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프로그램 작가

by 미니힐

다시 방송을 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내가 배워왔고, 할 수 있는 게 방송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선 정확한 나의 롤이 있었다. 다시 방송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 일하게 된 곳은 여행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만드는 작은 프로덕션이었다. 직원은 작가 1명, 종편 감독 1명, 대표 1명, 나머지는 프리랜서 PD, 조연출뿐이었다. 일단 수가 적어서 편했다. 또 그들끼리는 10년 이상 같이 작업해 온 끈끈함이 있어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관계나 분위기가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리고 10분짜리 한 프로그램을 통으로 내가 맡아서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오랜만에 더빙원고까지 다 썼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뿌듯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막내 작가가 없어 막내 일부터 메인 업무까지 혼자 다 감당해야 하니 쉽지 않았다. 일주일 안에 구성안 작성, 장소, 인터뷰이 섭외, 자막, 더빙원고까지. 혼자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배운 것도 많고 편한 것도 있었지만 자주 번아웃 됐다. 체력적으로 힘이 달리고, 과부하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루라도 일찍 들어가면 눈치가 보였다. 워낙 수가 적어 한 사람이 맡고 있는 일이 많았고, 늘 야근하는 분위기에서 나만 할 일 다 했다고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주 힘들다고 얘기했고, 대표는 조금만 더하면 치고 올라올 수 있다고 했다. 잠을 못 자니 몸이 너무 힘들었다. 신경질이 늘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는 결국 치고 올라갈 수 없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서럽게 울며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표님은 그래도 며칠은 더 하라고 하셨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며칠을 버텼다. 그리고 며칠 후 대표님은 그만 정리하라고 말했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으니 이제 정리하라고 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그때 함께 일했던 조연출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가님! 그때 도대체 왜 그만둔 거예요? 그렇게 힘드셨어요?”

“네...전 많이 힘들었어요...”


과연 끝까지 버텼으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 모습과는 좀 달랐을까? 남아있던 작가님은 그 모든 걸 해냈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신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방송 제작진 한명 한명이 정말 존경스럽다. 나의 최선은 여기까지였다. 나의 그릇이 이 정도였다. 나의 그릇에 맞는 업무량과 일을 찾아야 했다. 롱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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