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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23. 2022

그럼 뭐 먹고 사냐

나의 일자리의 안부를 물으셨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휴직했다.

나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외국인들이 입국하지 않으므로 당연 학생 수는 급감했고, 학교 측에서는 무급 휴직을 신청받았다. 코로나도 무섭고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있을 아이도 걱정되었던 나는, 1기 무급 휴직자가 되었다. 그때는 사실, 2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무급 휴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줄 몰랐다. 학교도, 강사들도, 어느 누구도.

(3개월 후 나는 복직했지만, 꼬박 2년 동안 온라인 수업이 지속됐다.)


2020년 여름, 잠깐 코로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어머니를 뵈러 갔었다.

거의 반년만에 만난 어머니께서는 날 보자마자 손을 잡으며 여러 가지 궁금한 점과 걱정스러운 점들을 쏟아내셨다.


"돌림병이 아주 심하다면서?"

"콜레라? 그게 뭔 병이길래 이렇게 난리냐?"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니는 '코로나'보다 '콜레라'라는 단어가 더 입에 붙으시나 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하셨다.

"에미랑 애비는 일하러 나가? 쉬었어? 계속 일을 못 나가면 어뜩하냐. 뭐 먹고 사냐."

정말 넉넉한 살림이 아니고서야 사실, 회사원들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것이고, 나는 무급이어도 위험한 시기에 차라리 쉴 수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그냥 쭉 쉬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혼 어느 핸가, 여덟 살 조카가 장이 꼬였는지 배가 많이 아파 설날 당일에 응급실에 적이 있었다. 차례상을 준비하다 말고 허둥지둥 아주버님과 형님이 집을 나서는데, 현관까지 따라나서며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 "돈은 있어? 카드? 카드 있어?" 그때 어머니 나이가 80대 초반이었던 같다.




80세가 되어도, 90세가 되어도, 부모님의 자식 걱정은 이렇구나. 90세가 된 노인께서 며느리의 일자리의 안녕을 걱정한다. 우리가 아직 변변치 못해 이런 걱정을 하시나 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마흔이 넘은 날 아이처럼 걱정해주시는 분이 있다니 마치 할머니에게 응석을 잘 부린 손녀가 된 기분이었다. 이번 기회에 휴가라 생각하고 푹 쉬어라, 그런 말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돈벌이가 끊겨 걱정스럽기도 하겠다,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런 말을 오해 없이 주고받을 관계가 없다. 내 어머니 아니고서야 누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내게 그런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며칠 전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지하철 플랫폼에서 어떤 청년이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지하철이 들어오는지 계속 전광판을 확인하며 서둘러 허겁지겁. 아마 대학생쯤 된듯하고,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샀는데, 지하철을 타기 전 빨리 먹어야 하니까 씹는 둥 마는 둥 막 입에 넣는 것 같았다. 난 그런 청년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마음이 된다. 머지않아 내 아이도 대학생이 될 거다. 내 아이의 청춘은 분명 찬란할 거다. 하지만 동시에 배고프고 고달프고 어리숙한 청춘도 함께 올 거다. 내 인생이 참 고달프다 애처롭다 느꼈던 시절도 있지만, 겪을 땐 몰랐고 지나고 나니 알게 된 시절들도 많다. 어쨌든,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찬란함 보다는 고달픔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그걸 덤덤하게 보아 넘길 자신이, 나는 벌써부터 없다.


가끔 자는 아이를 보며 남편에게 말한다. 몇 살까지 귀여울까? 사실 몇 살까지 애달플까?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이 생각나니 다른 표현으로 바꾸자면-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연 겪어야 할 일들을 겪고 있을 뿐인데 나는 내 아이가 너무 애달플 때가 있다. 정녕 몇 살 쯤이면 그 애달픔이 사라질까. 서른? 마흔? 쉰쯤 되면 이제 내가 자식에게 의지할 순서구나,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희망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90세가 되어서도 며느리의 직장의 안부를 묻는, 내 시어머니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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