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이렇게 방송 외의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생각보다 다른 콘텐츠 시장도 열려있단 걸 알게 됐다. 이번엔 이러닝콘텐츠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나의 방송작가 이력을 좋아했다. 교수들한테 교육 자료를 받고, 그 내용을 토대로 콘텐츠를 구성하는 일이었다. 크게 봤을 때는 구성작가와 별반 다른 거 같지 않았다. 강사 및 아나운서를 섭외하고 주어진 자료로 콘텐츠를 구성해 만드는 것. 굳이 다른 것을 따지자면 PPT로 대본을 작성하는 것, PPT로 화면설계를 하는 것, 내용이 좀 딱딱하다는 점, 작가가 교육설계자가 되어 연출까지 맡아서 한다는 점.
초반에는 새로운 환경과 작업에 흥미를 느껴 열심히 했다. 그런데 PPT 작업은 정말 노가다였다. PPT가 손에 빨리 익지 않아 고생했다. 또 외부 촬영 시엔 연출까지 해야 했는데 지방 출장에 디렉팅이며 제작팀 인솔까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정말 연출 체질이 아니라는 걸 또다시 느꼈다. 그냥 실내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혼자 구성하고 섭외하고 일정 조율하는 게 훨씬 더 좋았다.
관계에 지친 나는 처음부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일정 때문에 빨리 이야기해야 되는 건이 있어 동료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빨리 확인하지 않았고, 늦게까지 답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화가 났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씨 메신저 확인 좀 부탁해요!!!”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짜증이 났고 피해 의식이 생겼다. 안 그래도 요청하고 부탁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느끼는데 뭐 하나 얘기할 때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니 견딜 수 없었다.
일의 양과 강도는 점점 높아져 가고 직원들과 소통은 더욱 어려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위 직속 상사는 나를 견제하며 외면했다. 자기 대신 회의에 들어가거나 일을 맡아서 하면 부장님께 항의를 했고, 대놓고 ‘씩씩’대며 분을 냈다. 부장님은 나와 그 직속상사를 자꾸 경쟁구도로 내몰았고, 나는 너무 괴로웠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이 혼자 터득하고 혼자 싸우고, 혼자 울었다. 극심한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쌓여 급기야 오바이트가 나왔다. 근무시간에 갑자기 화장실로 줄행랑쳐서 쏟아내고 왔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다가 이러다 내가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부장님께 면담 신청을 하고 퇴사의지를 밝혔다. 부장님은 내가 너무 예민한 거 같다고 말했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 당장 살기 위해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