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가족의 풍경이 시작되는 시간
오후 8시.
일터에서 돌아온 발걸음이 현관을 통과한다.
그 순간,
몸은 집에 들어오지만 마음은 아직 어딘가 붙들려 있다.
회의에서의 긴장감,
엘리베이터 안의 피로,
아직 끝내지 못한 업무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런데 문득,
아이의 웃는 소리,
식탁 위 김이 오르는 냄비,
거실의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슬리퍼 한 짝이
“이제 괜찮아” 하고 속삭여주는 것 같다.
오후 8시의 집은 감정의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다.
‘사회적인 나’에서 ‘진짜 나’로,
그 전환이 이뤄지는 무대.
하루 종일 외부 세계에서
기능적이고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으로 살아온 우리는,
집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감정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가족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하루의 표정을 풀게 되고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순화시키고
거실 소파에 앉아야 비로소 몸을 기대게 된다
이 모든 순간은
단지 ‘귀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다워지는 과정이다.
오후 8시는 하루 중
가장 ‘사람다워지고 싶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관이 좁고, 어둡고, 어수선하다면
집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이미 기분이 위축된다.
주방과 식탁이 분리되어 있거나
너무 빛이 밝고 단조롭다면
대화보다는 식사 ‘행위’만을 빠르게 끝내려 할 수 있다.
거실 소파가 어정쩡하거나
TV만을 위한 배치라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는 풍경은 만들기 어렵다.
결국 감정을 디자인하지 않으면,
그 시간은 흐르는 대로 지나갈 뿐이다.
‘감정의 진입로’로서의 현관
실내화 하나, 조도 낮은 조명 하나로도
외부의 긴장을 털어내는 역할 가능
조용한 중심으로서의 식탁
식탁은 음식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말을 위한 자리, 눈빛을 위한 자리
서로의 시간을 나란히 보내는 거실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 조명
TV 외에도 ‘함께 있지만 각자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배치’
감정을 쉬게 하는 향, 소리, 빛
낮은 톤의 조명, 약한 향, 부드러운 음악
뇌와 심장이 동시에 쉴 수 있는 환경
퇴근 후, 집은 기능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공간이다.
마치 무대 의상을 벗고 본래의 옷으로 갈아입듯,
사회적 역할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돌아오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감정의 탈의실’에는
불필요한 구조도, 과한 디자인도 필요 없다.
그저 감정을 눌러앉게 해주는 여백과 따뜻함만 있으면 된다.
말없이 식사하고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는가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웃으며 나눌 수 있었는가
서로의 표정에서 오늘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는가
이 모든 장면의 배경엔 공간의 언어가 있었다.
조명, 배치, 소리, 그리고 정리된 상태가
그 감정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는지,
혹은 가로막는 벽이 되었는지.
감정을 회복시키는 집.
그것은 거창한 리모델링이나 고급 자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중심에 놓고 설계된 의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조명 하나,
식탁 위의 꽃 한 송이,
소파 옆 테이블 위의 책 한 권.
이 모든 것이 감정을 조율하는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