키나와 방언은 ‘하이사이’다.


키나 쇼키치라는 가수가 1969년에 발표하여 대히트를 기록한 <하이사이 오지상>이라는 노래 덕분에 ‘하이사이’가 인삿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노래 <하이사이 오지상>은 꽤 중독성 있고 밝은 분위기의 라서 오키나와 상점가를 걷다 보면 꼭 한 번씩은 듣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노래의 배경에는 꽤 무서운 스토리가 있다. 오키나와 전투의 후유증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한 여성이 남편과 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집에 돌아와 보니 일곱 살 된 어린 딸이 목이 잘려 없어진 채 죽어 있었다. 없어진 목은 솥에 삶아져 있었는데 알고보니 정신이 나간 엄마가 딸의 목을 잘라 그런 짓을 벌인 것이었다. 남편이 이 황당하고 처참한 상황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하자, 엄마는 “내 딸을 내가 먹겠다는 데 뭔 상관이냐"며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 이 기막힌 소란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그중 한 명이 이 곡을 쓴 어린 시절의 쇼키치였다. 정신이 이상해진 엄마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남편은 매일을 술로 사는 폐인이 되었는데, 어린 쇼키치는 그 아저씨의 술 심부름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이 있는 노래지만 독특한 민요풍의 밝은 멜로디가 중독성이 있어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도 자꾸 따라 부르게 된다.


우미카지테라스는 나하공항에서 가까워 비행기를 가까이 볼 수 있다


우미카지 테라스는 4~50개의 상점이 계단식으로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는데,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 놓아 지중해의 어느 관광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곳은 테라스 특성상 햇빛이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겨울이나 흐린 날이 아니라면 작열하는 태양과 어마어마한 더위 때문에 아무 상점이라도 일단 들어가 음식이든 음료든 주문할 수밖에 없다.


상점에서 주로 파는 것은 작은 소품들이나 기념품들, 혹은 SNS에 올리기 딱 좋은 소소하고 비싼 먹을거리들이다. 오키나와 특유의 지방색 강한 음식보다는 파스타나 햄버거류의 음식을 파는 곳이 더 많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여러 벌 가져와 땡볕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고 보면 SNS는 사람을 참 강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미카지 테라스 @google maps


우미카지테라스의 물가는 오키나와 치고는 좀 비싼 편이지만 일본의 다른 지역 물가에 비해서는 그다지 비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강쉡은 비싼 가격 때문에 좀 고민을 하다가 땡볕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오리온 생맥주와 타코를 시켰다.


오리온맥주는 오키나와에 공장을 둔 회사인데 맥주 종류가 제법 다양하고 맛도 꽤 괜찮다. 오키나와 현 내의 편의점이나 식당 어디에서도 판매하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오리온 맥주는 마치 기념품처럼 되어 있어서 여느 오미야게(기념품) 집이나 동네 편의점에 가도 오리온 맥주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나 열쇠고리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홍천에 가서 하이트 로고가 박힌 열쇠고리나 티셔츠를 찾기 어려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오리온맥주 티셔츠도 파는 것만 보았지 입고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냥 소장용인 것 같다.


우미카지테라스의 재미있는 점은 무료 족탕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무료 족탕이 참 많아서 여행을 하다가 쉬어가기에 참 좋은데, 족욕을 5분만 해도 다리 피로가 많이 풀리는 기분이다. 5월의 우미카지테라스는 워낙 더워서 족탕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만약 날씨가 좀 쌀쌀했다면 바다를 보면서 족욕을 할 수 있으니 꽤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무더위에도 체험을 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탕에 발음 담갔다. 가뜩이나 더운데 족탕의 물은 꽤 뜨거웠다. 나는 평소 몸에 열이 많이 조금만 더워도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데 공짜를 좋아하다가 역시나 땀을 줄줄 쏟아내어 옷을 흠뻑 적셔버렸다.


우미카지테라스 무료족탕


우리는 우미카지테라스에서 더위를 체험하고 국제거리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저녁에 기어나가 포차거리라도 갔을 것 같은데 나이를 좀 먹으니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온 김에 오키나와 올 때마다 먹는 고야참푸르(여주 볶음)나 먹으러 근처 음식점인지 이자카야인지에 가서 간단히 한 끼를 떼웠다. 사실 국제 거리는 이미 여러 번 왔었기 때문에 흥미가 별로 없어 체력을 뺏는 관광을 하기도 싫었다. 이렇게 세상 좋은 것을 하도 많이 봐서 엔간한 것에는 흥미가 없는 증상을 나와 강쉡은 내 이름을 따서 '광균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숙소 근처의 국제거리는 나하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약 1.6km의 구간이다. 전후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기에 '기적의 1마일'이라고 부른다는 말이 관광 가이드 북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나와 있으나, 그냥 기념품 점과 음식점이 많은 흔한 쇼핑 거리라서 '기적'은 좀 오버인 것 같다.


국제거리는 미군 물자 집적소가 있던 곳으로 주변에 암시장이 번성했던 곳이었는데, 타카라 하지메라는 사람이 미군정과 협상해 '어니 파일 국제 극장'이라는 극장을 세워 영업을 했고, 이후 주변이 상업지로 번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국제거리는 '인터내셔널 스트리트'가 아니라 사실 '국제극장거리'인 셈이다. 그런데 하도 외국인이 많아 그냥 인터내셔널 스트리트로 봐도 될 것 같기는 하다.


코로나 전에 갔었던 포차골목, 이번엔 힘들어서 가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하루 뿐인 나하에서의 밤이 저물어 갔다.



강쉡의 먹방일기


방문자 2인의 기본 먹방 성향 스탯


오변 : INTJ 전략가. 매운 것 잘 먹음. 밥 한 공기 세팅 가능. 느끼한 것은 잘 못 먹음. 날 것은 있으면 먹음. 강쉡이 새우와 곱창 메뉴를 하도 자주 초이스해서 새우와 곱창에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시켜놓으면 잘 먹음. 술은 반주 정도 하지만 맘 놓고 마시면 잘 마심.
강쉡 : INTP 연구자. 맵찔이. 밥 반 공기 세팅 가능. 면 사랑. 느끼한 것, 날로 먹는 것 좋아함. 반주는 필수템. 이것저것 시켜놓고 맛만 보는 스타일. 그러고서는 꼭 남기기 때문에 적절한 제약 필요.


오키나와는 세 번째 방문이다.


스노클링을 좋아해 오키나와 본섬보다는 주변 섬으로 다니곤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을 빼고는 오키나와에 갔을 때면 정작 본섬에서는 첫날이나 마지막 날에 쇼핑하는 것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이번 여행에도 오키나와 본섬은 겨우 하루 머무는 게 전부였다. 짧은 시간이라도 지금까지 가 보지 못한 곳에 가서 느긋한 휴가 기분을 내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우미카지테라스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우미카지테라스행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탁 트인 해변 풍경에 넋을 놓게 되었다.


"아, 여행을 왔구나"


경치가 좋은 곳에서 풍경을 보고 싶어 조금 높은 곳에 있는 타코집으로 갔다. 5월의 오키나와는 조금만 걸어도 꽤 더웠다. 이런 뙤약볕에는 더위도 시킬 겸 역시 낮술이 국룰이다.


우리는 오키나와 명물인 오리온 생맥을 시켜놓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곳은 음식 양에 비해 가격이 착하지 않다. 관광지인 데다가 자리 값이려니 하고 생각하면 괜찮겠지만 본격적으로 식사를 할 생각으로 주문하면 비용이 꽤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꽤 그럴싸한 요리처럼 보이는 새우프리미엄 타코를 시키면서 양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 더블 치즈컬리 프라이를 추가로 시켰다.


새우 프리미엄 타코는 바삭한 타코팬에 양배추 채가 깔려 있고 팬 프라이된 새우살에 마요 섞은 샤워크림이 뿌려져 있었다. 토마토와 양파를 쵸핑으로 만든 수제 살사가 섞여 있고 과카몰리가 양쪽 사이드에 듬뿍 들어있었다. 거기에 생바질을 다져서 뿌려주는데 훨씬 프레시한 맛이 느껴진다. 시판 살사 소스를 곁들임으로 주는데 생각보다 맵지 않고 느끼한 맛도 잡아주었다. 살사 소스는 듬뿍 넣어주어야 더 맛이 좋다.


더블 치즈컬리 프라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감자튀김인데 꽤 짭짤했다. 하얀색과 주황색의 두 종류 체다치즈가 녹여져 있고 컬리프라이 특유의 칠리파우더로 맵짠맵짠한 맛이 맥주를 부른다.


새우 프리미엄 타코와 더블 치즈 컬리 프라이 (업체명 : Tacos Philly kingrolls)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국제거리였다. 그래도 몇 번 가 봤다고 이제는 국제거리를 오면 친근하기까지 하다. 국제거리는 기념품 가게도 많고 다양한 복자의 사람들로 관광지 느낌이 물씬 난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기념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 나하에 가면 저녁에는 항상 국제거리를 돌아다녔다.


오키나와에 오면 항상 고야 참푸르를 찾았다. 여주로 만든 볶음요리인데 쌉싸름한 맛이 매력적이다. 이번에도 고야참푸르를 먹고 싶어서 식당을 찾다가 분위기가 독특해 방문한 집이 '하테루마'였다. 하테루마는 일본 최남단의 섬 이름이다.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시켜놓고 보니 관광지 물가를 생각하면 가성비가 있는 이자카야였다. 고야참푸르는 다른 곳과 달리 계란이 안 들어가 있었고 스팸 대신에 닭가슴살이 들어가 있었다.


고야참푸르 (업체명 : 하테루마)


오키나와 소바는 이번에 처음 시켜봤는데, 소스 대신 소금으로 간을 한 스타일이었다. 소스가 없어 듬뿍 뿌려진 김의 향과 함께 소바의 맛이 담백하게 잘 어울린다.


오키나와 소바 (업체명 : 하테루마)


오키나와식 부침개는 깻잎 대신에 시소잎이 들어갔는데 한국의 빈대떡과 비슷한 느낌이다. 보기에는 물렁거릴 것 같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바삭하게 부쳐져서 씹는 맛이 있다.


오키나와 부침개 (업체명 : 하테루마)


오키나와에서 자생하는 모즈쿠를 튀긴 튀김도 유명한데 바삭하고 짭조름한 바다향이 나서 술안주로 좋다.


모즈쿠 튀김 (업체명 : 하테루마)


일본은 하이볼을 시키면 한국과 달리 당이 없는 탄산수를 섞어주는데 그래서 단맛이 덜하다. 진저 하이볼로 시키면 그나마 단맛이 더해져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좋은 기분은 좋은 음식맛을 낸다. 엄청난 맛집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사케와 하이볼 종류가 많아 가볍게 술 한잔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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