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정보프로그램 작가

by 미니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방송을 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나와 맞는 곳, 편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어떻게 나와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언젠가 그런 곳을 만나리라고 생각했다.


가게나 상품, 사이트 등을 홍보해주는 정보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바로 일하게 됐다. 메인작가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서브작가와 막내작가가 팀을 이뤄 제작했다. 마케팅팀이 따로 있어서 섭외 및 취재를 해주었고, 섭외된 곳의 자료를 받아 구성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메인작가가 없어서 실질적으로 내가 메인 역할을 했다. 떨리기도 했지만 재밌었다. 스튜디오 원고와 VCR원고를 쓰고 더빙원고를 썼다. 막내 작가는 나를 서브하며 자막 작업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다큐프로그램 구성과 더빙원고를 맡아달라고 했다. 기회인 거 같기도 하고...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업무의 양도 버거운데 고민이 됐다. 담당 피디까지도 같이하자고 말하니 점점 말려들어 진행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따로 원고비 얘기는 없었다. 그냥 공부한다 치고 도전해보려고 했다. 하필 그때 중요한 여행 약속이 있다는 걸 까먹었다. 이미 한다고 얘기했고, 회사는 다른 작가를 알아보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여행을 꼭 가고 싶었다. 혼란스러웠다.


일단 피디님한테 못 할 거 같다고 얘기를 했고, 피디님은 그럼 어떡하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다시 구성안을 붙들고 원고를 썼다. 그런데 이건 아닌 거 같았다. 내가 한다고는 얘기했지만,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조율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못 할 거 같다고 얘기를 했다. 피디님은 화를 냈고, 대표도 나를 다그쳤다.


‘아니 원고료 받으면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적반하장이네...’


때마침 이 회사의 불법 방송 기사를 보게 됐다. 기사를 보고 막내 작가가 나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언니...이거 우리 제작사인 거 같아요.’ 우리 회사가 맞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케팅팀에서 가게나 병원, 회사를 섭외할 때 돈을 받으면서 홍보 방송을 해주겠단 식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병원 같은 의료기관을 홍보해주는 방송은 불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기사를 본 순간 이 제작사에서 일하기 싫어졌다. 마치 그만둬야 하는 ‘사인’인 거 같았다. 불법 방송이라니... 퇴사의 타이밍이 분명했다.


내가 메인이나 다름없으니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도 훨씬 수월(?)했다. 다큐프로 뿐만 아니라 지금하고 있는 방송도 못 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나는 여행을 가야겠다고. 그 회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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