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우리를 달래는 방식
현관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건 아이들의 신발이었다.
운동회에서 쓰던 줄넘기, 주말마다 들고 다니는 배드민턴 라켓, 축축이 젖은 우산까지.
나는 또 한숨이 나왔다.
치우는 사람은 나 하나인데,
어지르는 사람은 셋이나 된다.
눈앞에 어지럽게 널린 것들을 보면,
화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현관에 마련된 팬트리형 수납장은 그 화를 가라앉히는 작은 장치다.
잡다한 것들을 넣어두고 문을 닫는 순간,
집 안의 공기는 다시 정돈을 되찾는다.
중문을 닫으면 바깥의 먼지와 함께 내 짜증도 차단되는 것만 같다.
거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벌써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있다.
식탁은 또 숙제와 색연필, 과자 부스러기로 점령되어 있다.
“왜 이렇게 어질러놨어!” 하고 소리를 지르려다,
아이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소파 옆 선반에 놓인 가족사진 속,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내 화를 금세 무력하게 만든다.
거실의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아이들의 수다가 어우러진다.
TV가 없는 이 거실은 작은 도서관이자,
우리 가족의 대화 광장이다.
화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은은한 평온이 내려앉는다.
주방에서는 국이 끓으며 보글보글 소리를 낸다.
나는 식탁에 앉은 아이의 숙제를 슬쩍 들여다본다.
남편은 옆에서 운동 이야기를 늘어놓고,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나는 국간장을 들이붓다 말고 잠시 멈춰, 그 대화에 귀 기울인다.
주방은 늘 분주하지만, 동시에 우리 가족이 모이는 작은 무대다.
아침엔 커피 향으로, 저녁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이 집은, 어질러진 물건보다 웃음을 더 많이 남기게 해주는 곳이라고.
집은 결국, 우리를 화해하게 만든다.
현관에서 화가 치밀어도,
거실에서 웃음이 번지고,
주방에서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여전히 치우는 사람이고,
가족은 여전히 어지르는 사람들이지만,
이 집은 그 차이를 감싸 안으며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집이 만들어내는 화해의 무드.
그게 아마 우리가 집에 돌아오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