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 작가

by 미니힐

이제 방송이라면 신물이 났다. 영상 제작이나 대본작성, 시나리오 쓰는 건 재밌지만 방송은 자신이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잘 해낼 자신이 없었고, 연차가 차면서 나의 실력에 대해서도 자주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알게 됐다. 직업소개 영상, 동기부여 영상을 만드는 곳이었다. 재밌을 거 같고,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바로 지원을 했고, 면접 후 바로 일하게 됐다.

초반에는 무난하게 잘 적응했는데 피디와 마찰이 생겼다. 굉장히 몸을 사리는 사람이었는데 최대한 일은 덜 하고 페이는 많이 받자는 주의의 사람이었다. 잔머리를 많이 굴리는 스타일이었는데 먹는 약이 많았다. 두통약, 설사약, 비타민, 철분 등등.


나의 열정과 업무 집착이 부담됐던 거 같다. 지금 막 입사한 나는 열정도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했다. 한번은 회의를 하다가 서로 언성을 높였다. 나한테 구성을 맡겼는데 다시 구성을 바꾸라는 거. 찍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최대한 간단하고 단순하게 가자고. 지금 나레이션도 그냥 빼버려도 된다고. 기본 틀까지 자기 입맛에 맞춰 바꾸려 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 이 주제로는 이렇게 구성을 가는 게 맞는 거 같고, 이러이러한 걸 찍어야 훨씬 이해도 잘 될 거 같다고 말했다. 피디는 끝까지 자기 뜻을 밀어붙였고, 나는 결국 피디 의견을 따랐다. 어차피 총괄하는 피디의 뜻을 따르는 게 맞으니까.


피디는 나하고 작업 방식이 안 맞는다고 말했다. 수습 기간 후 정직원 계약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자기랑 대표님과 얘기해보고 결정할 거라고 했고, 대표님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나 자기는 나랑 일하기 힘들다고 얘기했다. ‘너 내가 자를 거야. 대표님 설득해서...’ 이렇게 들렸다.


대표님은 나를 좋아하셨다. 일을 많이 맡기셨고, 회사 사보 제작도 해보라고 해서, 새로운 작업도 해보았다. 내가 띠를 잘 만든다고. 내가 만든 구성과 틀을 흡족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직속 상사이자 파트너는 피디였다. 그와 이미 틈이 벌어졌고, 나는 그 틈을 메울 의지가 없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어서 대놓고 날 자르겠다고 하는 피디와 일하기 싫었다.


병가 낸 어느 날, 그대로 집에 있게 됐다. 피디한테 일 못 할 거 같다고 말했더니 자기가 알아서 퇴사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대표한테도 전달하겠다며. 그동안 고생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결국 그렇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대표님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나왔다.


그와 이야기를 더 하고, 조율을 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나는 그도 포기하고, 일도 포기하고, 대표님과의 신뢰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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