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영상 작가 그리고 한계점

by 미니힐

나는 내가 싫었다.


왜 이렇게 예민하고,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다들 잘 버티고 잘 살아내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될까?


그때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봐야 했다. 내 삶의 적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또 두 번의 홍보영상 제작사에서 일을 했고,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더욱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퇴사를 했다.


첫 번째로 들어간 신생 홍보제작사. 칸막이 없는 오픈 원룸에 경영팀, CG팀, 작가팀, 연출팀 모두가 한곳에서 일했다. 맞은편에 앉았던 경영팀이 자기 영역(?) 표시인 건지 정말 끊임없이 얘기를 해댔다. ‘나 일하고 있어요’를 너무 티 내면서 일한다고나 할까? 계속 ‘내가 몇 년 차인데 이건 이렇게 해야 돼’, ‘너 생각은 어때!’, ‘그거 했어?’, ‘이 문서 이거 잘못된 거 같은데’ 등등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사운드가 빈 적이 없었다. 도통 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담당피디는 내가 일을 빨리 끝낸다고 일을 대충 하는 거 아니냐고 작가팀 앞에서 면박을 줬다. 빨리하는 게 나쁜 게 아닌데...억울했다. 내가 지쳐있어서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충하지는 않았다. 피디가 보기엔 그렇게 보였나 보다. 일주일 만에 퇴사 욕구가 터졌다. 대표님께 이곳에서 일하지 못 하겠다고 얘기했고, 피디님께도 솔직히 말씀드렸다. 작가들 앞에서 면박을 준 것, 일을 빨리했다고 대충한 건 아니라는 걸. 내가 상처받았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사과가 돌아왔다.


"미안하다...그런데 너 너무 예민한 거 같아. 너 같은 사람은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냐"

지쳐있는 게 맞았다. 더 예민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일을 시작했다. 두 번째 들어간 홍보영상제작사. 홍보영상 같은 경우는 작가가 후반 작업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구성안 안에 나레이션, 자막을 미리 써 놓으면 그것에 맞게 촬영과 편집을 한다. 대놓고 일을 빨리 끝내고, 내 할 일을 했다. 편하게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리한 나의 태도는 용납되지 않았다. 일을 다 하면 또 다른 일이 주어졌고, 빨리 업무를 끝내면 수정과 검토를 몇십 배 이상 시켰다. 불필요한 지시라고 생각했다. ‘하...’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 나는 주저앉아버렸다. 이미 너무 망가진 상태였고, 지쳐있었다. 정말 멈춰야 했다. 잠시 오랫동안 쉬기로 했다.


쉬는 동안 자주 울었다. 그때 사랑하는 동생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언니는 정말 너무 약해. 언니를 의지하고 싶어도 의지할 수 없어. 좀 잘 살아낼 수 없어?"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 나이 서른하나였고, 성인이었다. 욕심은 있어서 굉장히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또 언니로서 괜찮은 사람, 의지하고 싶은 사람, 배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서있고 싶었다. 그 친구한테서 만큼은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존재에게 이런 말을 듣자, 나는 무너졌다.


고등학생 때 느꼈던 상처와 수치심부터 최근의 상처와 실패까지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나는 실패자다. 루저다. 나는 너무 약하다. 이런 내가 싫다.’ 나를 갉아먹는 말을 되뇌이고, 울고 또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자샌드의 <센서티브> 책을 만났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이야기 같았다. 나의 센서티브한 성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센서티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내가 실패자가 아니라 센서티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성향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성향을 무조건 바꾸려는 것보다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자원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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