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 시절부터 멜론 유료 회원이었고(앗, 모든 중딩이 그런가? 아니면 초딩부터?) 유선 이어폰-가짜 에어팟-버즈의 역사를 거쳐 지금은 당당히 찐 에어팟을 사용 중이다. 그 옛날 내가 어디선가 경품으로 당첨되어 받은 (가짜) 에어팟은 매우 겉보기가 그럴듯해서, 초딩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비 오는 어느 늦은 밤 검도를 다녀오는 길에, 그만 하수구에 (가짜) 에어팟을 빠뜨려 버렸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빠랑 50cm 자와 양면테이프를 들고 (가짜) 에어팟을 구출하러 출동한 적도 있다.
물론 구출에 성공했고, 아빠는 히어로가 되었다.
매일 아침 7시 40분,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츄리닝을 입고 5분-10분 거리의 학교로 고딩을 라이딩한다. 아이를 낳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아침을 차려 주고 등굣길을 함께 하는 일상을 가졌다. 무척 새롭고, 신선하다. 차에 타면 아이의 핸드폰과 자동차 블루투스가 자동으로 연결된다. 아이의 선곡을 BGM으로 들으며, 어느 날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날은 아침부터 잔소리를 쏟아 내고, 어느 날은 그냥 버스 타고 다니라고 할 걸 내가 너무 유난인가 후회도 하고, 어느 날은 언젠가 이 시간도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도 한다.
지난주 어느 날은 처음 듣는 곡이 흘러나오는데, 화면을 보니 뮤지션 이름이 DAY6였다.
한동안 환청이 들릴 정도로 세븐틴의 노래만 듣더니, 이제 DAY6야?
가볍게 아는 척을 하자마자, 바로 가사가 나왔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마냥 좋은 그런 날이요. 내일 걱정 하나 없이 웃게 되는 그런 날이요.
나는 노래를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이건 뭐지. 공부하는 게 힘든가. 그런데 도현아, 노래 너무 좋다. 일단 나도 감상을 좀 하고, 가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뭐라 더 가사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가사는 모두 같은 결로 'May I be happy?' '아무나 정답을 좀 알려주세요.' '걱정 없고 싶어요.' 'So help me' 점점 더 했고, 나는 이 가사가 마치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갇혀 있는 고딩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또 공부를 시키면 얼마나 시켰다고, 지금 가사로 항의하는 건가. 더 묻지는 못하고 일단 아이를 내려줬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해 봤다. 그렇다면 한동안 뮤지션 경서의 <나의 X에게>를 들었을 때는, 여자친구랑 헤어졌을 때였나? 가수 목소리가 엄청 처연하던데. 지난겨울에는 그룹 세븐틴의 <파이팅 해야지>를 그렇게나 반복해서 들었는데, 그럼 그때는 뭔가 에너지 넘치고 모든 게 잘 풀릴 때였나? 지금 우리 집 낭만 고딩이, 나에게 음악으로 항의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스무 살 적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만난 선배 언니에게 이 얘길 해 줬다. 낭만 고딩이 튼 DAY6의 어떤 노래를 듣다가 가슴이 철렁했다고, 라고 말하니. 라디오 작가여서 음악에 대해 잘 아는 언니는 단박에 어떤 곡인지 제목을 맞췄고, 데이식스의 신규 앨범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청 크게 웃어댔다. 너 너무 웃기다고. 너랑 너네 고딩 진짜 웃긴다고.
그런 거였다. 그냥 인기 많은 그룹의 신규 앨범 중 제일 주목받는 곡. 그런 거였는데 F 엄마이자 낭만 엄마인 나는 과몰입하여, 낭만 고딩에게 제대로 낚인 거였다. 이 글을 쓰며 문제적 그 노래, DAY6의 Happy를 찾아 듣고 있다. 그룹 멤버들의 나이가 서른, 서른 하나, 서른둘. 청춘들의 고민 이야기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네. 고딩이 듣고 있을 때는 그렇게나 고딩 이야기 같더니, 지금 내가 들으니 또 40대인 나에게도 맞는 노래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