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종이처럼 파란 날이었어. 코리아라고 적힌 굴뚝이 솟아오른 오래된 어느 동네. 오늘은 까치 한 마리가 굴뚝 위에 앉았어. 까치는 굴뚝 위에서 따뜻한 온기를 쬐었어. 그리고 짹짹거렸어. “하늘은 파랗고, 발은 따뜻하고. 내가 두 발 붙일 수 있는 굴뚝이 있어! 허공을 가로지르며 춤을 춰도 내가 슬그머니 여기에 똥을 눠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나는 자유야.”
나는 동화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보다 커서 더 많은 동화책을 읽었다. 그림이 고와서 읽고, 내용이 좋아서 읽고, 가끔은 먼 미래에 내 자녀에게 읽어주고 싶어 동화책을 샀다. 여행을 가서 작은 서점을 만나면 나는 꼭 동화책 코너를 살펴보았다. 실은 그건 무척 바보 같은 일이기도 했다. 동화책은 대게 양장이라 무거웠고, 양장 커버의 모서리는 집으로 오는 길에 구부러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는 동화책을 안고 숙소에 돌아오기를 좋아했다.
내가 동화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어른이 썼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대게 성인이 책을 쓰니까 내가 사는 동화들도 어른이 썼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처럼 다 큰 어른이 칼럼이나 기사가 아니고, 소설이나 수필이 아니고, 동화책을 썼다는 것이 내게는 늘 감동적이었다. 추측해보건대 동화작가라면 분명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을 골라서 이야기할 것이었다.
내가 동화책을 쓴다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 내 집 마련에 대한 이야기 따위는 결코 아닐 것이었다. 손에 굳은살이 배기고, 눈밑에는 주름이 지고, 머리칼은 푸석해진 이런 나라도. 이런 나라도 소중하게 품고 싶은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이야기를 그려낼 것이었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조용히 이야기해주고 싶은 삶의 보석 같은 진실들. 눈빛이 따뜻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포근함, 계절이 바뀔 때 불어오는 바람 냄새, 마음껏 뛰놀 때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리. 분명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고 사람과 부딪치고 하루에 한 번쯤은 욕을 하고 불평을 내뱉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그런 지극히 나 같은 어른들의 가슴속에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숨결의 이야기라서. 그래서 나는 동화를 좋아했다.
동시에 동화는 언제나 단순했다. 읽고 나면 명료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해서 빛이 났으리라. 세상 사람들은 너무 복잡하게 살아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를 못하고 어떻게든 저마다의 해석을 만들어낸다. 저마다의 해석은 딱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만큼의 그릇이어서 각자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가공하고 인과관계를 만들어 분노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동화책은 언제나 단순한 주제를 단순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실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토록 단순하다는 것일지도 몰랐다.
지난 열 세편의 글을 통해 나는 스물다섯부터 서른까지 보내온 삶에서 만난 나름의 굵직한 사건들, 그리고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삶의 비밀들을 그려보려 노력하였다. 마지막 편인 열네 번째 글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세 편의 동화를 통해 내가 크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들을 되새겨보려 한다. 군산에서, 경주에서, 선유도에서, 그 밖의 여러 서점에서 만나고 소장하게 된 동화들이 지난 열 세편의 글에서 내가 담아내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을 잘 짚어 주기를 바라며. 되도록 단순하게.
하나
결국 생은 시작하고, 종료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의 삶은 언제나, 흐를 거예요.
감히 이야기해보려 해요.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0 난생처음 네가 웃었지. 널 보는 이도 마주 웃었고
7 세상은 너에게 정말 새로울 거야. 모든 걸 꼼꼼히 들여다보네.
17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야. 네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29 미처 배우지 못한 한 가지. 토요일 저녁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우울해지지 않는 법.
33 잠이 모자라도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44 발가락에 주름이 잡혔네.
51 이제는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구나.
64 뭔가가 너를 떠나왔던 곳으로 끌어당기지…
75 이제는 놓는 법도 배워야 해. 아직 공중제비를 넘을 수 있니?
80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 너는 지금 이 순간을 훨씬 충실히 살 수 있어.
96 그리고 다시 봄.
99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둘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해요. 언제나 우리는 두려움과 함께 걸어가야 할 겁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면서, 천천히 나아가요.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마스다 미리 글 / 히라사와 잇페이 그림 김난주 옮김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하나 달라요. (중략)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져요.
마음이 작아지면 떨려요.
마음이 떨리면 몸도 작아져요.
“왜 못하는데?”라고 묻지 마세요.
우리는 모르는 게 많아요.
말 못 하는 마음도 많고요.(중략)
그러니까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셋
영혼과 같은 속도로 나아가요. 그러려면 너무 빠르면 안 돼요. 조금 천천히 가도 영혼과 함께 같은 걸음을 내딛으세요. 영혼은 늘 최고의 도착지를 잘 알고 있음을 굳게, 믿으시기를.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다음 날, 남자는 현명하고 나이 든 여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중략)
“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중략)
그래서 얀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렇게 하였습니다.(중략)
어느 오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앞에 그가 잃어버린 영혼이 서 있었습니다. 영혼은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영혼은 숨을 헐떡였습니다.
이제 얀은 그의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또 다른 일도 했습니다. 정원에 구덩이를 파과 시계와 트렁크 따위를 전부 파묻어 버린 거예요. 시계에서는 종모양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자라났습니다.
부족한 14화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혼에 대한 탐미의 글로 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Unseen Universe