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어머니는 홀로 된 지 30년 되셨다.
시아버지께서 환갑 즈음에 돌아가셨으니 곧 30년이 넘는다.
7명의 자녀를 한 명도 결혼시키기 전이었고, 막내인 내 남편은 그때 중학생이었다.
그 후로 줄곧 한 가정의 가장이셨고,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남의 일을 하러 다니셨다.
내가 결혼할 즈음이었던 75세에는 감자를 캐러 다니신다 했고, 그 후로도 묘목을 심으러 다니신다 담배 걷이를 하러 다니신다 여기저기 그 업계에서 이직을 많이 잘도 하셨다.
어머니가 말수가 적어지시고, 얼른 (아버지가 계신 그곳에) 가고 싶다 하시고,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어지시기 시작하신 건 더 이상 어머니를 찾는 곳이 없어지면서부터다.
허리뼈가 부러져 한 계절을 누워계신 후 묘목 심는 곳에서 이제 할머니 더 이상 오지 마시라고, 그랬다고 한다. 새벽에 봉고에 실려 묘목 심으러 다니면 일당이 얼마라며, 자부심을 갖고 하시던 일이었다.
그렇게 평생 직장생활을 하셔서인지 모르겠는데 어머니께서는 결혼할 때부터 내 출퇴근에 매우 관심이 많으셨다. 어디로 나가냐(서울이냐 안양이냐), 뭘 타고 가냐(앉아서 가냐 서서 가냐), 얼마나 걸리냐(왕복 하루에 몇 시간이냐), 몇 시에 집에서 나가냐(아침은 어떻게 먹고 가냐, 꿀이라도 타 먹어라), 점심은 사서 먹냐 싸서 가냐...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어머님은 그때처럼 많은 걸 자세히 묻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로 출근하냐(지역을 물으시는 듯), 몇 시에 퇴근하냐(돌아와서 밥해먹기 구찮겠다)... 몇 명을 몇 반이나 가르치냐(목 아프겠다)는 종종 물으신다.
돌이켜 보면, 내 친정엄마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한 반에 몇 명이냐까지 물으신 적은 없다.
잘 듣지 못하시기 때문에 주로 질문에 의의가 있어 보이지만, 이것은 직장생활 한번 해 보신 80대 노모만이 할 수 있는 마인드 있는, 정체성 있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당분간 계신 곳에 드나들기도, 찾아가 뵙기도 망설여진다.
조금만 수그러들면 그때 찾아뵐게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